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힘들었던,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유럽여행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 후기'라고 한다면 보통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또 무엇을 구경하고 다녔는지를 쓰기도 할 테지만 나처럼 '무엇을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추억 곱씹으며 남기기도 할 것이다. '머피의 법칙'인 것처럼 최악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충분히 기억에 각인될 여행이었으니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일 테니까. 내가 보고 느꼈던 부분은 일단 미뤄두고 불가피하게 경험했던 걸 굳이 남겨본다.
갖고 싶어 했던 조던 신발 하나를 기차표와 바꾸다!
회사에 오래 다닌 것 같지도 않은데 장기휴가를 받게 되는 '연차'가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시점에 휴가를 받았으면 억울했을 정도로 지금은 '입국 가능'이라 적힌 나라가 수두룩 하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조건부'가 붙은 입국 가능 국가도 있기는 하다. 일단 제주도를 넘어 해외에 가고자 했던 굳은 의지를 가지고 여러 나라를 검색하다가 적당한 목적지를 찾아 스케줄링을 시작했다. 여행하기 좋은 시즌인지라 가격도 천정부지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스위스 바젤과 그린델발트, 슈피츠 등을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와 로마까지 가는 일정으로 비행기, 기차, 숙소까지 모바일 하나로 모두를 해결했다. 다만 어디에서 며칠을 머무느냐, 이동은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사실 몇 곳은 유동적이기도 했다.
'바젤에서 1박을 할까?', '아니야 밀라노 구경을 조금 더 할까?'
하나씩 퍼즐 맞추듯 스케줄을 쌓아나갔다. 그렇게 일부 확정된 구간에 대해서는 Omio(오미오)라는 이동수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게 됐다. 말 그대로 기차, 버스, 비행기 티켓팅이 가능한 앱이다. 단 스위스 슈피츠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들어가는 구간만 Trainline(트레인 라인)이라는 앱을 활용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좌석을 선택해 확정, 바로 결제까지 했는데 이후 예약 내역은 달랐다. 분명히 3명의 이름을 기입하고 결제한 것인데 왜 결과 값에는 2명만 나오는 것인지.
'에이 별 문제 있겠어? 일단 가서 타면 되겠지'
그러다가도 슈피츠에서 밀라노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티켓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지 몰라 다른 티켓을 구해보기로 했다. 이전에 결제한 티켓은 홀딩하고 새로 검색해서 마무리하니 이번에는 다행히도 정상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존 티켓 자체가 환불도 변경도 안된다고 한다. 이메일을 보내도 같은 답. 구글링 해서 찾아봐도 이러한 경우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환불이나 변경이 가능한 티켓을 사려면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결국 나는 내가 사고 싶어 했던 조던 운동화 하나를 날려버렸다.
'에휴 어쩌겠나, 잊어버려야지'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얼렁뚱땅 확인도 하지 않았을까.
안녕, 나의 연차휴가!
그렇게 숙소부터 기차표까지 모두 예약이 마무리되어 휴가계만 내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장기휴가 자체는 10일 정도인데 회사 복지 차원에서 이틀이 늘어나 12일로 변경됐다. 인사팀에 확인해보니 2022년부터 적용. 하지만 나는 이미 2021년부터 장기휴가 대상자라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멀쩡히 남아있던 연차휴가를 탈탈 털어 장기휴가에 붙일 수밖에 없었다. 휴가를 다녀오면 12월 31일까지 쉬는 날 없이 모두 워크데이인 셈. 이 또한 어쩌겠나. 기분 좋게 캐리어에 짐을 채워 넣기로 했다. 물론 빈틈 사이로 보이지 않는 부담감도 함께 넣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스위스 바젤로
몇 년 전 뉴욕에 갔었다. 13시간이 되는 시차에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고 아침이 되면 어쨌든 일정을 소화하려 겨우겨우 힘들게 일어나기를 반복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시 8시간 남짓 되는 시차가 있다 보니 새벽 4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조식이 시작되는 아침 6시 30분을 기다리며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초겨울 날씨인 듯 매우 추웠다. 조금 두터운 아우터를 가져오긴 했지만 칼바람을 견뎌내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스위스 바젤로 넘어가는 날이 되었다. 기차여행의 경우 지연이 되거나 변경이 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잦다고 했는데 프랑크푸르트부터 기차 연착이 시작된 것이다. 본래 출발 시간보다 50분 정도 지연된다는 앱 푸시와 전광판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포메이션을 찾아 플랫폼과 시간 등을 재차 확인했다. 플랫폼은 바뀌지 않았는지 내가 확인했던 시간에 제대로 들어오는지 등등 확답을 받고 그제야 안심했다. 어쨌든 제대로 탑승할 수 있으면 다행 아니겠나. 결국 지연된 시간에 플랫폼으로 들어오던 기차에 올라타 바젤 SBB역이라는 목적지로 향했다. 하나둘씩 독일의 주요 도시를 지나쳐가며 스위스로 향하던 길이었다.
