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날 아침이다.
시간은 무한하게 흐르는 것이니, 마지막 날이니 첫날이니 하는 것도 인간들의 귀여운 이벤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2022년 12월 31일.
브런치 작가가 됐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너무 오래 글을 올리지 않았다. 아마 “잘” 써서 “제대로 된” 글을 올려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새해에는 좀 더 잘 이용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런 마음만 몽글몽글 피어나는 정도.
올해는 특이하게도 올해의 마지막 지는 해를 보고, 새해의 뜨는 해도 보기로 했다. 내 연인의 귀여운 아이디어다. 종종 연인의 아이디어에 감탄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오늘은 바다에서 지는 해를 보고, 내일은 산에서 뜨는 해를 본다.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지!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 연인에게 짤막한 카드를 썼다. 짤막이라고는 하지만 쓰다 보니 조그만 글씨로 두 장을 썼다. 편지지가 작아서 그런 거라고 변명을 해본다.
요즘의 나는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산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가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그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 두 얼굴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얼마 전 “지금 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에 문득 든 생각이었다. 자기혐오조차도 그 뿌리는 자기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사랑하고 싶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그에 걸맞지 않은 것만 같아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아이러니. 인간은 왜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오늘은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다가 천천히 만나고 싶어 약속시간을 2시간 미뤄두었지만, 결국 나는 일어나려는 시간보다 2시간 반이나 일찍 깨고 말았다. 다시 잠들려고 명상앱을 켜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배가 고팠다. 딱히 먹을 건 없고, 냉동실에 가득 들어찬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생각났다. 아침부터 케이크라니… 안그래도 지난번 건강검진 때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조심해야 하는데 하필 먹을게 케이크 밖에 없다. 깨서 누워있으니 오늘 외출할 때에 가져갈 물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생각이 많아지니 다시 잠들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또 불안이 올라왔다. 안정제를 먹고 다시 자볼까 했지만 그것도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고 아이패드를 켜서 쓰는 이 글은 정제된 것이 조금도 없는 오늘의 기록이라서 마음에 든다. 바로 같은 이유로, 이 글을 올리고 난 후에 후회하겠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워 더욱 길게만 느껴졌던 9월, 10월, 11월이 가고, 12월도 오늘이면 끝이다. 어떻게 버텨냈나 생각하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 과정에서 지불된 엄청난 씨발비용과 불어버린 몸을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을 살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침으로 케이크를 먹든 먹지 않든, 집이 아무리 엉망이든, 나는 오늘 살아있고, 내일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