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으로 상대를 기억할 수 있나요?

by 민지

원래 나는 ‘향’에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뿌리는 향에는 무지하고 무감했다. 성인이 되다 보니 성별 가릴 것 없이 향수의 힘을 빌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향수로 저마다의 체취를 만들려는 노력은 나에게 낯선 정성일뿐이었다. 더군다나 사회 초년생인 내게 마주한 브랜드 향수의 가격은 심미적 만족감보다는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가끔 소중한 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어 들던 향수는 내게 그 효용을 다 설명하지 못한 채 건네지는 미완의 선물과도 같았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영상 속 배우의 말을 듣고 마음의 변화가 시작됐다. 배우는 새로운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의 향수를 구매해서 뿌린다고 말했다. 그 향기를 다시 맡는 순간, 그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게 된다고. 그의 이런 ‘여행 의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향이 단순히 장식에 그치지 않고, 흐릿해진 기억을 선명히 붙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언젠가 친구랑 익선동에서 만나 좁은 골목을 헤매던 날이었다. 좁고 휘어진 골목, 그 틈을 메운 인파 속에서 허덕이던 찰나였다. 달콤하고도 선명한 향기가 우리를 채어갔다. 나와 친구는 홀린 듯이 향기가 재촉하는 곳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곳은 향수와 디퓨저를 수공업으로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 안이었다. 투박하지만 풍부하게 피어오르는 망고 향에 설복당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 손엔 정성껏 포장된 작은 병이 들려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그 향기는 살냄새보다 익숙한 나의 단짝 향수가 되어 나를 덮어주기 시작했다.


이 향을 뿌릴 때면 익선동 골목길의 쾌청한 공기와 친구의 웃음소리가 현재로 소환된다. 향은 어떻게 그 공간의 추억을 눈앞으로 끌어 오는 것일까? 신비로웠다. 쾌청하고 맑았던 그날의 날씨 덕분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향을 뿌릴 때면 그날의 상쾌함이 복기된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망고 향. 기분은 이내 환해진다. 이제 나는 누구보다 향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 앞에서 사람은 참으로 간사해진다. 누군가를 매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향수를 사는 일을 사치라 여겼던 견고한 벽이 좋아하는 이에게서 들은 “향이 너무 좋다”는 칭찬 한마디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나는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기 전에 가장 먼저 향수의 뚜껑을 연다.


화장대에 정갈하게 나열된 향수들을 바라본다.

지난 세월 동안 쌓인 여러 경험은 향수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아무리 좋은 향도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기 마련이다. 향의 간극을 메꿀 수 있도록 내면에서도 풍부한 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