스위스에서 있었던 일
한참 잘 달리던 열차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처음 들었을 때 분명 문제가 생긴 듯했다. 몇 분 뒤 다시 안내가 나왔고 중간에 내려야 한다고 했다. 결국 목적지였던 바젤 SBB역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모두가 하차해야 했다. 또다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하차한 뒤 다른 기차로 환승했다. 애초에 50분 지연에다가 환승까지 했으니 목적지 도착은 더 늦어진 셈이다.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화창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바젤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눈부시고 푸르른 날의 온기가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바젤 SBB역에서 내려 예약해둔 숙소까지는 대략 1.5km 남짓이었다. 드르륵 거리며 요란하게 울리는 캐리어를 끌고 나름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그리곤 호텔에 도착해 당당하게 바우처를 내밀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Your reservation is tomorrow"
"What?"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바우처에 적힌 날짜를 두 눈 뜨고 쳐다봤다. '맙소사'
비행기 티켓팅부터 숙소, 기차까지 여러 개를 한꺼번에 예약하기도 했고 중간에 유동적이었던 스케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크나큰 내 실수였던 것이다. 이 정도로 정신없이 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하나쯤 없겠어?'라는 생각에 가능한 룸이 있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충분히 좌절스러웠다.
"No, Fully booking"
이 말을 몇 번 쓰는지 모르겠다. '어쩌겠나'
다시 휴대폰을 열고 당장 숙소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오갈 데 없는 캐리어 앞에서 열심히 숙소를 찾는데 그 와중에 와이파이도 로밍도 버벅거린다. 휴대폰 통신은 느린데 밖으로 보이는 햇살을 저쪽으로 뉘엿뉘엿 빠르게 넘어가는 느낌이다. 대부분 빈방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가장 가까운 곳 호텔의 딱 하나 남은 방의 가격이 무려 300만 원 이상이었다. 결국 에어비앤비와 유사한 곳을 찾아 또다시 2km 남짓을 걸어갔다. 당연히 위치를 모르니 휴대폰을 보며 걸어가던 중 스위스 현지인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겠다며 이것저것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어렵사리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 '예약불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인가. 또다시 절망했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다시 휴대폰을 열었는데 배터리마저 나를 외면했다. 20%도 되지 않던 아이폰의 배터리 색깔이 붉게 변한 뒤였다. '안 되겠다. 일단 충전부터'
그렇게 다시 바젤 SBB역으로 돌아갔다. '방법은 있을 거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난 배가 고픈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진심을 다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휴대폰을 위해 역 앞에 있던 맥도널드를 찾았다. 독일에서는 문제없이 잘 되던 '돼지코'가 이곳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마침 멀티 변환 플러그 즉 여행용 콘센트도 챙겨 오지 못했는데 돼지코마저 말썽이다. 역에서는 분명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키오스크(Kiosk)라는 편의점을 찾아갔다. 안내 직원이 말하길, "Very expensive"란다. 가격표를 보니 매우 충격적. 30(스위스) 프랑을 훌쩍 넘는 가격이다. 이런 콘센트 하나에 4만 원이 넘는다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한도 초과'란다. 비행기부터 호텔까지 이것저것 카드 결제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환전해두었던 봉투 속에서 스위스프랑을 꺼내 내밀고 눈물겨울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콘센트를 손에 쥐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트 'Coop'에서는 1만 원대였다. 다시 맥도널드에 들어가 햄버거와 감자튀김 등 몇 가지를 샀는데 콘센트 가격과 거의 유사했다. 살인적인 물가다.
휴대폰에 충전 케이블을 연결하고 다시금 숙소를 찾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경 5k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유스호스텔'이 하나 보였다.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예약 확정이라는 문구가 왜 이리 반가운지. 대략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유스호스텔 침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불마저 감사했고 침대 옆에 보이던 전원 콘센트마저도 고마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예정에 없던 라인강을 구경했다. 안개가 드리워진 새벽녘 라인강은 동남아 같기도 하고 양평에서 볼법한 북한강 같기도 했다. 어쨌든 여기는 유럽이고 스위스이며 바젤이다. 어제의 쓰라린 기억을 강에 흘려보내고 기분 좋은 것만 담아가련다. 그렇게 몇 분을 조깅하니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바젤에서 다시 그린델발트로 넘어가는 기차 역시 30분 정도 지연이 되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스위스 풍경이 어제 고생스러웠던 순간들을 싹 다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년만에 다시 찾아온 그린델발트는 여전했고 아이거 북벽 역시 웅장했다. (그린델발트 이야기는 나중에)
바젤에서 그린델발트로 그리고 다시 슈피츠로 넘어가던 내게 또 하나의 이슈는 슈피츠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였다. 슈피츠-밀라노 구간만 Trinaline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슈피츠를 떠나기 전 저녁 예상치 못한 알림을 확인하게 됐다.
"This train will no longer stop at your departure station of Spiez" 그리고 아래 진한 빨간색으로 "Cancelled"라 쓰여있더랬다.
