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탑 메이킹 센스, 삶 이상의 무언가라는 환상

<스탑 메이킹 센스>(1984)

by Lou

내가 처음으로 무대를 목격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무대 위에서는 학교의 여자애들이 당시 유행하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하이라이트에 다다르자 그들 위로 스트로브(strobe) 조명이 비춰졌고, 움직임이 짧게 끊어지며 스톱모션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그 장면은 열두 살의 1년 중 가장 대단한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그저 춤 추기를 좋아하는 인기 많은 여자애들이 아니었고,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무엇보다도 그 번쩍이는 8헤르츠의 이미지는 짧게나마 한 가지 낭설을 진지하게 검토하도록 했다. 삶에는 평범한(혹은 지겨운) 일상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낭설을. 축제가 끝나고 일상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그 장면만은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었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는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세상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저기 어딘가'를 끈질기게 묘사한다. 무대 위 조명이나 춤사위 같은 온갖 장치들은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하며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점차 좁혀간다. 남은 여정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당신은 두 가지 충동과 싸워야 할 텐데, 하나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춤추고 싶은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보러 왔음에도) 눈을 감고 소리 신호에만 집중하고 싶어지는 충동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전주가 연주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펼쳐질 일을 예견하는 듯 눈은 자연스레 감기고 입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어떤 영화는 관람되기보다 체험된다는 유명 평론가의 말은 오히려 이 작품이 선사하는 가장 본능적인 차원의 예술에 더 걸맞는 평처럼 느껴진다. 자아도, 의식도 없이 순수한 감각으로서 체험하는 순간. 마치 모든 강박과 고민거리를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더 높은 차원의 의식으로 고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모든 게 괜찮아 보일 때가. 숨이 차도록 달릴 때, 술에 거나하게 취할 때, 혹은 좋은 음악을 들으며 나를 잊고 순간과 하나가 될 때. 물론 잠깐일 뿐이고 머지않아 다시 이성과 사실관계로 점철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지만, 어쩌면 모두 그 얄팍한 속임수에 기꺼이 속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뿐이니까. 우리를 매혹하는 환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혹은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노래하듯 음악이 연주되고 그녀와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그곳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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