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남편이 잠들었다.
포근함을 느끼기 위해 포동포동한 아들을 살며시 껴안고 째깍짹깍!
오동통한 아들의 발을 얼굴에 비비며 짹깍짹깍!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새로운 날(더구나 월요일)이 시작됐다.
어제도, 그저께도 잠을 들지 못했다. 새벽 3시나 4시쯤 겨우 잠들어 악몽에 시달리며 6시에 깼다.
갑자기 떨어진 지시사항을 핑계로 토요일은 새벽 7시에 출근했다.
일요일인 오늘(아니, 어제는)은 회사에 도착하니 새벽 6시 40분이었다.
최근 들어 다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남편에게 수면제를 비롯한 모든 약을 줬기 대문이다. 이제 먹을 약이 없다.
나와 한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잘 통했던 동생이 있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복도에서, 로비에서, 옥상 정원에서 만나 함께 울어줬던 동생은 최근에 계속 멍하고 무기력한 내 목소리가 걱정 됐는지 나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내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도 더 지난 후였다. 3주 정도 지난 후, 동생이 내게 먼저 말했다.
"언니, 사실 내가 언니 남편한테 언니 상황 얘기했어요. 남편이 아무 말 안 하던가요?"
"어, 남편은 결혼 전부터 내가 약 먹고 응급실에 실려간 것도, 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많은 일을 겪고 나를 알기 때문에 네 전화받고도 나한테 말을 못 했을 것 같아."
모든 것을 알고도 그저 내가 편히 쉴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해 준 남편이 고마웠지만 동생의 전화를 받은 후, 나쁜 일을 하다 엄마에게 들킨 아이들처럼 조마조마해졌다.
우울과 걱정스러움이 섞인 감정으로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있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서진아, 힘들지?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펑펑 울어도 돼."
우울함을 감추며 회사에서는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노력을 하던 나는 친구의 말에 바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사무실 끝 복도 계단으로 얼른 뛰어가서 엉엉 울었다.
"울어도 돼."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나아질 거야. 힘내!'라는 말은 내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약하게만 보는 그들이 더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가볍게 건넨 인사말에 엉엉 울어버린 내가 걱정됐던 친구는 나의 남편에게 업무용 메신저로 장문의 쪽지를 보냈다.
남편은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너무 자주 아픈 것 같으니 휴직을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권유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나를 어리게만 봤던 남편의 입에서 명예퇴직 얘기가 나오다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남편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난 또 몰랐다. 2023년도가 시작되면서 줄곧 약에 취한 탓에 지하철 타기가 어려워 남편은 출퇴근길에 나를 태워줬었다. 친구들이 남편에게 나에 대해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월요일 출근길이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해 내리려고 하는 내게 남편은 감정을 뺀 체 짧게 사실만을 말하고 다시 차를 타고 가버렸다.
"서진아, 네 친구 중 00 씨랑 00 씨 말이야. 네 걱정을 정말 많이 해주더라. 너한테 정말 소중한 친구들인 거 같아. 그리고 회사는 휴직하자. 그만둬도 되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일하는 건데 약 먹으면서까지 버티는 줄 몰랐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 남편에게 어려운 말을 해야 됐던 나의 친구들. 그들은 당연히 내가 걱정됐을 것이다. 남편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던 친구들은 남편이 다니던 구청, 직렬, 나이 만으로 검색을 반복하며 어렵게 남편의 연락처를 알았다고 했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던 친구들이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숨김없이 다 했었다. 매일 죽고 싶다고 하고 울고, 약을 먹는 나를 친구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반, 약물 과다복용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 반으로 약을 모두 줬다. 너무 미안해 수면제와 항우울제 말고도 반드시 먹어야 되는 갑상선 호르몬, 류머티즘 염증약까지 모두 다 줬다. 류머티즘 염증 때문에 몸이 따가워서 약을 먹으려고 하면, 둥이가
"아빠, 엄마 또 약 먹어."라고 말하고 남편이 바로 쫓아와서 약을 검사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어떤 약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알약만 보면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내 죄가 너무 큰 것 같아서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르고 있다.
항상 전업주부가 꿈이었던 내가 사무실에서 사람과 일에 파묻혀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다. 집에 있으면 우울감이 심해져 정말로 극단적인 상상이 막 떠오르기 때문에 당분간 회사는 계속 다니기로 했다.
남편에게 약을 반납한 지 일주일정도 지났다. 그리고 난 요즘 계속 행복하다.
퇴근길에 날 데리러 온 남편은 내 안색을 살피며 묻는다.
"서진아, 오늘 어땠어?"
"오늘 괜찮았어!"라며 집에 갈 때까지 하루종일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말한다.
역시나 오늘도 밤을 셀 것이라는 게 예상되지만,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뒤척이다가 남편과 아들이 잠들면 조용히 거실로 나온다.
"서진아, 별일 없지?"라고 묻는 친구들에게도
"응. 아무 일 없어. 이제 다 좋아졌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라며 말하고 함께 웃는다.
남편에게 내 상황을 말한 친구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날 진심으로 걱정하고 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며 엉엉 울 수 있는 친구들이 없어진 게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들 한다.
'좋다. 아무 일 없다. 괜찮다.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웃으면 정말 행복해지겠지만
난 웃을수록 울고 싶다. 드라마에서처럼 별말 없이 조용히 소주나 마시다가 미친 듯이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그러다 갑자기 펑펑 울고 싶다.
걱정돼서 내 약을 가져간 남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남편은 아직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 약들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다. 잠도 자야 되고 우울감도 없애야 되고 무엇보다 내 몸에 여기저기 난 염증들은 너무 따갑다. 나에게 꼭 필요한 약이니까 처방대로 복용량을 지키며 잘 먹을 수 있게 응원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글을 적다모니 어느덧 새벽 1시 반이 지났다. 오늘은 도대체 몇 시에 잘 수 있을까?
멍하고 두려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난 행복하다.
행복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