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 문가영 주연 영화
어제 간만에 H가 지안이를 데리고 놀이방에 갔다.
이 소중한 자유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소리글 작가님의 추천으로 급 영화를 한 편 봤다.
구교환, 문가영 주연의 〈만약에 우리〉.
영화를 보는 동안 대만 영화 특유의 정서가 느껴졌는데, 역시나 대만 영화 리메이크작이었다. 현실적인 장면들 사이에 영화적인 판타지가 적당히 섞여 있어, 과하지도 가볍지도 않게 흘러갔다.
결론적으로 그러니까, 꽤 재밌었다.
나는 원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건 마치 내 또래에서 “나는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고백이라, 굳이 먼저 꺼내지는 않지만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 시간 남짓 한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걸 못 견디는 성미이고, 취향을 따지자면 영화보다는 장편 드라마, 드라마보다는 책, 책보다는 만화책 쪽이다.
그러니 내가 이 영화를 ‘재밌다’고 말했다면, 꽤 집중해서 봤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 무엇을 하든 간에, 육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면 그게 무엇인들 대수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에는 여러 얼굴이 있지만,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랑은 결국 남녀 간의,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핵심은 ‘남녀’이고, 또 하나는 ‘이루어지지 않은’이라는 조건이다.
얼마 전 부모가 된 나는 이제 안다. 낭만은 어딘가 서로 강하게 갈구하는데서 오는데, 그런면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는 낭만이 없다. 이건 깊이와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도 막상 이루어지는 순간, 곧 가족간의 사랑, 전우의 사랑이 되고, 동지의 사랑으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낭만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하여튼 이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적당한 판타지와 현실감각의 균형에서 느껴지는 낭만이랄까.
어디가 판타지적이냐 묻는다면, 첫 번째로 구교환이 연기한 남자의 ‘찌질한 매력’이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종류의 찌질함이다. 잘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자답지 않은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자답고, 흐지부지하다 싶으면 또 한 방이 있다. 무엇보다도 첫사랑에 완전히 빠진 남자가 저렇게 절제하며 거리를 지킨다는 설정은, 솔직히 말해 현실에서는 성립되기 어렵다. 조금만 선을 넘으면 찌질함은 추해지기 마련인데,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텨낸다. 현실을 닮은 듯하지만 결국은 엄청난 판타지다. 한마디로 저런 남자 현실에선 있을것같지만 없다는 소리다.
두 번째는 문가영이 연기한 여자 주인공의 삶이다. 보육원에서 자라난 사람이 저렇게 단단하게 자라고,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줄 줄 안다는 설정 역시 판타지에 가깝다.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게까지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남자 주인공을 만나 변화했다고 보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영화적인 설정으로 느껴진다. 돌아갈 곳을 잃을까 봐 사랑을 망설이다 도망친다는 설정조차, 사실은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도 선택할 수 있는 이유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배경이 있기에 이야기가 성립하고, 나는 그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결핍들끼리 만나면 소모적인 파탄인데, 이 둘은 성장이 되었으니. 그점도 기분좋은 판타지요소라고 보여진다.
세 번째 성공한 삶이다. 둘은 헤어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한다. 현실에서는 대개 헤어지고 나면 그저 그런 삶으로 흘러가곤 한다. 게임으로 대박친 남자와 불굴의 의지로 그 어려운 건축사까지 된 여자, 완전 만화다. 하지만 영화에는 이런 종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아무도 완전히 현실 같은 이야기를 보러 극장에 가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현실성이 완전히 빠져도 곤란하지.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감당이 안될만큼 지치고 힘든 삶을 버틸 때 드러나는 남녀의 태도 차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남자는 현실을 피한다. 혼자만의 굴로 들어가 버린다. 물론 성실한 사람이라면 버텨야 할 자리는 버틴다. 거지 같은 회사 생활을 참고 견디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절망을, 자신의 힘듦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다. 곁에서 함께 버티는 여자에게 고마움보다 짜증이 앞서고, 그 상황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 같아 더 불편해진다. 그렇게 다정함은 사라지고, 퉁명함과 무심함이 남는다. 남자는 그렇게 상황에 닳아 간다.
여자는 다르다. 힘들수록 오히려 “너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진심으로 건넨다. 받는 데 익숙했던 마음을 접고, 주려고 애쓴다. 힘이 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남자는 그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예전에 이 방의 햇빛은 다 너의 것이라며 커튼을 걷어 주던 사람이, 이제는 게임에 방해된다며 커튼을 닫아 버린다. 여자가 지치는 건 힘든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변해 가는 다정함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문득 예전 H가 떠올랐다. H는 20대 중반에 거지 같은 회사를 2년 가까이 다녔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돌아왔고, 월급은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상사는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이었고, H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여러 명이 그 자리를 버텨내지 못하고 나갔다. 장거리 운전을 하다 졸음에 사고가 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우리 엄마 마음에 들 만큼 괜찮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H를 몰아붙였다. 졸린 틈틈이 자격증 공부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던 때였다. 영화 속 남자의 모습에서 문득 그 시절의 H가 겹쳐 보였고, 그제야 그가 안쓰러워졌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의 H. 미안했다.
우리가 그래됴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내가 그보다 조금 더 앞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직장도 안정되있고, 어느 정도 그런 버거운 상황을 지나쳤기 때문이랄까. 그런 현실적인 이유 . 같은 나이, 같은 처지였다면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헤어졌을거다.
마지막 장면에 흑백에서 색이 돌아오는 장면은 다소 뻔했지만, 꽤 마음에 드는 결말.
영화에서 내가 눈물이 난 건 의외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 남긴 편지 때문이었다. 주는 사랑,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사랑. 처음에는 부모의 사랑에는 낭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깊이로만 따지자면 결국 가장 멀리 가는 사랑은 그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안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H에게 주었던 사랑보다는 더 깊어지도록 애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남짓 영화를 보며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피곤했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고 눈도 아팠다. 영화보고 이렇게 피곤해하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아무래도 내 체력은 지안이와 버스를 타고 놀이방에 다녀오는 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다. 지안이가 세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제야 운동을 미친 듯이 해야 복직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기로 하면서 요즘은 아들과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어요. 운전을 못하다 보니 아기띠를 메고 버스를 타며 이곳저곳 다니고 있어요. 지방이라 처음엔 버스 타는 게 쉽지 않았는데, 배차 간격에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어요.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아들도 밤잠을 비교적 잘 자 주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한결 숨을 돌리고 있어요.
다만 그동안 쌓인 피로가 아직은 남아 있는지, 정신적으로는 회복이 되었는데 체력은 더 저질이 되었는지, 놀아주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뭐지! 왜 체력이 안 돌아올까요!!?? 신체 밧데리가 노후되었나봅니다.-_-;ㅎㅎㅎ
그래서 브런치 글이나 활동은 조금만 숨을 고른 뒤에, 차분히 다시 이어 가려고 해요.
정말 몇년만에 본 영화라 의식의 흐름대로 쭈우우우우욱 쓴 글로 인사남겨봅니다. ㅎㅎ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