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편함이 미식이 될 때

씨 있는 올리브를 고집하는 수입업자의 변명

by 르올리보

식탁 위에서 입안의 씨를 발라내야 하는 3초의 번거로움.


식탁위에 쌓이는 올리브씨 혹은 휴지에 둘둘 쌓이는 올리브 씨앗.


누가 입에서 씨앗을 뱉는걸 들키면 비위가 상할까 고개를 돌려 식은땀을 내며 씨를 뱉는다. 왜 이런 '사회적 긴장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는 왜 이 작은 열매를 먹어야할까?


unnamed.jpg 씨앗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민망함




그저 ‘불편함’일 수 있는 이 과정이 사실은 미식을 즐기기 위한 필수적인 대가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게 쉽지는 않다. 씨 있는 올리브만을 고집하는 한 수입업자로서, 나는 오늘 그 불편함에 대한 꽤 근거 있는 변명을 해보려 한다.




씨앗 하나가 지켜낸 맛


우리는 왜 굳이 씨가 있는 올리브와 없는 올리브를 구분해서 먹을까?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기 요리에 빗대어 설명하곤 한다.


씨 없는 올리브는 양념에 푹 절여진 고기와 비슷하다. 씨를 제거하는 공정은 필연적으로 과육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그 빈틈으로 짠 염수가 깊숙이 침투하게 만든다. 결국 올리브 고유의 풍미보다는 '절임액' 맛으로 먹게 되는 셈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lq5eullq5eullq5e.png 양념갈비와 생갈비 느낌인 씨 없는 올리브와 씨 있는 올리브



하지만 씨가 그대로 박혀 있는 올리브는 결이 다르다. 마치 최상급 생갈비를 굽기 직전 소금과 후추로만 살짝 간을 한 느낌이다. 씨가 과육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주기에, 올리브가 가진 본연의 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과육의 향을 오롯이 누릴 수 있다. 좋은 고기를 강한 양념 맛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깝듯, 고품질의 올리브 역시 씨를 보존하며 그 본연의 맛을 지켜낼 가치가 충분하다.



올리브의 진정한 맛을 느끼고 싶으면 씨가 있는 올리브를 추천해본다







80년의 세월, 그리고 장인 정신


내가 소개하는 남프랑스의 ‘르올리보(L’Oulibo)’는 2026년을 기준으로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올리브만을 재배하고 가공해온 농장이다. 이곳은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장인 기업(EPV)이기도 하다.



images.png 르올리보의 장인기업 EPV 마크



이 명칭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패션계의 샤넬(Chanel)이 이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금방 체감될 것이다. 르올리보는 그야말로 올리브계의 오트쿠튀르를 지향하는 아티장들의 집합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씨 있는 올리브를 전 세계에 판매한다. 하지만 대량 생산 체제의 큰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보존을 위해 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절여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랑스의 미식 문화는 조금 독특하다. 메인 요리에는 화려한 소스들을 곁들이지만, 올리브 같은 사이드 디쉬만큼은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제작된다. 르올리보의 올리브가 유독 신선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프랑스 농장의 '햇 올리브'의 진심


르올리보의 아티장들은 매년 초, 그해 갓 수확한 ‘햇 올리브’만을 판매한다. 작년에 수확한 올리브는 과감하게 올리브 파테(타프나드)나 다른 가공식품으로 활용하는 화끈함도 있다. 최상의 상태가 아니면 아예 팔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Olive-Tapenade-Culinary-Hill-1200x800-1.jpg https://www.culinaryhill.com/olive-tapenade/ 올리브 파프나드 만드는법




나 역시 그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해 매년 소량의 햇 올리브만을 한국에 들여오고 있다.


가끔 손님들이 "남은 재고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물어보곤 한다. 나의 대답은 늘 같다. "재고는 과감히 폐기하거나, 우리 가족이 먹습니다." 유통 기한이 남았더라도 해를 넘긴 올리브를 고객의 식탁에 올리는 것은 80년 전통의 장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비로소 미식이 될 때


입안에서 씨를 발라내야 하는 그 짧은 수고로움은, 당신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신선하고 본질에 가까운 올리브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 저녁, 와인 한 잔 곁에 두고 이 '기분 좋은 불편함'을 기꺼이 즐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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