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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2. 2019

퇴사 후 유럽 - 체코 프라하에서 (2)

2018.05.17

어제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느끼지 못했던 오전의 프라하의 모습에 새로운 여행지에서 아침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전에 신청한 조식을 먹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장품 가게였다. 40일이 넘는 여행은 처음 하다 보니, 한국에서 들고 온 스킨과 로션 샘플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평소 사용하던 화장품만 고집하다 보니 여행하면서 여러 번 구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지나쳐 왔는데 이제는 정말 사야 할 때가 왔다.

어제부터 폭풍 검색해서 알아낸 'ziaja'라는 이름의 화장품 가게를 찾아갔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매장이 있어서 프라하 시내를 산책하며 찾아갈 수 있었다. 토너와 로션을 골라서 계산을 했는데 총금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12,000원 밖에 되지 않았다. 이 가격에 화장품을 사는 게 가능하다니, 회사 다니면서 썼던 기초 화장품 가격이 머리를 스치며 씁쓸해졌다. '여행자'가 되니 모든 지출을 실용성에 맞추게 된다. 꼭 필요한지, 가격은 적당한지,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를 따져가며 돈을 쓰게 된다. 한국에서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썼고 화장품도 비싼 것만 사용했었는데 사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여행하며 느낀다.


급한 생필품(?)이 해결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늘은 프라하의 신, 구 가지를 거쳐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여행 책자에서 알려준 지름길로 가니 넓은 광장이 펼쳐지며 프라하 성이 보였다. 카를교에서 바라볼 때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프라하 성을 바라보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프라하 시내의 전경과 카를교가 보이는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프라하 성으로 향할 때 나는 왠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북적한 성 안보다는 이렇게 밖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성을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행 책자에서 뷰 포인트라고 알려준 장소가 있어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처음에 좀 헤매다가 결국 찾아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속으로만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한 참을 그곳에 있었다. 한차례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은 풍경과 주위의 고요함이 주는 평화에 여행의 모든 이유가 설명되는 듯했다. 정말이지 나는 이러한 고요함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그저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문득 내일이면 프라하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생각이 들어 '동물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도착시간을 계산하니 아무리 빨라도 폐장시간 1시간 정도를 남기는 애매한 일정이었지만 그냥 이대로 하루를 마감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또 무리한 일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동물원에 간 것은 잘 한 선택이었다. 물론 폐장시간이어서 많은 동물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동물원만 보다가 친환경적인 동물원을 보니 느낌도 새로웠고 정원을 산책한 기분이어서 충분히 즐거웠다.

항상 시작은 여유로운 여행을 꿈꾸지만, 막상 아쉬움에 이것저것 일정을 추가하다 보면 하루가 바쁘게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찾아서 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린다면 최대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여행이 끝나갈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남은 여행 경비와 한국에 돌아가서 생활할 비용을 계산해보니 전혀 여유롭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더욱 '지금'에 집착하게 된다. 


여행의 끝을 향해가며 처음의 환상과 여유는 없고 그 중간, 아니 현실에 가깝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가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여행 중이고,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우니 우선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모든 걱정과 불안은 한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해도 늦지 않으니 마음을 편히 가져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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