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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Aug 21. 2017

무언의 폭력과 잔악한 권력의 민낯, <공범자들>

#51.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과 공감했으면 합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는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한쪽에서 최승호 PD의 얼굴이 보인다. 초조한 듯 서성거리던 최 PD가 누군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는 매우 완강했고 거침없는 손길들이 최 PD와 카메라를 막아 세운다. 상대방의 손사래와 인터뷰 거부는 당사자인 최 PD에게 있어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닐 테니 이젠 충분히 익숙할 듯싶다. 이를 잘 아는 관객들이라면 이 장면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라 보였다.

2012년 최승호 PD 해고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MBC 선배들에게 마이크를 가져다 대며 진실을 요구했지만 '여기서 이러지 마란'식이다. 가해 당사자는 묵묵부답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손으로 가리기에 급급하다. 그들의 모습은 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

결국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최 PD.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의 담담하면서도 씁쓸해하는 모습에서 겨우 내뱉은 한마디가 귓가를 울린다.

"잘들 산다. 잘들 살아."

<공범자들> 포스터 by 뉴스타파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언론이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1. 점령

2008년 故 노무현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17번째 대통령으로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이하 MB정부)는 인수위 때 자신의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내세웠지만 낙마가 이어졌다. 고려대와 소망교회 신도, 영남 출신이라는 키워드를 맞춘 소위 '고소영' 내각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러한 비판은 전파를 타고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권 초기부터 위기에 몰린 이명박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자신의 원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언론 장악이었다.

이명박은 당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 사장을 쫓아냈다. KBS 여의도 사옥을 전경버스와 사복경찰로 뒤덮고 파리 쫓아내듯 모두 쫓아냈다. 당연히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묻지마' 이사회는 이미 열린 상태고 그 앞으로는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정연주 사장의 해임 사유는 부실경영과 편향방송이었다.  

결국 KBS를 떠나게 된 정연주 전 KBS 사장 by 뉴스타파

이후 MB정부의 언론 장악은 YTN과 MBC로 이어졌다.  

MB정부는 YTN 사장 자리에 이명박 캠프 언론특보였던 구본홍을 내정했다. 구본홍은 MBC 기자로 언론사 생활을 시작했고 고려대와 대구 출신이다. YTN은 혼란에 빠졌다. 보도의 공정성을 위해 그간 유지해왔던 보도국장 추천제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방송 역시 좌지우지했다. 결국 노조 간부들이 해고되기에 이르렀다.


그다음 타깃은 다름 아닌 MBC였다. MBC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리스크를 심층적으로 다뤄 보도했다. 당시 광우병 사태는 시위로도 이어졌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종로구와 중구 일대가 한때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이때 <PD수첩>을 연출했던 김보슬 PD는 결혼을 앞두고 검찰 소환이라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김보슬 PD의 과감한 용기와 투철한 직업정신에도 불구하고 권력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이 얼굴에 오롯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감정이 이입되어 울컥하기도 했다.

MBC, 몰락의 시작 by 뉴스타파

MBC의 엄기영 전 사장은 2008년 3월부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광우병 보도와 더불어 4대강의 실체를 고발하게 되면서 MB정부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 압박이 시작됐다. '내가 직접 잘라버릴 순 없으니 알아서 나가라'는 식의 전방위적인 탄압과 무언의 폭력이 이어졌다. 그 압박에는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씨도 있었다. MBC 노조는 방문진을 찾아가 진실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결국 엄기영 사장은 그렇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MB의 하수인이라 불리던 김재철이 MBC 사장으로 내정되었다. 그리고 그가 출근했다. 회사 건물 앞에서는 "낙하산은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김재철은 "내가 30년간 근무했던 회사인데 내가 왜 낙하산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했다.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1953년생으로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 도쿄 특파원, 울산 MBC와 청주 MBC 사장 등을 거쳐 2010년 MBC 대표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천시에서 마주하게 된 최승호PD와 김재철 전 MBC 사장 by 뉴스타파

김재철은 말했다. "나는 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사원들을 위해 올바른 인사를 하겠다"라고 선언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PD수첩> 팀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작품을 연출한 최승호 PD는 <PD수첩>의 고참 프로듀서였지만 부당한 인사의 희생자이자 피해자로 남게 되었다. 박성제 기자 역시 아무런 이유와 증거도 없이 해고된 피해자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얘네 둘은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증거는 없지만) 해고했다"는게 전부다. 이것은 잔악한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다. 몽둥이로 때리고 주먹으로 쳐야 폭력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고 믿기 힘들겠지만 '팩트'다.

