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대기업 전산실에서 영업관리직으로 전환하다.
전산실에서 과장으로 있는데 승진 적체로,
그리고 나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일반관리 부서로
과감히 전환하다.
대기업인 경우 기술직인 경우 고급기술자
(엔지니어)로 경력관리할 거나 아니면 일반직으로
전환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인가 결정할 때가
온다.
일반직으로 전환하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승진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지만 잘못하면
탈락할 수도 있다.
신입이 입사하면 누구나 <사장>을 목표를 두고
일하지만 아무나 대표가 될 수 없다.
기업의 전반적인 일자리를 섭렵하면서 내공을
키우는 것이다.
군대에서 대령까지 병과가 존재하지만 육군대학에서
모든 군 업무를 배우면서 성과 평가에 따라
장군에 도전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컴퓨터 업무로 눈도 나빠지고, 후배에게 길도 터주고
새로운 길도 가면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러려고 젊은 시절에 교사 사표를 쓰고 나온
것이 아닌가.
지점, 지역본부도 근무하면서 성과도 내보고
대출이 잘못되어 징계 먹기도 했다.
순환 보직이 끝나 회사 내부 공모로 인터넷 마케팅
과장으로 본사로 다시 이동,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인사적체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진급이 안된다.
사기업의 진급은 급여와 연동되기에 아주 민감하다.
확대 성장에서 IMF를 지나면서 축소경영이 지속되다
보니 승진이 가뭄에 콩 나듯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다가 명예퇴직을 실시한단다.
명예퇴직금이 퇴직금 외에 2억(?)이다. 2000년
당시로는 획기적인 제안이다. 10년 이상 근무이거나
과장급 이상이다.
혹 했다. 사실 진급이 안되면 후배가 임원으로 있는
여의도 컴퓨터회사로 옮길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명퇴라? 천운(天運)이다, 생각되었다.
항상 언제 어디에 있던지 대안(1, 2, 3안 등)을
가지고 살아야 힘들지 않게 산다.
인생의 지혜이다.
과장을 임원으로 모신다, 현 연봉의 1.5배 조건도,
200여 명의 중기업이라 분위기도 좋을 것(?) 같고,
상장사라 성과에 따른 급여 외 주식매수청구권
(stock option)도 있다.
다만 영업관리직이라 영업실적이 걸린다.
그래, 한번 사는 인생.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승부수를 걸어보자.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내 인생 두 번째 기회를 잡기 위해 사표를 쓰고
<명예퇴직>이 되었다는 담당 임원의 구두 통보를 받고
광화문 회사를 떠났다.
떠날 때는 말없이.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할 까 봐 조용히 보따리를 싸서
새로운 바람이 부는 여의도로 옮겼다.
2001.1
여의도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거의 20년 근무한 직장이라, 돌아보니
애착이 많았다.
그러나 옮긴 직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해 겨울 따라 시베리아의 북서풍이
더 매몰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돌아보니 옷을 벗고 들판에 홀로 서있는
나목(裸木)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