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매우 더디게 간다는 생각을 한 지도 참 오래되었다. 유년 시절 이래, 하루가 길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를 위해 1년을 비워두었지만 나는 10%도 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자식들이 지치기도 전에 훌쩍 떠나 버렸다. 그래도 바로 가버리면 자식들이 슬퍼할 것을 염려하여 1달 여의 말미를 주셨던 것일까.
덕분에 나는 비워둔 시간들을 그저 빈 채로 보내고 있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 하루 2교대로 오빠와 번갈아 병실을 지키던 일상이 증발되었다. 바로 일터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가 떠나고 한달 동안 우리는 일상 켜켜이에서 아버지의 갑작스런 빈 공간을 뼈저리게 느꼈고 각자 나름대로 육중한 시간의 무게를 감수하고 있다. 나는 매일 한강을 미친 듯이 돌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즐비했던 한강 주변이 어느 사이에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초록으로 물들었다. 저 기적과도 같은 생명력에 나는 잔인한 4월을 체감하며 강변 주위를 미친 듯이 맴돌았다. 눈물을 훔칠 염도 없이.
한 심리상담사가 말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슬픔과 고통의 시간도 차츰 무뎌지고 언젠가는 쏘아놓은 살처럼 시간을 느낄 때가 올 것임을 안다.
지난해 아버지를 여읜 절친에게 전화가 왔다. 말하지 않아도 내 심정을 충분히 헤아렸을 그녀는 내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아버지 생각은 계속 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왕이면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만을 떠올리라고 했다. 아버지의 젊은 사진들을 보며 건강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라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렇게 또 각자의 살아갈 방법들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아버지와 아주 천천히 헤어질 예정이다. 내게는 아버지가 남겨준 시간이 아직 90%가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