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Mar 24. 2020

조선을 집어삼킨 역병, 막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필사적으로 막아내려는 그들과 이를 악용하는 무리들, 우린 어느 쪽인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귀신이나 악령이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는 이제 어느 정도 거부감이 들고 선혈이 낭자하는 슬래셔 무비는 (매우 역하지만) 플롯 자체가 너무 뻔해서 하품이 날 정도다. 좀비물의 경우 '간담이 서늘한 호러'라고 보기엔 매우 아쉬운 감이 있는 편인데 좀비(Zombie)를 매개체로 한 플롯을 <월드워 Z>나 <새벽의 저주>,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처럼 액션이나 스릴러로 이어가는 경우들이 있어 개인 취향에 맞는 편이었다. 하긴 김남길 주연의 <기묘한 가족>도 좀비물이지만 코미디로 재미있게 엮은 작품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해 코미디로 제작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 같은 작품들도 있어 이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쨌든 뿌리는 좀비물이고 열매는 플롯과 연출에 따라 모두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앞서 언급한 전자의 좀비물은 보면 대부분 비슷한 설정이다. 평화로웠던 도심이 좀비들로 인해 아비규환으로 뒤바뀌고 순식간에 아포칼립스를 맞이하게 된다. 우글거리는 좀비 떼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 그 사이를 뚫고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작품마다 다르긴 해도 좀비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좀비에게 맞서 싸우는 무리가 있는 반면 좀비를 악용해 이득을 취하는 일당들도 존재하곤 한다. 결국은 살아있는 시체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을 위한 이야기이며 인간의 본능과 탐욕, 이기심 그리고 인간애를 두루 다루는 편이다.    

살아있는 시체, 좀비(Zombie)  출처 : wsj.com

2019년 1월, 한국형 좀비물이라는 정체성을 띄고 넷플릭스(Netflix)에 새로운 콘텐츠 하나가 등장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조선은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영혼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린 채 육체만 겨우 살아있는 조선의 왕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허수아비다. 한편 반역자로 몰린 세자 이창(주지훈)은 백성들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지하고 이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조선이 처한 최악의 위기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Kingdom>은 왕의 권력을 노리는 조학주(류승룡) 일가의 소름 끼치는 탐욕과 왕세자 이창(주지훈)과 그를 믿고 따르는 일행들의 사투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 <끝까지 간다>와 <터널>의 메가폰을 잡았던 김성훈 감독과 <시그널> 돌풍을 일으켰던 김은희 작가가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첫 번째 시즌은 딱 6편으로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콘텐츠가 대부분 그러하듯 시즌 하나를 통째로 내놓는데 정주행 하기에 충분한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어 아주 감질날 정도다. 시즌1에 담긴 6편은 필자에게 너무 짧았고 시즌2를 기다리는 그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2020년 3월, 시즌2에는 영화 <특별시민>을 연출한 박인제 감독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김성훈 감독의 제안을 받아 참여하게 된 박인제 감독으로 <킹덤>의 연출은 '투톱'을 이루게 되었다. 김은희 작가는 그대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시즌1에서 잔뜩 풀어놓았던 맥거핀(Macguffin)이 하나둘씩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즌2 역시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킹덤> 시즌2는 온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 19라는 악명 높은 바이러스와 함께 그 시간대를 맞추며 호평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19를 차치하고서라도 <킹덤>의 만듦새는 전례 없을 정도로 뛰어나며 긴장감과 속도감이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  출처 : kr.ign.com

※ <킹덤>에 대한 리뷰는 짧게 다룹니다.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가 긴장감을 더해준다

보통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보면 대다수 각기춤을 추는듯한 느낌이다. 죽어있던 시체가 다시 살아났으니 뼈나 살이 굳었다고 봐야겠다. 몸이 뒤틀리고 멀쩡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기괴한 모습이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시체'라 할만하다. 그러나 <킹덤>에 등장하는 역병 환자들은 그 어느 좀비들보다 속도감이 있다. 먹잇감을 향해 저돌적이고 빠르게 돌진하는 모습으로 인해 충분한 긴장감을 준다. 더구나 해외 좀비물과 달리 세자 창이 휘두르는 검으로 인해 역병 환자들과 더욱 가깝게 붙기 때문에 위기감을 더한다. 권총부터 샷건까지 총알 하나로 날려버리는 헐리우드 좀비물과 <킹덤>에는 이처럼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생사역들의 물리적인 속도감과 더불어 이야기의 전개도 느리지 않다. 시즌 하나가 딱 6편이기 때문에 느리게 갈 수도 없다. 10편이나 16편짜리로 만들었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을 수도 있으니 전략적으로 보면 심리적인 속도감도 <킹덤>에겐 장점으로 보일 수 있겠다. 

