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를 공감해줘야 되는 존재일까?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관계

by 킴느림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동생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고 이에 대한 하소연을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가족에 대한 엄마의 서운함과 불만을 들어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한동안 엄마와 나 사이 밀착된 융합을 분리시키기 위해 많이 애써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잔재가 내 무의식 중에 남아있다 보니 엄마가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시면 '아 또 시작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먼저 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만약 나의 가족이라면 더더욱.


융합
분화의 반대인 융합, 공생적이거나 기생적인 관계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


나는 동생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아니 사실 더 이입되었다. 동생의 반응이 매끄럽고 성숙된 반응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반응과 태도'를 옹호할 순 없지만 어떤 마음에서 그런 반응을 하게 된건지는 이해가 갔다. 그래서 엄마의 하소연에서 남동생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커졌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를 대변하는 말들을 하게 되었고 엄마는 또 한 번 상처를 받으셨는지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우는 엄마에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자신의 기준과 틀이 확고한 사람이다. 그리고 의례 틀이 강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 기준에 대한 정답을 때로 타인에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으시다. 물론 엄마는 이 사실을 부인하실 수도 있지만.



나와 동생은 그런 엄마의 ‘정답과도 같은 기준’을 요구받으며 양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변하듯 설명해야 되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했다.



그러면 그냥 엄마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일 뿐인데 마치 엄마에게 '확인'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내 마음은 전전긍긍하며,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이 되는 경험을 자주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달리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표현하고 주장하는 게 쉽지 않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가볍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대응하는 걸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혹여 다른 의견과 거절의 순간이 오면 그 ‘거절’이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 되어버리는 강도였기 때문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잘못하고 잘못된 사람이 종종 되어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변명같이 내 의견을 말해야 되는 것에 지치는 순간이 오면 나 또한 동생처럼 '반응'하게 되어 감정적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진이 빠지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엄마의 기준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것,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경계를 세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나의 다른 의견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으셨다.



그렇게 엄마는 또 상처받은 영혼, 피해자가 되셨다. 나와 동생은 암묵적으로 엄마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가 되었고. 이런 피해자와 가해자로 맺어진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참 교묘하고 복잡하다.



나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그렇구나. 알겠다. 그 결정을 존중한다'라는 식의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긍정과 인정이 어려우실까? 만약 그랬더라면 이처럼 긴장되는 교류들이 오고 가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그런 엄마에게 나 또한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잔재들이 있다.



그만큼 엄마는 엄마의 틀이 강한 편이시고 그 틀에 맞추어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신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때로 요구를 하신다. 그러면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 나의 엄마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 상처받은 마음을 나에게 공감해달라고 하신다. 내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느냐며 딸이니까, 내가 딸이기 때문에 공감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신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공감'을 엄마에게 요구받았다. 나는 엄마를 공감해주지 않으면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이 사슬이 복잡하고 미묘해서 엄마와의 관계는 어렵고 복잡하다.



딸은 마땅히 엄마를 공감해줘야 되는 존재일까?

그러면 엄마는 공감을 잘 해주시는 분인가?



공감
공감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보다 그 사람의 현재 느낌 그리고 내면적 바람을 수용하고 인정해주는 것. 공감한다는 말은 상대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비우고 그를 수용하고 이해한다는 말.
-관계의 숨틔움-



Photo by Eldar Nazarov on Unsplash


나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다. 내 뜻과 다른 요구에 그리고 딸이라는 이유로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대체 무엇이 빠져 있어서, 무엇이 채워져있지 않아서 이렇게 융합을 이끌어 내고 있는지 그 힘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다.



분리를 향하는 나에게 또 한 번의 융합을 요구하는 안쓰러운 나의 엄마. 그리고 분리를 갈망하면서도 이런 엄마의 나약한 모습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 우린 꼬여있는 이 매듭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엄마의 '인정 욕구'는 결국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아빠? 딸? 동생?



그건 바로 엄마 자신일 것이다. 엄마는 나의 공감이 엄마의 본질적인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냥 쳇바퀴 돌듯 융합과 밀착의 도돌이를 반복하고 있을 뿐 달라지는 건 없다. 나 좀 이 짐이 과연 내 것인지 모르겠는 마음의 부담에서 조금 자유롭고 싶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건강한 관계.

나는 오늘도 그 관계를 갈망하며 도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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