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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스킷 Aug 13. 2023

보스턴 백과 여행용 캐리어

당연한 생각



 4일간의 여행 후에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기 옆 4단 선반 중 한 층엔 항상 쓰는 타원형의 하늘색 바디워시가 있었고 샤워기 핸들 위 쟁반엔 원래 있던 그대로 적갈색 샴푸통이 놓여있었다. 기억하는 각도로 손잡이를 돌리자 익숙한 세기의 물줄기가 적당한 따뜻함으로 뿜어졌다. 그 옆에 크롬 수건걸이엔 샤워하기 직전 대충 걸어놓은 수건과 속옷이 구겨져 걸려있었다. 바닷물 속 모래처럼 가라앉아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행동들이었다. 여행 후엔 종종 머릿속에 가라앉은 모래를 휘저어 연기처럼 퍼뜨린다. 그 경험이  또 다른 향을 입힌다. 그럴 때면 지루하고 때로 답답한 집이 너무나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긴 여행엔 짐을 어깨 한쪽에 걸칠 수 있는 보스턴 백에 욱여넣기보단 큰 여행용 캐리어를 챙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턴 백에 꽉꽉 눌러 담았다가 움직이며 뒤섞인 짐에서 무엇하나 찾기 위해 이리저리 가방 안을 뒤져야 하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반면 큰 캐리어는 지퍼를 열어 양쪽을 펼치는 순간 모든 게 확인 가능한 하나의 서랍인 것이다. 아래에 달려있는 바퀴는 또 얼마나 편리한가. 당연한 생각을 새로운 듯이 하며 샤워기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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