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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기 Oct 13. 2023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의 문제고,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낡은 계략에 속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다면 불멸을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단 한 가지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개성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면 그 무엇에도 소속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전하고 탁월하다. 나보다 더 뛰어난 개성은 없다.

 다른 누구와도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든 지금 이대로의 나, 나의 개성,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인생에 진리는 없다. 삶은 어리석은 동화일 뿐, 그래서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상이야말로 내 눈엔 전부 실수와 오류투성이다. 오류와 허위로 둔갑한 것들이야말로 진실이고, 진리와 신성으로 과장된 것들이야말로 진짜 오류다.

 옳고 그름 따윈 없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줄 테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겠다. 물론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를 것도 없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니까.

 그러므로 나는 말하겠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함정이다. 나는 괴물이고 파괴자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명제들이 나를 만나 무너지는 것을 본다. 나는 역사의 훼방꾼이며, 다른 사람이 책 한 권으로 말해야 하는 것들을 나는 열 개의 문장으로 설명해 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진실을 나는 한 권의 책으로 무한히 써 내려갈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사실만 잊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평가, 새로운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착각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정신질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바로 우울이다. 거리에 나가면 우울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자들이 발에 치인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질병이라고 정의한다. 우울은 말 그대로 정신이 우울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오늘날과 같이 우울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를 위해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정신이 우울해지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정신을 나약하게 만든다. 기술과 산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삶은 외형적으로 더욱 편리해지지만, 안락한 삶에 도취된 인간은 눈앞에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이성적 고뇌로 치열하게 싸워 극복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사서 해결하려 한다.

 현대의 우울함이 두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특별한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울의 덫에 빠져도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 없다. 기술이 문명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을 핑계로 얼마든지 나태해져도 그 게으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우울하다는 변명으로 얼마든지 무감각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기분이 우울해서 타인의 고통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마디 툭 던짐으로써 간편하게 면죄부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함에 취해 있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불감증이며, 이 단계에서는 사회적 인습 전반에 무기력해져 자기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우울의 망령에 완전히 정복당하고 나면 사람의 영혼엔 오직 분노만이 남게 된다. 외로워서 화가 나고, 피곤해서 화가 나고, 남들이 행복해서 화가 나고, 마침내 화만 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듯이 화가 난다. 그래서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이 세계 전부를 희생시켜도 값싸다는 논리에 봉착한다. 우울의 끝에서 열광이 태어나는 것이다.

 열광은 기존의 것들을 부정함으로써 불씨가 지속된다. 과거엔 옳았던 도덕이 오늘의 열광 속에 불법이 되고, 오늘을 있게 한 세계관이 마치 거짓인 양, 모두를 위해 세상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는 열광이 산불처럼 번지다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꺼져버린다. 왜냐하면, 열광은 우울이라는 씨앗에서 발아된 독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던 주장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열기가 사그라들고, 또 별것도 아닌 사건에 광적인 집착이 일순간에 집중되어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등, 우울과 열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난립하게 된 것이다.


책을 자꾸 구입하다 보니 책장이 비좁아져 새로운 책장을 들이고 신이 나서 책을 더 사다 보면 다시 책장을 구입해야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 읽은 후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세웠지만, 가끔 제목에 꽂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하게 되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가 기록한 일기와 편지 등에서 발췌한 글로 엮인 책이라는데 제목이 기똥차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일치하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는데, 요즘 주변에서 만나는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무사 안일주의'를 기본으로 한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에게 일어난 전세보증금 지연반환사건은 <크나큰 불행>이었고, 빨리 해결되어서 다행이라는 축하를 건네면서도 "애초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덧붙이길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왜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좋은 일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사실 그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다.

커피 한 잔 사서 출근하려는데 생각보다 붐비는 도로상황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날은 여유 있게 도착했지만 문이 닫혀있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던 중 만난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이란 책은 단락마다 깊은 깨달음을 주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옮겨 본 책의 일부.


나로 시작해 사회현상까지 관통하는 이야기에 홈빡 빠졌다.

쇼펜하우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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