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수식, 정교한 설계도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공대생 시절, 나는 석사 유학을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석사와 워킹홀리데이까지, 총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마주한 학문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연구실의 형광등 아래서 지쳐가던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는 시티 센터의 프리미엄 식자재 숍에 들러 평소 보지 못한 식재료를 하나씩 탐험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생소한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프랑스 남부의 토속 올리브 품종이라는 ‘피숄린(Picholine)’ 그린 올리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올리브는 피자 위에 올라가는 짭짤하고 검은 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르올리보(L’Oulibo)’라는 라벨이 붙은 그 올리브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의 미식 세계에는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소금기에 절여진 눅눅함 대신, 갓 수확한 과일처럼 아삭하고 경쾌한 ‘크런치(Crunch)’함이 입안을 채웠다. 씹을수록 올라오는 견과류 같은 고소한 풍미. 그것은 충격에 가까운 신선함이었다. 유학 생활 동안 그 작은 초록색 알은 나의 가장 친밀한 위로이자, 일상의 감도를 높여주는 완벽한 리추얼이 되었다.
귀국 후, 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때 그 피숄린 올리브의 고소함이 혀끝을 스치곤 했다. 한국의 백화점과 프리미엄 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식감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은 너무 짜거나, 너무 익어 물러버린 것들뿐이었다.
프랑스 배송대행지(배대지)를 어렵게 찾아 구매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프랑스 배대지는 거의 찾기 힘들기도 했고 항공 배송 비용은 올리브 가격의 몇 배를 상회했다. "그냥 포기하고 대충 비슷한 걸 먹자"는 타협안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어디서 찾을 수 없는 그 맛에 결국 직접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수입을 결정한 후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내가 선택한 곳은 프랑스 현지에서 국가 명장 인증을 받을 정도로 권위 있는 80년이 넘은 올리브 전문 기업이었고, 그만큼 그들의 콧대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유럽 외 지역으로는 수출할 계획이 없다'는 단호한 거절이 돌아왔을 때, 나는 단순히 '내가 이 올리브를 좋아한다'만으로는 이 벽을 넘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는 불어 통역사와 머리를 맞대고 수차례 전화 미팅을 거듭하며 프랑스 특유의 자부심과 비즈니스 문화를 공략할 설득 전략을 짰다. 단순히 물건을 팔아주겠다는 제안이 아니라, 그들이 지켜온 장인 정신을 한국 시장에 어떻게 온전히 전할 것인지에 대한 진심 어린 호소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입 허락을 받아냈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필수 서류 하나를 받는 데도 수주가 걸리기 일쑤였고, 여전히 수출에 소극적인 그들의 태도는 매 순간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하지만 답장이 늦어질수록, 절차가 까다로울수록 나의 확신은 오히려 깊어졌다. 이토록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철학을 지키는 이들이 만든 올리브라면,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수입 업무는 처음부터 수익이 목적이 아니었다. 현지의 신선함을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나는 무모하게도 ‘항공 수입’과 ‘햇 올리브(Fresh Harvest)’라는 원칙을 세웠다. 현지에서도 햇올리브만 매년 새롭게 판매한다. 농장의 모토를 지키면서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였다.
사실, 항공으로 햇 올리브를 수입하는 일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배를 이용한 해상 운송보다 물류비는 몇 배나 비싸고, 식품의 특성상 재고 리스크도 크다. 그리고 원래 올리브 절임이라는게 장기 보관을 하기 위해 절이는건데 '살짝 절인' 그 맛을 위해서 재고를 최소화 하면서 매년 새로 수입을? 수입업자로서 큰 마진을 기대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나는 이 비합리적인 일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싶었다. 지속적인 햇 올리브를 수입하기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산업군 품목의 무역 업무를 병행하며 반 강제적인(?) 회사 확장을 했어야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햇올리브에 집착하느냐"라고. 나의 대답은 명확하다.
햇 올리브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올리브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을 많이 물어봤다.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해외 올리브 전문 서적을 읽으면서 대답했고 올리브 농장 업체와 불어 통역사를 써가며 전화, 이메일로도 물어보며 약간은 무모하게 지식을 넓였다. 그리고 올리브 품종과 테루아, 수확 방식에 따라 변하는 올리브의 미학을 공부할수록, 이것이 공학만큼이나 방대하고 논리적인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공부한 올리브의 뒷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 그렇게 비정기적으로 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올리브 테이스팅 클래스'다.
이 클래스는 거창한 요리 수업이 아니다. 각 나라의 품종별 올리브 맛의 스펙트럼을 함께 그려보며 본인이 좋아하는 올리브를 찾아가는 미식의 길을 안내하는 장이다.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미식 취향을 발견할 때 나는 비로소 이 일을 시작한 진짜 보람을 느낀다. 큰 마진을 남기는 비즈니스보다, 올바른 지식을 통해 누군가의 식탁이 풍요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동력이 된다.
이제 나는 올리브를 큐레이션하는 '미식 메신저'의 삶을 살고 있다. 비정규적이지만 올리브 클래스를 열어 올리브가 가진 진짜 얼굴을 소개하고, 잘못된 미식 상식을 바로잡는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올리브 농장의 햇살을 수입하는 이 고된 여정을 멈출 수 없는 이유. 그것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켜낸 본질적인 맛이 누군가의 식탁에서 정직한 행복으로 피어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가장 신선한 올리브를 한국의 식탁으로 옮기기 위해, 한 알의 올리브에 담긴 복잡한 미식의 수식을 풀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