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영화로서의 아쉬움이 남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지난 20일 개봉한 <덩케르크>는 작품의 완성도와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로운 시도와 섬세한 역사 고증의 깊이, 무엇보다 작품의 웰메이드급 완성도로 전례 없는 찬사를 받았다.
<덩케르크>가 개봉한지 불과 7일만에 <군함도>가 박스오피스에 올랐다. 무려 2천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면서 원하는 시간대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나 바꿔말해 다양성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어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간 류승완 감독의 작품들에서 상업적 측면의 재미는 기대감 이상이었고 완성도나 플롯에서도 크게 흠 잡을만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느껴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테랑, 2015>은 작품이 선사하는 흥미진진함과 플롯에서 비롯되는 통쾌함, 전체를 아우르는 활극액션까지 류승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무려 1천341만명이나 끌어모았고 급기야 천만관객 감독으로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베테랑> 이후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류승완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격인 황정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최근 결혼 발표한 송중기에 '소간지' 소지섭까지 이름만으로도 한몫 하는 배우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220억원을 들인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천만에 가깝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를 담았다는 감독의 메시지, <군함도>
얼마 전, 용산 아이파크몰 CGV가 리노베이션되었다. CGV 히스토리에 랜드마크가 될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화관이 새롭게 태어났다. 유난히 사람이 많았던 어느 날. 이 곳에서 <군함도> VIP 시사회가 열렸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영화 관계자에 팬들까지 밀집했고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배우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앞서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에서도 뜨거운 반응이었다고 하니 이쯤되면 개봉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믿고 보는 천만감독 류승완의 후속작인데다가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군함도(하시마섬)에 대한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게 된 것이기에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영화 개봉 이전 몇차례에 나눠 등장한 트레일러는 영화 예고일 뿐인데도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며 영화에 거는 기대를 한층 더 높이기도 했다.
1945년 일제강점기의 어느 날.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만을 믿고 무작정 배에 오르게 된다. 악단에서 공연하던 강옥(황정민), 그와 함께 탭댄스를 추던 딸 소희(김수안), 종로 깡패 최칠성(소지섭), 산전수전 다 겪은 오말년(이정현) 등 하나같이 사연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배에 모여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속에서 조금이라도 숨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배가 향하는 곳으로 그저 몸을 맡긴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군함도. 지옥섬이라 불리는 하시마섬이다.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추위와 배고픔, 일본의 강압적이고 잔혹한 채찍질로 인해 극한의 고통을 받아 희생된 곳이었기에 지옥섬이라 불렸다.
연령에 관계없이 남자들은 지하 1천미터 아래 탄광으로, 여자들은 유곽으로 내몰렸다.
광복군 소속의 박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물이었던 윤학철(이경영)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하달받고 노동자로 잠입하기에 이른다. 매일같이 고통받는 그들은 언제나 탈출을 꿈꾸지만 거센 파도와 일본인들의 엄중한 감시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강옥은 간곡하게 애원한다. 소희만큼은 윤학철과 함께 나가게 해달라고.
"나갈거요! 여기 있는 조선인들 모두!"
무영이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인들 모두 이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전쟁이 거의 끝나갈 때쯤, 미군의 대규모 폭격이 시작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직감한 일본은 군함도에서 겪은 조선인들의 뼈아픈 기억들과 자신들의 잔인한 만행을 감추기 위해 모든 것을 폭파시키려 한다. 이를 눈치챈 조선인들은 탈출을 계획하고 빈틈을 노려 감행한다. 조선인들의 탈출 시퀀스는 이 영화의 후반부를 마무리 짓는 하이라이트로 주연 배우들을 비롯해 수많은 엑스트라가 함께해 장관을 이룬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의 모습을 보고 지옥섬 탈출에 관한 스토리를 플롯으로 엮었다고 했다. 이어서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섬안에 갇혀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군중들의 모습을 담기 원했다고 한다.
엔딩시퀀스에서 펼쳐지는 탈출 장면 속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울부짖으며 일본인들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하나로 뭉친 군중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일본은 여전히 사죄에 대한 생각이 없다. 군함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우리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상처로 남아있다.
'반드시 봐야 할 영화는 없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는 있다'라는 류승완 감독의 언급처럼 우린 뼈아픈 상처만을 남긴 군함도의 존재와 그 역사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감독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재료는 풍부한데 맛이 나지 않는 류승완 브랜드
가끔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생전 처음 보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맛깔스러운 그 자태에 침이 고이곤 한다. 처음 보는 음식이니 경험은 고사하고 어떠한 풍미를 가졌는지 알 순 없으나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그 맛. 금방 저녁을 먹었는데도 한 입 먹고 싶다는 생각이 으레 들게 마련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빛만 좋은 개살구'라면 어떨까? 실제로 먹고 나면 '이게 무슨 맛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듯 이번 <군함도>가 바로 그런 맛을 전해준다.
