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Industrial District 탐방
쿤통(Kwun Tong),
홍콩 산업변화를 목격하자.
작가는 쿤통(Kwun Tong)으로 출근한다.
위치는 여기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2020년 홍콩섬에서 Kowloon 지역으로 옮기면서, 다소 생소했던 쿤통(Kwun Tong)이라는 지역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한때는 공장에서 들어가는 기계소리와 줄지어 물건을 나르는 화물차들로 가득했던 제조업 지구. 홍콩이 가진 특징인 금융업 또는 초고층의 주거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워 사람들의 관심에서 제외되었던 지역. 이로 인해 도시의 변두리로 치부되었던 동네.
90년대 이후 제조업이 점차 쇠퇴하며, 새로운 산업들이 그들이 떠난 공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홍콩섬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가 기업들이 홍콩섬에서 쿤통(Kwun Tong)으로 이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창의와 실험, 브랜드와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 재생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쿤통(Kwun Tong)에서 만나는
'인더스트리얼' 풍경들
쿤통의 인더스트리얼 빌딩들은 대부분 1950~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물표면에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콘크리트가 갈라진 벽면은 산업 쇠퇴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거친 모습들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이 인더스트리얼 쿤통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노후된 콘크리트 외관과 빼곡한 에어컨 유닛,
기후와 산업역사의 흔적
특히 눈에 띄는 건 외벽을 뒤덮은 수많은 에어컨 유닛들이다. 홍콩의 습하고 더운 아열대 기후 때문에 각 층마다, 각 창문마다 에어컨이 붙어 있어서 건물 전체가 마치 살아 숨 쉬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건물 측면이 에어컨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아래로 녹슨 파이프와 배선이 엉켜 있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건 단순한 기능적 요소가 아니라, 홍콩 사람들이 어떻게 좁은 공간에서 생존해 왔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산업 시대 공장 노동자들이 살던 공간이 이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바뀌어도, 이 에어컨 군단은 여전하다.
대형 중국어 간판과 산업 유산의 사인,
이름이 새겨진 역사
빌딩 외벽에 커다랗게 새겨진 중국어 간판은 쿤통 인더스트리얼 풍경의 상징이다. 예를 들어, “九龍麵粉廠” (Kowloon Flour Mills)처럼 과거 제조업 시설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건물들이 많다. 이 간판들은 붉은색이나 검은색으로 굵게 쓰여 있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고, 영어 이름이 병기된 경우도 흔하다. 건물 측면 전체를 차지하는 이런 사인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홍콩의 제조업 황금기를 상기시키는 문화적 마커다. 1990년대 산업 이주 후 텅 비었던 이 빌딩들이 이제 리노베이션 되면서, 간판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현대적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는 쿤통의 재생 전략이 ‘지우기’가 아닌 ‘보존과 재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Energizing Kowloon East 정책 아래에서 이런 유산이 새로운 브랜드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실용적 철재 문과 화물 엘리베이터,
산업 기능의 주역
인더스트리얼 빌딩의 내부나 입구를 보면, 철재 문과 화물 엘리베이터가 핵심 특징으로 등장한다. 노란색이나 녹색으로 칠해진 두꺼운 철문들은 공장 시대의 화물 출입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지금도 스타트업 사무실이나 창고로 쓰이는 공간에서 쉽게 만난다. 문에 붙은 경고 스티커나 striped 보호대가 산업 안전 기준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엘리베이터는 특히 ‘Freight Lift’로 표시되어 있어 승객용이 아닌 화물용으로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문이 열린 상태에서 보이는 내부는 콘크리트 바닥과 노출된 배선으로, 여전히 공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요소들은 쿤통의 빌딩들이 단순한 사무 공간이 아닌, 실험과 생산이 일어나는 ‘워크숍’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의 성수동 창고 문과 비교하면, 쿤통 쪽이 더 거칠고 실리적이다.
한국의 인더스트리얼 메카 성수동,
쿤통(Kwun Tong)과 비교해 보기
서울의 성수동과 홍콩의 쿤통(Kwun Tong). 한 시대의 산업역군이었던 두 도시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재밌는 요소가 된다. 도시가 가진 특징이 너무 다르기에 변화의 방향 또한 확연히 드러난다.
성수의 저층 가로공간, 쿤통의 고층 수직공간
성수는 1970~80년대 수제화 공장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성수 수제화 거리’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위에 카페, 전시, 편집숍들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좁은 도로, 차로와 도로가 혼재된 길을 중심으로 저층의 건물들이 병렬로 배열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쿤통 역시 산업지구로 시작했으며 제조업과 물류의 중심지였지만, 1990년대 이후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이제는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그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Mega block의 건물 안에 Unit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고 화물을 나를 수 있는 저층의 loading 공간과 엘리베이터가 필수인 특징을 갖고 있다.
공간의 변화를 주도하는 서로 다른 주체. 성수의 오래된 공장과 창고는 건축가들과 브랜드 디렉터들의 상상력에 의해 리디자인되었다.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살린 채, 감성적 요소를 입힌 카페와 전시 공간이 들어섰고, 대기업 브랜드마저 이곳에 팝업스토어를 열기 시작했다. 그와 달리, 쿤통의 변화는 조금 더 실리적이고 상업적이다. 낡은 공장 건물들이 점차 리노베이션 되며 스타트업 사무실, 로컬 크리에이티브 기업, 핫한 F&B 브랜드들이 입주했다. 가성비 높은 임대료 덕분에 실험적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았다.
예술과 브랜드를 통한 문화의 유입의 주체 또한 서로 다르다. 성수가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의 실험 무대가 되고 있다. 무신사 테라스, 나이키 팝업, 삼성전자나 LG의 테크 체험존까지. 동시에 독립 큐레이터들이 이끄는 전시 공간들이 꾸준히 생겨나며 문화적 심도를 더해 가고 있다. 반면, 쿤통은 규모면에서 성수보다 작다. 로컬 아티스트와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밀도 있게 퍼져 있다. 복합문화공간인 오픈하우스(OpenHouse), 크리에이티브 허브인 theDesk, 공유주방과 로컬 F&B 브랜딩 스튜디오들이 공간을 채운다.
앞으로의 쿤통(Kwun Tong)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단순한 산업 변화를 넘어, 홍콩 동부의 새로운 경제·문화 허브로 도약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Kai Tak 개발과 함께 ‘Energizing Kowloon East’ 정책의 핵심 축으로, 쿤통은 2026년부터 본격적인 ‘제2 비즈니스 디스트릭트’로 떠오른다. 산업 유산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그린 테크, 교육 캠퍼스, 주거·문화 복합 공간을 얹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성수는 민간 주도로 폭주하듯 변화의 길을 걸었지만, 쿤통은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더 균형 있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쿤통이 창의와 삶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하며, 녹슨 철문 앞에서 커피 마시고, 바다 바람맞으며 일하고, 저녁이면 로컬 아티스트와 맥주 한 잔 나누는 진짜 ‘사는 동네’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관련내용1: Kwun Tong Town Center Project
*관련내용2: Ensuring Sustainable Growth, Kwun T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