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지만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
나에겐 오랜만에 만나도, 현생에 치여 주기적인 연락을 주고받지 못해도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있다. 함께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바보 같아져도, 사사로운 것에 헤픈 웃음을 실실거리는 멍청이들이 되어도 그저 좋은 존재다.
평상시에 굳어있던 얼굴 근육들이 마치 햇빛아래 놓아둔 아이스크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서 흐물거려지고 나도 모르게 익살스러운 표정들을 드러낸다.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이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별일 아닌 사건들과, 갑자기 떠오르는 발상들로 끝없이 수다를 만들어낸다. 이 탓에 마치 adhd 두 명이 떠드는 것처럼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때가 대다수지만 그래도 늘 즐거움이 자리한다.
나는 본연에 타고난 성질 탓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동력으로 살아가면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때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지치는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만나는 게 나의 에너지 축적방법이라 자부했던 때도 있던 것 같다. 쉬지 않고 달려온 직장인으로서, 가끔은 주말도 반납해야 했던 일의 노예로서 나에게 일말의 방어기제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편한 누군가를 만나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어쩔 때는 숙제처럼 느껴져 버거움을 느낀다. 한 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주일에 세 번 약속이 잡힌 적이 있었다. 하루하루 무사히 그 약속을 수행해 내길 바라며 시험을 통과하듯, X 표시를 쳐내고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나를 보며 적잖이 놀란적이 있다. 그만큼 사람 좋아하는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나에게, 지친 평일의 나를 오롯이 구제만 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음에 감사한다. 때로는 까다로운 내가 함께해도 오롯이 나로 존재하게 하는 사람. 둘이 있지만 하나로 존재하듯 어떠한 불편함과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게 하는 존재.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해서 서로의 이해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그러나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친구가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친구도 남자친구만큼이나 내 굳은 신념을 바꾸는데 큰 몫을 한다는 걸 실감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한 번은 오랜만에 찾아온 쾌청한 날씨에 들떠 나름 예쁘게 차려입고 꾸민 모습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눈썹이 그게 뭐야? 너무 진해’ 라며 눈치 없이 잔소리를 늘어댔고, 나는 인정할 수 없어서 더욱 긁혀버렸다. ‘난 평소와 다름없이 화장했을 뿐인데... 왜 그러지?’ 오래간만에 친구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순간 서운함이 스쳤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내 발걸음은 어느새 눈썹을 탈색시킬 약을 사러 올리브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친구로 인해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수정할 수 있음에 기뻤고 감사했다. 그리고 타인의 지적에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던 나에게도 수용적인 모습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은 사랑과 우정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곧 이 친구와의 해외여행이 다가온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 친구의 mbti는 infp고 나는 esfj(요즘은 isfj도 많이 나오지만)인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나 여행을 앞둔 시점에서는 이 친구의 p(즉흥)적인 면모가 나의 j(계획)적인 면과 많이 다르구나를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친구의 여행방식에 맞출 수 있다는 자신이 차올랐다. 원래 여행을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하는 이 친구에게는 나에게 맞추는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가고 싶은 곳들을 미리 하루하루 계획하지 않고 어느 정도 여유롭게 다니는 여행을 선택한 것도, 이 친구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심이었다.
나에게 진정한 친구란 사소하지만 나의 굳은 신념들을 뭉글뭉글하게 중화시킬 수 있는 마력을 가진 것이었다.
30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친구와의 외국여행은 처음인 나에게 평생 기억될 기억임은 틀림없다. 나와 다른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로 온전히 편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이 친구와의 여행이 기대된다.
친구야 너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