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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홍시 Sep 07. 2023

삶 속에서 쉼표를 찍는다는 것


나는 요즘 영원 같은 찰나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이 순간은 실제로는 짧지만, 참 여유 있게 느껴지면서도 가슴 속 깊이 박혀서 너무나 큰 여운을 주고는 한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니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별 것 아니다.

그냥 일상 속의 쏟아지는 정보들에서 벗어나서, 잠깐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그 순간이다.


헬스장을 가도 핸드폰을 들고 있고, 샤워를 하면서도 노래를 듣고는 했다. 나의 정신은 가상의 세상에 있어서, 내 몸을 두고 있는 이 현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끔, 핸드폰을 만지며 산책을 하다가 문득, 삼분여 정도 손에서 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필 때가 있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하게 볼을 간질이는 가을 밤바람, 시냇물이 경사를 타고 흐르는 모습, 우거진 풀 사이로 우는 밤벌레 소리, 저 너머에 산책 나온 가족들의 밝은 모습, 조명들이 비추는 네온사인과, 거기에 가려 흐릿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보면 하나씩 모습을 비추는 별빛 혹은 인공위성들.


물소리도 얕은 곳에서 돌을 스치며 지나는 소리, 경사져서 세차게 내딛는 소리, 고여서 천천히 흐르는 소리가 다르고, 풀벌레 소리도 찌르르--라든가 삐익, 삐익, 귀뚤뚤뚤 등 자세히 들어보면 참 다양하기도 하다.


꼭 산책뿐만이 아니라 과자라도 입에 한 입 물고 눈을 감고 천천히 음미해도 그렇다. 내가 최근 잘 먹는 후는 코로 향기를 맡으면 달콤한 크림냄새와 인공 딸기향이 훅 올라오고, 입으로 답삭 베어물면 저항 없이 바스라지는 보드라운 빵이 입안의 물기를 빨아들이고, 곧이어 달달한 크림과 잼 같은 것이 더 강한 딸기항과 맛을 내며 혀 위에서 뭉그러지고, 오도독 오도독 씨앗이 씹힌다.


자기 전에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으면, 베개는 단단히 내 목을 받쳐 주고, 푹신한 편인 매트리스는 내 몸을 감싸 아래로 푹신하게 가라앉고, 발 베개 위로 발이 툭 올라앉으니 좀 더 시원하고, 양 옆으로 활짝 벌린 팔 너머로 약간 모자란 침대 너비가 느껴진다. 안고 있는 인형에서는 아직 남은 세제 냄새가 포근하게 올라오고, 극세사의 보들보들한 촉감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푹신한 이불은 내 발길질에 뭉개진 채 제 2의 발베개처럼 굴러다니며 내 다리를 따뜻하게 지탱하고 있다. 베란다 너머로 살짝 느껴지는 옆집의 형광등과, 끼기긱거리고 덜덜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와, 흰 빛을 뿜고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과, 멀티탭의 불그스름한 빛. 그리고 그 사이에 고여드는 어둠.


그 순간 순간을 음미하고 만끽하면, 생각보다 그것을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내 안에 깊이 새겨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치 영원처럼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그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래저래 바쁜 일도 힘든 일도 많아 매 순간을 느낄 수 없지만, 가끔은 한 번씩 이런 순간을 만끽하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만화 드래곤볼의 시간과 정신의 방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걸 느끼고 싶어 일부로 산책 중간에 앉아 별을 찾기도 하고, 강물을 관찰하기도 하고, 폰을 내려두기도 한다.


여행이 인상 깊게 느껴졌던 건 새로움도 있지만, 새로움 때문에 그것들을 만끽하려던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속상하거나 심심해서 의미없이 먹던 과자 열 봉보다 그렇게 음미하며 먹는 과자가 내겐 더 실감났고, 수많은 힐링보다 그냥 조용히 이 순간의 밤산책을 즐기는 내가 더 힐링이다.


가끔 여러분들도 머릿속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 순간 그 자체를 온전하게 만끽해는 건 어떨까?생각보다 참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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