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Aug 03. 2017

<비밀의 숲>이 웰메이드가 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

tvN 드라마 <비밀의 숲>, 극본과 배우가 시너지를 발휘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른 감정의 소년은 확고하고 철저하며 명문화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검사가 되었다. 이렇다 할 친구도, 딱히 친한 동료도 없는 전형적인 외톨이 검사.

서부지검 황시목(조승우) 검사는 어느 살인사건에서 싸늘한 시신을 마주하게 되고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한여진(배두나)과 함께 수사에 나선다.

한여진은 거침이 없다. 그러나 따뜻한 심성을 가졌고 신념 또한 확실하다. 강력계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경찰대학 출신의 여경으로 더러운 이 세상의 변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강하다.

날이 갈수록 범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반면 주변 사람들의 미스터리만 늘어간다. 미궁으로 빠지는 사건이 설계된 진실로 수면 위에 드러나는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기를 가진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  by CJ E&M

탄탄한 극본이 훌륭한 배우를 만나, 웰메이드로 탄생하다!

조승우가 배두나와 함께 tvN 드라마에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드라마의 장르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범죄 스릴러였다. 전혀 낯설지 않은 소재이기 때문에 다른 유사한 드라마들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있었고 연출(안길호)이나 극본(이수연)을 쓴 제작진의 이름은 그 반대로 낯설었기에 '뻔한 내용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노련함을 믿었고 낯설지 않은 소재의 새로운 변형을 기대했다.

이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은 3% 수준. 황시목의 감정선에 대해 캐릭터 소개하듯 짧은 설명이 있었고 장르에 걸맞게 피범벅이 된 시신이 등장했으며 기존과 유사한 범죄 스릴러의 색깔처럼 단순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지만 첫 회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묵직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렇게 다음 편을 기다리고 돌아올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최종화는 6%대의 시청률을 보였다. 16부작 내내 탄탄하다 못해 빈틈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이수연의 극본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함께 시너지를 발휘했다.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였지만 검찰 내부와 대기업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처음부터 큰 그림으로 설계되었고 이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예상을 한 단계 뛰어넘는 계기로 작용했다. 혹자는 '이 드라마가 한드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장르가 가진 날카로운 예리함과 한드의 기준이 될만한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1. 조승우의 연기와 황시목의 캐릭터

조승우의 연기력은 자타공인 흠잡을 곳 없는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타짜>에서는 원작 만화에서 튀어나온듯한 캐릭터를 선보였고 <암살>에서는 짧은 출연에도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조승우는 영화 <내부자들>에 이어 다시 검사역을 맡게 되었다.

드라마가 가진 범죄 스릴러의 전형을 탈피한 것은 전체 16화를 아우르는 황시목의 감정선에서 비롯된다. 보통 사람과 달리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황시목의 뇌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기에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술이 불가피했다. 수술로 인한 후유증은 극심한 통증과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 감정이 없다는 캐릭터의 유니크함을 16화 내내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조승우의 몫이었고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웃음도 없고 절망도 없으며 눈물도 흘리지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 하나 없이 오로지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사건의 복잡난해함 속에 황시목이 중심을 잡는다. 덕분에 "황시목이 범인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었다. 애청자였던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작가가 그려놓은 황시목의 캐릭터는 드라마가 가진 예리한 전략이었고 그 전략은 날카롭게 꽂혔다.

황시목 검사 역의 배우 조승우.  by CJ E&M
2. 검찰과 대기업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잘 버무려낸 극본

이 드라마는 검찰 내부 배경이 주를 이룬다. 황시목과 연결된 검찰 내부 조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이창준(유재명)이다.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로 그리고 다시 검사장으로 고속승진한 이창준의 권력은 검찰을 뒤흔든다. 이창준의 장인어른으로 등장하는 한조그룹의 이윤범 회장(이경영)은 이 권력 뒤에 숨은 거대한 배후세력이다. 대기업의 검은 손이 검경의 부패를 양산하고 정부 권력에 손을 뻗는 행위 자체는 영화 <내부자들>이나 SBS 드라마 <펀치> 등 다양한 작품들의 소재로 빈번하게 쓰인 바 있다. 충분히 진부해질 법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잘 짜여진 극본의 힘이고 신진작가의 놀라운 용기다.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검경 조직의 부정부패가 하나둘씩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에서는 청량감을 주기도 했다. 고구마 먹듯 갈증과 답답함을 유발하는 요소보다 긴장감에 치중했던 것 역시 고루함을 넘어선 영리함이다. 싱싱하고 맛깔난 재료를 장인의 손길로 아주 잘 버무려낸 고품격의 비빔밥 같다.


3. 리얼하게 그려낸 제작진의 힘

드라마 제작진들은 검찰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컨설팅까지 받았다고 한다. 수많은 서류와 박스들이 마치 진짜 검사 방을 보는듯 하다거나 검사들이 출입하는 모습들까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그려내 제작진의 꼼꼼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황시목의 집을 비출 땐 취사도구 하나 없는 주방이 배경이 되고 한여진의 집을 비출 땐 한강의 밤 풍경을 배경으로 옥탑방의 정취마저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황시목에게 있어 집은 자신만의 공간, 한여진의 집은 누구나 찾아와 기댈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 되며 이윤범과 이창준의 집을 비출 땐 으리으리하지만 사람 냄새나지 않는 차가운 공간으로 각 캐릭터에 맞게 제대로 설정된 듯하다.    