조학주나 안현대감(허준호)이 묵직한 캐릭터라면 세자 이창은 종횡무진 리더답게 그리고 영신(김성규)은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흠잡을 곳 없는 캐스팅이 <킹덤> 캐릭터와 균형 잡힌 밸런스를 이루고 나니 감독과 각본이 바라는 대로 퍼즐이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시즌3,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일부 캐릭터 중,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극 발성으로 인해 말들이 좀 있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총과 석궁을 무기 삼아 싸우는 그들, 미드 <워킹데드>  출처 : itl.cat

위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

<킹덤>은 한국형 좀비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좀비(Zombie)'라는 노멀(Normal) 한 키워드 대신 '역병에 걸린 백성'이자 '생사역'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역병이라 함은 급속도로 전파되며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집단적 전염병이다. 좀비라는 키워드는 먼 나라 어느 곳 부두교 의식에서 생겨났으며 '살아있는 시체'를 뜻한다. 역병에 걸려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린 생사역들은 죽음에 이르렀다가 육신만 살아나 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조선의 백성이지만 이들을 막지 않으면 더욱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니 세자 창은 군사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싸운다. 한편 왕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조학주(류승룡)와 중전(김혜준)은 오히려 역병을 악용하며 조선의 위기를 더욱 배가시킨다. 벼랑 끝으로 몰린 세자 일행과 이들을 떠밀려는 조학주 무리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위기는 누군가에게 고통과 불안이 된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명분이 되기도 한다. 조학주에게 있어 백성은 그저 미천한 존재일 뿐 역병이 뒤덮은 조선에 있어 왕실과 종묘사직 그 자체가 지켜야 할 명분이라고 외친다. '허울'뿐인 명분 그 안에 감춰진 탐욕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육을 집어삼키는 생사역의 모습들 역시 무섭지만 그들을 미끼 삼아 권력을 노리는 조학주 일가의 탐욕 또한 공포스럽다.

막으려는 자들과 악용하는 무리들, <킹덤> 시즌2  출처 : honknews.com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다

조선의 왕은 껍데기만 남았다. 사실상 권력은 영의정 조학주에게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왕실 모두 좀비가 된 셈이다. 왜군의 침략도 없이 조선 땅이 전쟁통이 된 상황에서 벼슬아치라 일컫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만 챙기기에 급급하다. 좀비물로 유명한 미드 <워킹데드>에서도 좀비가 중심이 되진 않는다. 좀비는 그저 선과 악을 잇는 플롯의 도구일 뿐이다. 좀비로 인한 아포칼립스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본능을 그린다. 살아남은 자들이 생존을 위해 집단을 이루고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지만 '상생'이라는 말을 집어던진채 누군가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집단이 등장하기도 한다. <킹덤>에서도 인간을 향해 돌진하는 생사역 역시 막으려는 자와 악용하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체다.

지금 '코로나 19(COVID-19)'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뒤덮어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 19는 현실이다. 하필이면 '총선'까지 예정되어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코로나 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일부 외신들은 우리나라 정부의 대처능력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다. 필자는 팩트만 이야기할 뿐이지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다. 지금 이 현실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다 같이 힘을 모아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종교 집회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총력을 기울이는 대다수와 대립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는 또 어떠한가? 바이러스라는 매개체를 지렛대 삼아 소위 '물타기' 하는 경우들이 보인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이지만 '메이저' 수준의 언론이 교묘하게 뽑아내는 헤드라인은 자칫 독을 품은 미끼가 될 수도 있다.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실체나 누군가의 노력을 철저하게 무시한채 그저 어뷰징만 일삼는 언론사의 기사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잔인한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펜이 칼보다 강하다지만 이를 마구 휘두르면 되겠는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627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답은 과연 무엇일까? 우린 왕세자 이창과 같이 함께 사투를 벌이는 리더가 부재한 것일까? 리더의 부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수많은 조학주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잡기는커녕 더욱 퍼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킹덤>은 드라마이고 극 중에 등장한 생사역이나 생사초 모두 픽션이지만 코로나 19는 현존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고 마스크를 찾아 헤매는 우리가 처한 지금 이 순간 역시 현실이다. 위험한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학주 같은 캐릭터가 늘어날수록 사투를 벌이는 그들과 죄 없는 백성들은 더욱 피폐해질 뿐이다. 물론 아포칼립스라는 절대적인 파멸도 시간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딘가 한줄기 희망은 있지 않을까? 캡틴 아메리카 같은 히어로가 굳이 있을 필욘 없다. 이미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있는 그 따뜻한 손길이 우리가 갈망하던 히어로의 모습일테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  출처 : honknews.com

그나저나 시즌3는 언제 나오려나. 


#킹덤 #넷플릭스 #코로나19

<킹덤> 시즌2를 바라보며 개인적으로 가졌던 감정을 이야기했을 뿐 그것이 무엇이든 논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킹덤>과 코로나 19를 비교한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역시 그중 하나, 편하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부디 코로나 19를 이겨내고 따스한 봄을 본격적으로 만끽했으면 좋겠네요! 가급적 스포일러 요소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덕분에 <킹덤>에 대한 내용은 지극히 적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는 봉준호 감독을 보며 영화인을 꿈꾸게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