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Laguna de Castilla 라 라구나 데 까스띠야 ~ Triacastela 뜨리아까스뗄라
24.15km / 7시간 25분 / 맑음 ↔ 흐림 ↔ 비&바람
숙소를 나서기 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일기예보에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되어있었다. 배낭 커버와 우비 없이 출발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대신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의욕이 생겨났다.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걸으니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같은 악조건이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임하는 자세가 어제, 그제와는 사뭇 달랐다.
첫 번째 마을 O Cebreiro(오 세브레이로)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벽난로가 있어 따듯하고 포근했다.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바르에서는 또르띠야와 와인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랬다. 또르띠야가 상당히 맛있었지만 밖에서 부는 강풍 때문에 옆에 있는 출입문이 자꾸만 열려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무지개는 오늘도 아름다웠다.
Castilla y Leon(까스띠야 이 레온)에서 Galicia(갈리시아) 주(州)로 넘어왔다. 방향과 잔여 거리를 알려주는 표시석이 더 자주 나타났다. 다만 너무 빈번해서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체감되지 않았다.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숙소에 오후 3시 반쯤 도착했다. 가방만 내려놓고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문어, paella(빠에야, 스페인식 볶음밥), 소고기 스테이크에 와인까지 곁들여 풍족한 만찬을 즐겼다. 모든 음식들이 하나 같이 훌륭했다.
한 시간 반에 걸친 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옆테이블의 다른 순례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워낙 목소리가 컸기에 그들이 포르투갈어를 쓴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순례길에서 포르투갈 사람은 보질 못했다. 당연히 브라질 출신인 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50%의 확률을 틀려버렸다. 미안한 감정이 생길 뻔했는데 그러기엔 다들 너무 유쾌했다.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라더니 한국에 대한 질문들을 쉴 틈 없이 해댔다. 종교, 문화, 음식, 술, 순례길에 한국인이 많은 이유, 북한과의 관계 등등. 식사를 했던 시간만큼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 도중에는 웨이터를 불러 우리에게 와인을 한 잔씩 대접해 주기도 했다. 친구 사이인 Beto, Jorge, Nuno는 하루에 40km 가까이 걷고 있다고 했다. 엄청난 거리를 매일 걸으면서도 어쩜 그리 힘이 남아도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순례길 완주 후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라는 말에 조국에 대한 자랑을 엄청나게 늘어놓으며 우리를 유혹하려 했다.
순례길 걷는 것 못지않게 가슴속에 크게 자리 잡은버킷 리스트는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오로라 관측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 중 하나는 아이슬란드이다. 평소 아이슬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락밴드 Sigur Ros(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기도 하다. 어떤 환경에서 살았기에 그런 몽환적인 곡들을 만들 수 있는지 늘 궁금했다.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일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때문에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순례길 완주 후 아이슬란드에 가기로 아내와 합의했었다. 하지만 걷는 동안 우리 둘 다 추위와 궂은 날씨에 질려버린 탓에따듯한 남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한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포르투갈이 다음 방문지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아졌다. Beto는 놀러 오면연락을 달라며 SNS 계정을 공유했다.
문득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던 핀란드 출신 순례자가 생각났다. 더 긴 시간 동안 나를 붙잡고 질문 폭격을 해댄 것은 포르투갈 3인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진정성 있게 물어보았고 나의 대답에도귀를 기울였다.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자랑하기 위한 미끼 질문을 던졌던 핀란드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식당을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러 내일 아침거리를 장 봤다. 샤워와 빨래를 마친 후 공용 거실을 둘러보다 화덕을 둘러싸고있는 나무 서랍장이 눈에 띄었다.신발을 넣어화덕의 열기로 건조하는용도인데 아직 다른 이들은 잘 모르는지 몇 켤레 안 들어있었다. 재빨리 아내와 내 신발을 가져와 깔창을 분리해서 깊숙이밀어 넣었다. 며칠 연속 비를 맞은 탓에 축축하게 젖어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곧 내 행동을 본 주변 사람들의 신발로 내부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졌다.바로 옆소파에 앉아 불멍을 때리며 다른 순례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본 매거진은 저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한 날(23.10.10)부터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에 당도하기까지 4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