"야, 너네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해고와 더불어 정직, 감봉 그리고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난 '부당전보' 케이스도 존재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프로듀서가 MBC 소유의 스케이트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과연 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데도 정권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인해 내 정체성이 뒤흔들리고 앞길이 캄캄해지는 그 순간. MBC는 그렇게 점점 무너져갔고 정권 장악은 점점 확장되어갔다.


2. 반격

'반격'이라는 두 번째 소제목이 등장하며 이어지는 장면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여론의 울분이 폭발하는 그 순간이 추악하고 지저분하게 변해버린 언론의 모습과 뒤섞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애달픈 느낌이 가득했다.

MBC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간 믿고 마주했던 방송이었으나 언론 장악으로 인해 국민들의 싸늘하고 따가운 시선과 외면이 가득했던 뒤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념을 결코 꺾지 않았고 정권에 맞서 싸웠다.   

MBC를 그만두게 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KBS의 김용진 전 기사 등은 탐사보도저널리즘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뉴스타파>를 설립했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후원금으로 뉴스를 제작하는 독립 언론이다. 국정원의 간접조작사건, 조세피난처, 세월호 참사의 진실 등을 집중적으로 해부해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이슈와 보도는 크게 화제가 되어 기존 언론과 정권을 향한 반격의 불씨가 되었다. 


"더 상처 받지마 이젠 울지 마 웃어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를 비롯해 전현직 언론인들 그리고 YB가 함께한 <흰수염고래>의 노래가 어두운 극장을 감쌀땐 마치 환한 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MB정부로부터 이어진 박근혜 정부가 불붙었던 투지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https://youtu.be/SE8qd_bnr2s

방송3사 <흰수염고래> 뮤직비디오. 출처 : 유튜브 마봉춘
3. 기레기

MBC는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무려 170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지만 이를 통해 6명이 해고되었고 157명이 징계를 받았다.

MB정부로부터 이어지는 언론 장악은 박근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려는 깊어만갔고 사태는 예상보다 심각해져 갔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극단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당시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면서 '전원 구조'라는 속보는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만한 뉴스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보였고 이로 인해 '세월호 보도 참사'라는 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목포 MBC는 현장을 취재해 서울로 올려 보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현장의 이야기는 묵살되었다. 정부가 원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뉴스로 받아쓰는 턱에 앵무새 언론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갉아먹히던 공영방송은 힘겨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암이 전이되듯 더욱 퍼져만 갔다.

세월호 유가족의 청와대 행진과 언론 취재 행렬 by 뉴스타파

저 멀리 조명탄이 쏘아 올려지고 그 거대했던 세월호의 뱃머리만 보이자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은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이를 눈으로 보고 있는 관객들 역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송사의 주요 보직자들은 달랐다.

당시 MBC 전국부장이었던 박상후 부장은 세월호 구조 현황 보고를 묵살하고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MBC뉴스는 그야말로 거짓말을 했다. 당시 김장겸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 사람들 깡패 아니냐"는 발언도 했다. MBC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더욱 변해갔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어땠을까?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과 KBS 김시곤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흘러나와 관객들의 귓가에 그대로 꽂힌다. 이정현 홍보 수석은 "KBS가 이렇게 정부를 까서 되겠습니까?"라며 윽박질렀고 김시곤 보도국장은 "이보다 어떻게 더 잘해줍니까?"라며 답답해하면서도 홍보수석을 아이 달래듯 했다.  

"좀 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극적으로!"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 탄압은 국민들을 타깃으로 했고 결국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으로도 이어졌다.  

기레기는 태극기 부대와 엄마부대의 응원을 받아 더욱 힘을 내는 듯했다. 그 선두에는 MBC 김세의 기자와 아나운서 최대현이 있었다. 물론 이 작품 속에서도 깨알 같이 등장했다. 그들은 잘 살고 있었다.

이용마 전 MBC 기자(좌)와 김민식 PD(우) by 뉴스타파

반면 MBC에서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기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져 갔다. 암 투병 중이었다. 제작진이 이용마 기자에게 요새 뭘 쓰냐고 묻자 머쓱해하면서 말한다. 기고도 아니고 책도 아니란다.

