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야, 괜찮아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내면아이 동화

by 이홍시



옛날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어요.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과일만 먹고 살았지요.

과일나무는 아이가 따기엔 다 높고 가지에 가시가 가득했기 때문에, 어른들이 항상 아이들에게 과일을 나눠주곤 했어요.



나나도 어른들에게 과일을 나누어 받는 아이 중 한 명이었지요.

빨간 과일, 노란 과일, 형형색색의 과일들은 무척 맛있었어요.

먹고 싶은 과일을 부모님에게 맘껏 말하던 어느 날, 나나의 엄마 아빠가 병에 걸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느날 밤, 나나는 밤에 두 분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요즘 과일을 따기 힘들어서 큰일이야. 앞으로 과일을 조금씩만 먹어야겠어. 나나는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 그대로 먹이고, 우리는 조금씩만 먹자구.”


“그래요. 몸이 아파서 자꾸 가시에 찔리나 봐요. 당신도 이번에 크게 찔렸잖아요.”



그 얘기를 들은 나나는 제가 조르던 것들이 부끄러워졌어요.

나나가 특히 좋아하는 노란 과일은 가시가 많은 나무에만 열리는 것이거든요.

어제 부모님이 나나에게 노란 과일을 따주며 활짝 웃어 주시던 걸 생각하니, 나나는 그동안 엄마 아빠에게 그 과일을 따달라고 했던 게 미안해졌어요.

나나는 혼자 훌쩍이며 소리 죽여 울었답니다.


다음 날, 나나는 평소 먹던 과일의 반만 먹고 남겼어요.

더 먹으라는 엄마 아빠의 말에도 고개를 저었지요.

그리고 학교가 끝난 시간에, 몰래 숲으로 향했어요.

이번엔 나나가 직접 엄마 아빠에게 노란 과일을 따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나무는 너무 높고 가시가 많아서, 나나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어요.

손에 피가 나고, 가시가 박힌 채 나나는 울면서 생각했어요.

그동안 나나의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과일을 따 온 걸까요?

직접 따지도 못하면서 노란 과일을 먹고 싶고, 배만 고픈 나나는 염치없고 미운 사람이아닐까요?


나나는 매일매일 숲 속에 가기 시작했어요.

엉덩이에 멍이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손에 상처가 가득한 채로, 노란 과일 하나를 간신히 따온 나나는 더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로 갔어요.



“엄마, 아빠! 선물이에요!”


“나나야..”



하지만 엄마 아빠는 나나의 생각과는 달리 기뻐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나를 안고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아빠는 붉어진 눈시울로 헛기침을 하며 나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나나야, 고맙다. 그렇지만 다음엔 그러지 말아라, 엄마가 걱정했잖니.”


“나나야, 우리 철 든 나나. 고맙구나. 그래도 아빠가 다음에 나나가 먹고 싶은 만큼 더 따 오마. 그러니 그런 선물은 나중에 해도 된단다. 많이 아팠지?”



그리고 그날 밤, 나나는 나나의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소릴 들었어요.

나나는 자기 자신이 참 장하고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는 왜인지 속상해하고 있었어요.



“나나가 왜 과일을 그렇게 따온 걸까요? 집의 과일이 부족한 걸 눈치챈 걸까요?”


“나나가 너무 일찍 철든 게 다 내 탓 같아.”



나나는 부모님이 기뻐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해 속상했어요.

그날부터 나나는 과일을 조금씩만 먹기 시작했어요.

아픈 엄마아빠가 그만큼 더 많이 먹길 바랐으니까요.

가끔 배가 고프면, 과일을 따오지도 못하는 제가 배고픈 건 나쁜 거라고 자신을 혼내며 물을 마셨어요.


나나의 부모님이 아픈 걸 아는 마을 어른들이 나나에게 과일을 주었지만, 나나는 사양했어요.

나나는 누가 과일을 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과일을 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나나의 친구 디디는 그렇지 않았어요.