4. 배우 유재명의 재발견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보면 동룡(이동휘)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마주했던 진짜 선생님과 같은 모습으로 분신과 같은 몽둥이를 들고 나타난다. <응답하라 1988>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황시목이 중심을 잡는 인물이라면 유재명이 연기한 이창준 캐릭터는 드라마 전체를 흔드는 인물이다. 어쩌면 작가가 설계해두었던 시나리오에서 가장 공을 들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헤어스타일에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창준의 카리스마는 남달랐다. 더구나 기존 작품에서 보이지 않았던 중후함마저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사투리 억양이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는 확실한 전달력을 가졌다. 이창준의 캐릭터는 검사로서의 능력과 뛰어난 통찰력을 선보인다.  황시목이 사건을 바라볼 때 흔들림 없는 시선을 가졌듯 이창준은 그 단계를 뛰어넘는 눈빛을 가졌다. 드라마는 황시목으로 시작해 이창준으로 귀결된다. 드라마의 거대한 설계에 유재명은 신의 한 수였다.

이창준 역의 배우 유재명. by CJ E&M
5. 극의 완성도를 높인 배우들의 힘

극의 긴장감과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각자 자리에 위치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다. 앞서 언급한 황시목과 유재명이 드라마의 기둥으로 자리한다면 나머지 캐릭터들의 역할분담은 숲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한여진 역의 배두나다. 말이 없는 황시목에게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캐릭터 역시 한여진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듯한 황시목과 달리 측은함에 눈물을 흘리고 동료들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밝게 웃는 긍정의 캐릭터다.

이창준의 아내이자 한조그룹 이윤범 회장의 딸로 등장하는 이연재(윤세아)는 한여진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분명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서슬 퍼런 목소리나 눈빛은 매우 강렬하다 못해 검찰을 뒤흔드는 이창준도 무릎 꿇게 만드는 악녀의 힘이 존재한다. 대다수 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악녀의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윤세아가 연기한 이연재는 싸늘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한조그룹의 회장인  이윤범에게 있어 이창준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일종의 방패이자 창과 같은 존재다. 때로는 거침없이 휘두르고 때로는 공권력 뒤에 숨어 자신을 지킨다. <군함도>에서 보여주었던 윤학철의 이경영보다 <비밀의 숲>을 통해 선사했던 이윤범으로서의 이경영의 연기가 월등히 뛰어난 것 같다.

이창준의 오른팔로 자리매김했던 배우 이준혁의 서동재 캐릭터 또한 조연의 자리에서 빛이 난다. 사실 이만큼이나 야비한 캐릭터는 없을 것이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매우 영악한 캐릭터로서 권력에 달라붙어 숨을 쉰다. 시종일관 얄밉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드라마를 시청한 시청자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말한 캐릭터가 바로 영은수(신혜선)다. 황시목에게 '선배'라 부르며 그 누구보다 친근한 애정을 표시하고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옆에 바짝 붙은 한여진을 향해 질투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한여진의 캐릭터도 '막무가내'에 가까운데 영은수 또한 그런 면모를 보인다. 영은수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연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싸늘한 주검이 된다. 시청자도 그랬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신혜선 역시 영은수의 죽음에 마음 아파 했을 것이다.

<비밀의 숲> 인물관계도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리뷰를 써본게 얼마만이던가? 공중파를 위협하던 tvN 드라마의 완성도는 어느새 공중파를 넘어섰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탄탄해진다. 사실 종편채널이라는 한계점과 주말 편성으로 인해 시청률은 평균 6~7% 수준이었다. 참고로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시청률은 30%를 넘어섰다.

물론 시청률에 나타나는 숫자가 웰메이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긴장감 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범죄 스릴러가 갖춰야 할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더구나 적재적소에 배치한 캐릭터들과 서로 얽히고설킨 인물관계도, 시퀀스와 신의 연결 마저도 드라마의 속도감을 진중하게 유지하는 장치가 되었다. 흔히 볼 수 있을법한 로맨스 따위는 과감하게 감량한 것도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과 우동을 먹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관계는 그러한 측면에서 아주 담백하다.

16부작 내내 기대했던 결말에서 우리는 어느정도 예상했던 캐릭터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 캐릭터는 작가가 심어놓은 인물이고 그 인물은 '좋은 세상'을 위해 미리 큰 그림을 그려두었던 것으로 종미된다. 마치 자신을 이어갈 다음의 세대들에게 교훈을 주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더불어 과거로 회귀하는 플래시백은 드라마의 마무리를 설명해야 할 미션을 가진 필수적 시퀀스겠지만 15부작 내내 이어져온 탄탄함에 아주 살짝 늘어지는듯한 느낌을 선사해 조금의 아쉬움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있어 주말 저녁은 심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작품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을만한 시퀄이나 프리퀄, 스핀오프까지 모두 기대하게 됐다. 신인작가의 용기를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어졌다.

이 글은 '저도 영화 좋아합니다' 카테고리에 넣어둡니다. 제겐 영화 같았거든요! ^^

매거진의 이전글 <군함도>는 현실적인 아픔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