"아이들을 위해 글 쓰고 있어요"

이 한마디를 어렵게 내뱉은 그의 눈은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MBC 김재철 사장 이후 안광한이 거쳐갔고 지금 김장겸 사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안광한 사장은 김재철이 수장으로 있을 때 인사위원장으로 해고와 징계를 지휘한 사람이다. 김재철 정권에서는 약 200여 명이 피해를 입었고 안광한 때는 77명이 징계를 당했다. 

김장겸 현 사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87년 MBC에 입사했다. 런던 특파원과 보도국 기자를 거쳐 2013년 5월 보도국장으로 활동했다. MBC 구성원들은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그 역시 MBC 파괴의 중심에 서있는 핵심인물이다. 

김장겸 현 MBC 사장과 최승호PD by 뉴스타파

세월호 참사 당시 KBS의 사장은 길환영 씨였다. 공채 PD로 입사하여 사장에 오른 인물로서 청와대와 아주 각별했다. 이러한 관계는 뉴스 보도를 통제하고 제압하는데 아주 잘 활용됐다.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여론이 들끓자 임기 1년 만에 해임됐다. 

KBS에는 고대영 사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1985년 공채 11기로 입사하여 정치부와 모스크바 특파원, 보도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5년 사장 자리에 앉게 된 고대영 씨는 공영방송 탄압의 심벌이기도 하다.

고대영 현 KBS 사장과 취재를 시도하는 뉴스타파 by 뉴스타파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과 공감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3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작은 소제목이 존재한다. 

하나는 <점령>, 또 하나는 <반격>,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기레기>

우리나라의 언론을 장악, 즉 '점령'한 MB정부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나고 여기에 '반격'을 시도하는 언론인들의 투쟁을 감동적이고 극적으로 보여준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싸우는 언론인들과 달리 여전히 '기레기'라는 타이틀로 '잘 살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의 모습을 공범자라는 프레임 안에 담아냈다. 다큐멘터리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속도감 있고 짜임새 있는 연출은 여느 작품 못지않다. 특히나 깊게 와 닿는 시퀀스들을 통해 분노하게 되고 눈물짓게 된다.

영화 <공범자들>은 8월 17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MBC 대표이사를 비롯한 전현직 임원 5명이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명예훼손'으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인물은 김장겸 현 사장, 백종문 부사장, 박상후 시사제작부국장, 김재철 전 사장, 안광한 전 사장 등이다. 

최승호PD 해고의 직접적인 당사자들. 왼편은 최승호PD. 가운데는 백종문 MBC 부사장. by 뉴스타파

만일 이들의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이 영화의 개봉이 미뤄진다거나 최악의 경우 철저하게 막혀버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들 덕분에 <공범자들>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였다. 영화 관계자와 영화인 단체에서는 성명을 냈고 이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들마저도 서명 운동에 나섰다.

<공범자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이명박-박근혜 라인으로 이어지는 권력에 양심까지 팔아넘긴 말 그대로의 '공범자들'이다. 이들은 정부 권력에 굴복하고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던 공영방송의 한 귀퉁이에 자리해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전이된 공영방송의 몰락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진실을 숨기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워대는 그들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공익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길인가?

저들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은 결국 기각되었다. <공범자들>은 예정대로 8월 17일 정상적으로 개봉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었다면 이 영화를 멀티플렉스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어쩌면 상영금지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영화는 100여 개 스크린을 확보하여 무난하게 출발했다. 개봉 4일이 지난 지금 약 6만여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공범자들은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며 책임전가를 일삼고 도망다니는 꼴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MB와 만난 최승호PD by 뉴스타파

마지막 시퀀스에서 최승호 PD는 강남 모 건물 앞에서 MB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최 PD가 질문을 했다. "언론을 파괴한 주범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걸 왜 나한테 묻냐"라고 한다. 

고급 세단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지는 MB 역시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이 작품은 MB를 포함한 공범자들에게 족쇄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가슴 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가 미래를 바꾸는 변화의 계가 되리라고 본다. 


정권은 바뀌었다. 하지만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공존하고 있다. 

부당한 권력으로 인해 공영방송의 기둥이 무너져버린지 9년이 지났다. 이 작품은 팩트에 근거한 기록으로 드라마를 썼다. 그러면서도 확고한 메시지를 유지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과 공감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일 것이다. 


※ 위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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