#새벽 #고요
나는 새벽을 좋아한다. 밤 늦게 이어지는 새벽 말고 아침보다 먼저 만나는 새벽이 좋다. 새벽이 주는 그 청명함, 고요함, 깨끗함이 좋다. 하지만 나는 새벽 시간에 깨어있기 힘들다. 워낙 잠이 많아서 밤 10시쯤 취침해서 아침 7시쯤 기상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한때 미라클 모닝이 유행일 때와 아티스트 웨이를 하며 모닝 페이지를 쓰려고 할 때 등등 나에게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고 싶은 욕심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새벽 기상을 위해 저녁에 좀 일찍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꼭 새벽에 깨야지 다짐을 하지만 결국 아침에 일어나거나 오히려 늦잠을 자고 만다. 결국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자 그냥 포기해 버렸다.
그러던 작년 겨울 어느 날, 몸이 좀 안 좋았는지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씻지 못한 찝찝함을 지우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니 다섯 시 반. 출근까지는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그때 만난 새벽의 공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은 고요하고 약간 차가운 공기가 나를 둘러쌌다. 오빠는 자고, 냥이들은 자다 깨서 내 주변에 잠이 가득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같은 고요라도 낮의 고요와 새벽의 고요는 어찌나 다른지. 새벽의 고요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나는 노트를 펼쳐서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였다. 그 날의 하루 일정도 체크하고 정리했다. 집의 모든 불이 꺼진 채 책상 위의 따뜻한 조명만 켜져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명상하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출근 준비를 했다. 그 시간이 참 좋아서 다음날도 시도해볼까 했으나 여지없이 실패했다.
이런 나는 의도치 않게 새벽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때이다. 일 년에 한 두번은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시는 때가 있다. 미라클 모닝과는 정 반대되는 건강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그 때 만나는 새벽은 꼬질꼬질한 나와 달리 어찌나 청명한지. 술에 찌든 나를 새벽의 공기가 깨끗하게 씻어준다.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진다. 이제는 체력이 딸려 그나마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술로 새벽을 만나면 꼬박 이틀은 누워있어야 회복이 된다.
어찌 되었건 새벽은 나에게 동경의 시간이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운동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모닝 페이지를 쓰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후 출근하면 상쾌하겠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빠는 이제 나이가 들어 아침잠이 없어졌다고 푸념한다. 한 번은 새벽에 깼다가 할 일이 없어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나도 한 10년 뒤가 되면 아침 잠이 없어져서 내가 갈망했던 새벽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운동까지는 무리여도 새벽 글쓰기를 하면 내 삶이 보다 풍부해지지 않을까? 그 고요함을 쉽게 날마다 만날 수 있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저녁잠이 많아져 저녁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 새벽은 만나기 어려워 더욱 갈망하게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 또한 일상이 되면 그저 보통의 하루가 되려나?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에 나 홀로 깨어있는 시간이 주는 매력은 분명 확실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새벽 감성의 음악을 찾아 들으며 대리만족을 해본다. 안녕, 새벽. 언젠가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