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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아저씨 Aug 12. 2020

'파이어 에그' 친구와 휘날렸던 추억.

나에게도 그저 말동무가 아닌 진정한 친구가 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지내도 언제나 그 친구를 생각한다. 즐거울 때, 힘들 때, 슬플 때,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친구다. 심지어 혈액형도 같다. (이렇게 또 공감대를 형성하나요.)     

  

그 친구는 전라도 사내고, 나는 경상도 사내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상큼하고 싱싱했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전라도와 경상도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데, 유달리 그 친구와 나는 서로 첫눈에 알아본 듯했다. ‘저 시키는 나랑 잘 맞겠군.’하면서 말이다. 하하     

  

이제 막 반 사회인이 된 대학교 새내기 시절. 캠퍼스의 낭만은 개뿔, 험난한 기숙사 생활이 시작된다. 운동이 힘든 건 둘째고 운동부만의 지켜야 할 룰이 너무나 힘들었다. 고된 평일이 지나 단비 같은 주말이 찾아올 때면 언제나 술집으로 향했고, 뒷 담화를 안주삼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K와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의 비밀도 없는, 둘도 없는 ‘파이어 에그’ 친구사이가 된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던 K와 나는 주머니에 10만 원이 있는 날이면 그날은 아주 든든한 날이기도 했다.     


“야간운동 하로 가야지?”

그랬다. 우리는 외박까지 나와서도 야간운동을 해야만 했던, 참된 엘리트 선수였다. (그곳은 나이트클럽)    

  

나이트클럽에서의 목적은 대부분 같다. 마치 세렝게티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우르르 무리 지어 다닌다. 그 과정에서 남, 여 할 거 없이 서로 영역싸움을 하고 자기 짝을 찾기 위해 혼신에 힘을 다한다. 물론 K와 나도 그 무리에 속했다. (어떻게든 해 볼라고.) 그 당시 나이트클럽 기본 테이블 가격은 3만 5천 원, 우리는 돈 없는 하이에나, 기본 테이블을 잡아 논다. 룸을 잡아 노는 하이에나들, 부스를 잡아 노는 하이에나들이 부러웠지만 K와 나는 괜한 자존심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며 그저 춤만 추러 왔다는, 말도 안 되는 똥 폼을 잡곤 했다. 그렇게 매번 나이트클럽에서 실패를 맛보고, 긴 밤을 지새 인근 사우나로 향한다. 다음번엔 꼭 성공하리라 굳센 다짐과 함께 잠을 청한다.




새로운 야간훈련 장소.    

  

어김없이 주말이 찾아왔다. 나이트클럽을 너무 자주 간 탓일까, 새로운 야간운동장소를 정했다. 학교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젊음의 거리 홍대로 향한다. 야간운동을 하려면 허기를 채워야 하기에 인근에 있는 안동찜닭 집에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배는 채웠는데, 뭔가 2% 부족했다. 부족한 게 뭘까, 너무 맨 정신인 것이 문제다. 술집에 가서 술을 먹자니 시간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밖에서 강소주를 마시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거 같았다. 해서 고른 것이 우유같이 생긴 팩 소주다. 빨대를 꽂아 마시는 팩 소주는 얼핏 보면 우유같이 생겨 주위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일반 소주 같은 경우 잔에 따라 마시면 한 모금에 홀짝 넘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팩 소주는 빨대로 마시기에 입 안 가득 오랫동안 소주 향이 맴도는 단점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술이 쓰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시간은 금이기에 우리는 최대한의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팩 소주를 쪽쪽 빨아 마시며 개성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오니 어느 세 목적지, 홍대 클럽에 도착했다. 술이 약한 나는 취기도 금방 오른다. 부족한 2%를 채우는 순간 모든 게 완벽해지고, 술에 힘을 빌려 어깨가 상당히 거만해졌다. 술도 취했겠다, 누가 붙어도 이길 거 같은 튼튼한 몸도 있겠다. 자신감이 한껏 상승한 K와 나는 입구에서부터 아메리칸 스타일로다가 음악에 몸을 맡기고 건들건들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입장한다. 역시나 클럽은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클럽만의 매력 아니겠나. (클럽도 다를 게 없다. 정말 음악을 즐기러 오는 마니아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하이에나들은, 몸은 리듬을 타고 있어도 눈은 다들 자기 짝을 찾고 있기 바쁘다.) 많은 무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미친 듯 몸을 흔든다.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무용지물.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남, 여 할 거 없이 땀 냄새로 가득하다. 그래도 좋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유행하는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뭐 어떻게든 해 볼라고 해 볼라고 해 볼라고 했는데 실패다. 그렇게 넘쳤던 에너지를 소비하고, 얼굴이 창백해져야지만 야간훈련을 마친다.         

  



그 친구와 나는 짧지만 강렬했던, 때론 감성적이었던 추억이 많다. 우리 나중에 조금 더 성장하면 옆집에 살자고 할 만큼 찐 우정이었다. 올림픽 공원을 걸으며 감성에 취해도 보고, 여기저기 다니며 미친 듯이 놀아보기도 하고, 함께 사고도 쳐보고, 슬플 땐 눈물 콧물을 보이기도 했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다 드러냈던 그런 사이다. 대학교 졸업 후 그 친구와 나는 서로의 길로 헤어졌다. 서로 먹고살기 바쁨에도 불구하고, 항상 먼저 별일 없냐며 안부를 물어주는 고마운 놈이다.       

  

친구(親舊)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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