'정말 저한테 왜 이러세요!!'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이 열차가 정차하는 다른 역을 미리 찾아가 이 기차를 잡아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티켓을 구해야 할까? 이리저리 걱정이 앞서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았다. 슈피츠 호텔의 경우는 오전 10시 체크아웃이었다. 어차피 짐을 챙겨 서둘러 방법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슈피츠 역 인포메이션을 찾아가 Trainline 앱을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This app is wrong. But let me check"
내가 들고 있던 앱의 문구는 틀린 것, 하지만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더니 스케줄 표를 출력해서 준다. 정시에 그것도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슈피츠 역에 아무런 문제 없이 정차한다는 것이다. 고맙다고 '땡큐'를 몇 번이나 외쳤다. 서둘러 나왔던지라 기차를 타야 하는 시간까지 무려 2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꽉 막혀있던 깊은 고민과 우려가 쏵 내려갔다. 그렇게 멀쩡히 플랫폼을 향해 들어오는 밀라노행 기차를 타고 유유히, 세상 여유롭게 창 밖을 바라봤다.
밀라노에서는 이런 일이
밀라노 첸트랄레 즉 밀라노 중앙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고 퇴실했던 그날의 일이다. 역시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앞쪽부터 퇴실하려는 사람이 여럿이었고 바로 앞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순서가 되자 룸키를 내밀며 아무렇지 않게 체크아웃 절차를 밟는 그 여성 뒤로 헐레벌떡 남자 한 명이 오더니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만 해도 부부이거나 연인인 줄 알고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이후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자가 체크아웃을 마치더니 옆에 있던 남자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룸 키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너무 순식간이라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먼저 왔잖아요"라고 말할 '찰나'조차 허락하지 않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뒷사람 역시 그냥 그렇게 기다리는 중, 또 다른 여성이 앞으로 슬쩍 오더니 일행인 듯 또 이야기를 나눈다. 전체 3명이었고 패션 혹은 디자인 업계 비즈니스 때문에 출장을 온 듯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 뒤늦게 온 여자가 또 룸 키를 내밀며 체크아웃을 하는 게 아닌가. 결국 3명이 죄다 따로, 뒷사람의 배려 하나 없이 자기들만 여유롭게 수다를 떨며 '내 것만' 챙기는 중이었다. 내가 얼마 걸리지도 않는 체크아웃을 하는 동안 앞에서 '(본의 아니었을) 새치기'를 했던 남성이 택시 하나 불러달라며 그 와중에 끼어든다. 직원이 말하길, '체크아웃하고 도와드릴 테니 기다리세요'라고 한다. 나 역시 흘깃 쳐다보니 멋쩍은 듯 미소를 보낸다. 뭐가 그리 급한지. 뒷사람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레이저'를 쏘는 듯 쳐다보기도 했다. '그래 어제 대성당에서 인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 내가 배려한다고 생각해야지'
사실 내가 한참 휴대폰을 봤던 것은 밀라노에서 로마로 넘어가는 기차를 '밀라노 첸트랄레'가 아닌 '밀라노 로고레도'역에 해두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확인했지 죄다 같은 역인 줄 알았건만 생뚱 한 곳에 예매를 해뒀던 것이다. 말하자면 서울역에서 타야 하는데 영등포 즈음에서 기차를 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버를 불러야 했고 동선을 찾아야 했으며 시간도 확인해야 했다. 물론 그런 정신없는 시간 동안 앞에서 끼어든 세 사람에게 역시 (본의 아니었을) 배려를 했던 것이다. 세상 친절했던 우버 기사님 덕분에 밀라노 로고레도 역에 왔는데 역시나 또 지연이다. 30여분 지연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제대로 오는지 여러 차례 또 확인했다.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기차를 타고 대략 3시간이 걸리는 꽤 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 30여분 지연된 그 시간에 정확히 플랫폼으로 들어온 기차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 로마로 향했다.
로마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
로마에서 신나게 투어를 하고서 호텔의 도움을 받아 공항까지 밴을 타고 갔더랬다. 사실 로마 떼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공항까지 가려고 했는데 "편하게 모셔드릴테니 밴 타고 가라"는 직원 덕분에 훨씬 더 저렴하고 아주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비행기도 연착이란다. 대략 1시간 즈음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면세점도 구경하고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도 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 결함으로 인해 다소 지연되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조치되는 대로 이륙할 예정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안내 방송을 거의 2시간 30분 내내 들어야 했다. 비행기 연료펌프가 문제라는 계기판 신호를 직접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비행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니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한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여정까지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고되고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빨래만 대충 하고 캠핑을 갔다가 퇴실하는 시간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시차 적응도 그러하지만 체력이 문제였던 것 같다. 잘 먹고 다니기도 했다만 실제로 살이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이 모든 여정을 고작 6살 아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꽤 고민이 많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갔는데 과연 기억을 할 것인가'라는 굉장히 단순한 생각 말이다. 조금 자랐다고 해서 휴양지가 아닌 도심 여행을 그것도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니는 것 자체가 다소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였다. 한참을 걸어 다니며 고생했을 아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에너제틱하게 즐겼으니까 말이다. 다시 또 어딘가로 떠날 궁리지만 어디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또 한 뼘 성장했으리라. 더불어 우리 아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새겨뒀으니 나중에 꼭 보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