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두달 만에 수습종료 통보받은 이야기 part2.
너무나도 쉽다고 생각하며 입사한 그 회사는 겉으로 보기엔 성장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으로 방향을 틀고나서 몇 개의 면탈끝에 받은 합격 통보이기도 했고, 딱히 뭐 다른 선택지도 없어서 바로 입사결정을 내리긴 했다. 하지만 조금 걸리는게 있었으니. 잡플래닛(크게 신경쓰진 않았지만) 회사평점이 너무 낮고, 회사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인 고객들의 반응을 다수 찾을 수 있었다는 것.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도 평점이 낮은 편이었는데 그 회사보다 더했다. 그래도 나는 한시가 급했다. 단지 평점이 낮다는 이유는 나에게 그 회사에 다니지 않을 이유가 되진 못했다.
그렇게 조금의 의문과, 걱정과 많은 생각들을 품고 들어온 회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유연한(것처럼 보이는) 조직문화, 깨끗한 공유오피스, 아무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꽤나 긴 공백기를 거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스타트업의 문화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출퇴근 시간 자유, 점심시간 자유, 연차/반차 사용 자유, 온갖 자유로움 속에서 너무나 달콤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 자유로움이 어떤 비수가 되어 내 등에 꽂힐지도 모른 채.
내가 mistake였다고 생각하는 것 1
회사를 다녀보고 아닌거 같으면 바로 손절하자는 마음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
무조건 이 회사에서 1년 이상은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1년 반만에 얻은 이 기회는 나에게 너무 소중했고 감사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마음은 그냥 바보같이 순수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조금 다녀보고 아닌거 같다는 촉이 느껴질 때 발을 빼는건 나를 위한 일이었다. 잘못된 선택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빠져나가려면 우물쭈물 해서는 안된다.
그 회사에서는 종종 이상하다? 싶은 일들이 있었다.
(스타트업에 이런일이 비일비재한지, 이 회사만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① 입사 동기 언니의 실종(?)
같이 입사한 동기언니가 있었다. 조금 얘기를 해보니 HR쪽으로 경력이 꽤나 있는 분이셨는데, 입사한 날부터 언니의 착잡함이 느껴졌다. 이 회사는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며 처음부터 다 만들어야겠다는 볼멘소리를 첫날부터 하셨다. 뭐 스타트업이 그렇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는 온보딩 이후로는 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일하기 시작한지 한달 정도 됐을 때, 언니의 자리는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② 인사팀 리더급으로 오신지 얼마 안된 크루분의 실종(?)
온보딩할 때 같이 인사했던 인사팀 리더분 역시 쥐도새도 모르게 또 사라졌다. 그분이 그만뒀다는 건 주간 전사회의에서 대표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회사와 핏이 맞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 수습종료를 하기로 했다고.
③ 주간 전사회의에서 대표가 직접 잡플래닛 리뷰를 한다
약간 타운홀 미팅처럼 비대면이긴 하지만 회사의 모든 크루가 참여하는 미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대표는 굳-이, 미팅의 한 부분을 짬을 내 굳-이 잡플래닛 리뷰를 했다. 그때 나는 '아니 대표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라는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비판을 수긍할줄 아는 사람들이구나. 왜 이렇게까지 할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이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일을 먼저 겪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을지도.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인해 회사는 화수목 재택 근무를, 월금은 회사 출근으로 운영되었다. 느낌상 내가 대표의 눈밖에 났다고 생각되는 시점은 명절 연휴였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외근(촬영)을 나갔다 올 일이 있었다. 팀 내에는 외근에 대한 어떠한 매뉴얼도 없었고, 촬영 소스가 필요하다고 해서 갔다왔을 뿐이었다. 당시 그 일 말고도 할 일이 있어 거기에 집중하느라 외근에 대한 준비를 못했고, 다녀와서도 정신없이 지나갔기에 딱히 공유한 건 없었다.
여기서 내가 mistake였다고 생각하는 것2
나는 내가 한 일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일주일이 넘는 긴긴 명절연휴가 시작되었고 더군다나 재택근무+백신접종으로 인해 일주일 넘게 회사출근을 안해서 그런지, 대표는 내가 아무것도 안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후 줌 미팅으로도 나에게 이렇게 말했았다.
"00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뭘 하면, 그거에 대한 결과가 있어야지. 뭘 했는지, 뭘 느꼈는지"
근데, 사실 맞는 말이다. 부정하기엔 너무 뼈를 때리는 말이었어서.
뭔가가 완성되지 않으면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성격+징크스가 있는 나는 중간보고를 잘 못했다. 뭔가를 혼자서 사부작거리긴 했지만 그걸 공유하진 않았다. 근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노출되지 않는 재택근무를 할 때는 이게 아주 치명적이었다. (아니 근데 그렇다고쳐도 내가 그걸 어떻게알아. 사수도 없고, 재택근무+업무보고 매뉴얼도 없고, 난 이게 처음이고, 어떻게 하란 말도 안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어쨌든 이 일로 인해 나는 내 일을 '떠벌림'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한달 후 새로운 시니어마케터분이 오셨을 때, 그분이 일하는 방식을 보며 이 '중간보고'라는 글자를 내 뼈에 새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