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고 있다 - 작은 조각들 (1)
일본에서 살 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은 단연 긴 머리를 말리는 일이었다. 젖은 두피부터 말리기 시작해 꼼꼼히 머리 전체를 정돈하는 일. 나에겐 작은 힐링이었다. 머리를 다 말리고 뻥 뚫린 발코니에 서서 작은 마을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 기분. 그러고 나서 흰 이불에 폭 들어가는 그 기분.
한국에 와서 머리가 더 자랐다. 많이 자랐고 웨이브를 주었다. 층이 심하게 있었지만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였다. ‘였다.’ 그리고 몇 주전 머리를 잘랐다. 이제는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이다. 사람은 변한다. 일본에선 이유 없이 머리 말리는 일이 좋았다가 한국에선 이유 없이 머리 말리는 일이 싫어졌을 뿐이다.
큰 맘먹고 돈을 들여서 머리를 자르고 스트레이트를 하고 끝부분에 컬을 주었다. 둥둥 떠다니는 내 곱슬머리는 관리하긴 좀 곤란하니까. 그런데 몇 주간은 컬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끝부분을 돌돌 안으로 말아주며 머리를 열심히 말려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지금 머리를 만졌을 때처럼 만큼은 말리셔야 해요”
머리를 오래 말리기 귀찮아서 머리를 잘랐는데요?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말리고 글을 쓰고 있다.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돌려서 말린 오른쪽 컬은 예쁜데 왼쪽 컬은 자꾸 밖으로 구부러진다. 뭐가 잘못된 거니. 옆으로 보고 반대로 보아도 비대칭인 내 머리카락들. 머리를 말리는 일에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게 이제는 조금 힘들다.
그래도 머리를 잘 말리고 싶다. 예쁘게 대칭으로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면 조금 삐뚤어진 내 머리에 적응을 할 것이고... 그게 아니면 아마도 자기 전 다른 힐링거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잘 말리는 일보다 더 위로가 되고 사랑스러운 일.
이렇게 또 하루를 걸어 침대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은 방금 말려 뽀송하다. 기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