싱싱한 재료와 맛깔스러운 풍미를 그릇에 오롯이 담았는데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이 드는건 요리사의 손으로 잘 버무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재료와 그릇 그리고 요리사가 잘못 만난 불운일 수도 있다.
사실 <군함도>의 캐스팅은 훌륭했다. 이름만 들어도 어느 한 영화의 원톱이 되어왔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캐릭터의 색깔이 어떻게 변해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군함도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놓여있는 거대한 그릇 안에 플롯을 깔고 캐릭터를 얹어 조화롭게 선보일수만 있다면 어마어마한 작품이 나올거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배치가 플롯과 잘 섞이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감독이 심어놓은 윤학철의 정체성이라던지 그 밖에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색깔들에서는 역사적인 실재와 연출된 가상의 여부를 떠나 작위적인 모습까지도 느껴졌다.
캐릭터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정민의 경우, 그간 류승완 감독 작품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으나 어느정도 한계를 보였다. 허나 이 영화에서는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익살 맞으면서도 부성애가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였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떠오르는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권력에 빌붙고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기회주의자로 보일 순 있지만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곱씹어볼때 '인간'이자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다.
황정민과 함께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 캐릭터는 바로 이정현이다. 오말년 역의 이정현은 영화 도입부부터 찰진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위해 체중 감량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녀의 캐릭터는 억울하게 끌려온 위안부의 모습이라기보다 여전사처럼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무거운 총을 들고 전쟁터와 같은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장면 나아가 강렬하면서도 애절하고 처절한 눈빛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큰 인상을 남겼다. <명량>에 등장했던 이정현의 짧지만 굵었던 신이 생각난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건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였을텐데 이 작품 속에서도 그녀의 자리매김은 분명했다.
오말년과 호흡을 맞춘 최칠성(소지섭)의 모습은 처음부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캐릭터의 운명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다. '아 이 캐릭터는 이렇게 되겠구나'
조선의 깡패답게 굉장히 상남자스러운 모습을 보여 '괜히 소간지가 아니구나'라는걸 다시 한번 느꼈으나 최칠성과 오말년이라는 두 사람의 캐릭터 설정은 플롯과 동떨어진 느낌도 존재했다. 다만 최칠성이 일본인들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순간의 쾌감은 매우 통렬했다.
박무영 역의 송중기는 이미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남자답고 군인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태양의 후예>에서 이어지는듯한 캐릭터의 답습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에 일조한다.
가장 눈에 거슬렸던건 이경영이 연기한 윤학철. 사실 윤학철의 정체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크게 좌우한다. 조선인들의 고통과 피폐했던 삶에 있어 독립운동가 윤학철의 선동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 중심에 뿌리 박은 기둥과도 같다. 흔들릴듯 흔들리지 않았던 윤학철의 정체가 뒤바뀌는 순간과 이후로부터 펼쳐지는 캐릭터의 변화는 오버스러울 정도로 지극히 작위적이었다.
감독은 역사의 아픔을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다. 일장기를 찢는 장면이나 일본인들의 목을 베어 통쾌함을 안겨주는 것은 우리가 가진 분노를 해갈해주기에 상당 부분 못 미치는건 불변의 진리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행했던 무자비한 작태와 군함도에 대한 현실적인 아픔과 희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의 행위는 존재감이 없을정도로 뜨뜻미지근하다. 당시 군함도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잔혹함은 상상 이상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분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다른 쪽으로 포커싱 되어 있는듯 했다. 그 자리엔 윤학철이 있었고 배우 김민재가 연기한 송종구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앞잡이와 조선인들의 분열이 일본인들의 만행보다도 더 눈에 띈다는 것.
군함도와 같이 역사 속 어딘가에 자리한 쓰라린 상처는 결코 낫지 않는다. 그 흔적들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 바라보는 군함도는 다른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우리가 겪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또 얼마나 아팠을지 알려주는 계기로서의 <군함도>는 영화라는 예술적 행위를 넘어 류승완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라는 차원에서는 곱씹어볼만 하다. 독과점 논란을 떠나서말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 위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일단 독과점 논란을 떠나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드시 알려야 할 미션을 이 영화에 담아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220억원을 쏟아붓고 손익분기점인 천만관객 동원을 위해 모든 극장에 <군함도>를 내건듯한 모양새는 사실 좀 불편합니다. 전국 극장의 80% 이상이 <군함도>를 상영하자 영화의 퀄리티를 떠나 별점 테러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독과점 논란도 논란이지만 영화적 스케일과 신파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과거 MBC <무한도전>의 군함도편을 통해 느꼈던 슬픔과 현실에서 느끼는 아픔이 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자극한다는 느낌이 드는건 저 뿐만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