디디는 어른들이 과일을 주면 그냥 맛있게 받아먹었고, 부모님에게 먹고 싶은 과일을 이야기했죠.

나나는 그런 디디가 바보같이 느껴졌어요.

부모님과 어른들이 과일을 얼마나 힘들게 따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나와 친구들은 스스로 열매를 따야 할 나이가 되었어요.

그동안 매일 조금 먹은 나나와 달리, 천진하게 먹었던 디디와 친구들은 어느새 키가 무럭무럭 자랐어요.

한편 줄곧 조금 먹어왔던 나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키가 작아 한참을 다치며 열매를 따야 했죠.

그런 나나가 안타까웠던 디디가 자신의 과일을 나누어주자, 나나는 거절하며 말했어요.



“니가 얼마나 힘들게 딴 건데 이걸 줘. 내가 이거 하나 따려면 온종일 나무를 타야 하는 걸?”



그런 나나가 안타까웠던 디디는 다시 과일 바구니를 내밀며 나나에게 다정하게 말했어요.



“나나야, 나는 과일을 따는 게 힘들지 않아.”


“응?”


“이제 나는 키가 크잖아. 나는 노란 열매의 가시보다 높이 팔이 닿아서, 하나도 안 다치고 금방 딸 수 있어. 볼래?”



디디가 팔을 들어 노란 열매를 금방 따서 내밀자, 나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어요.



“자,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 그러니 니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혼자 잘 따지도 못하면서 배가 고픈 건 한심한 거잖아.”



나나가 슬프게 중얼거리자, 이번엔 디디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어요.



“누가 너한테 그런 못된 말을 했니? 사람은 누구나 열매를 잘 못 딸 때가 있는 거야. 그건 결코 잘못이 아니야. 어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열매를 딸 수 있겠어? 그때는 그냥 잘 먹는 게 우리 일이야. 그래야 쑥쑥 잘 커서 이렇게 열매를 잘 따는 어른이 되지.”



“누가 말한 게 아니야. 내가 생각한 거야. 우리 엄마 아빠는 계속 아파서, 내가 조금 먹는 게 낫다고 생각 했어. 아픈 엄마 아빠가 열매를 힘들게 따는 것보다 내가 굶는 게 낫다고.”



“나나야…”



디디는 나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어요. 같은 또래였지만 그래도 디디는 무척 커서, 나나는 꼭 어른에게 폭 안겨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디디는 어른스러운 얼굴로 나나를 쓰다듬어주며 이야기했어요.



“나나야, 너희 부모님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이 따주는 건 왜 안 먹었어?”


“배고픈 내가 싫었어. 내가 배고파서 엄마 아빠를 더 고생시키는 것 같았어.”


“아니야, 너는 잘 자라기 위해서 배고팠던 거야. 너희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과일이 모자르니까, 도와주려고 동네 어른들이 과일을 많이 따왔는 걸. 그리고 그것도 폐가 아니야. 마을 어른들도 방금 본 것처럼 이렇게 똑! 따면 되니까.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우리 마을 어른들한테 과일을 받아먹어도 괜찮은 거야.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아이는 원래 과일을 받아먹고 자라는 존재니까.”



디디는 다시 한 번 순식간에 과일을 따서 나나의 앞에 내밀며 말했어요.



“그리고 배고픈 니가 한심하다는 소리 하지 마. 너희 엄마 아빠는 네 입에 과일이 들어가는 게 제일 기쁘실 거야. 니가 잘 먹고 잘 커서 쉽게 따 드리는 걸 제일 기뻐하시지, 네가 이렇게 안 먹고 작은 채로 힘들게 따오면 부모님 마음이 어떠시겠니.”



그 말을 듣고 나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과일을 베어 물었어요.



“나도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나도 커서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고 싶었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너무 속상했어.”



디디는 나나를 꽉 안아주며 말했어요.



“그럼, 그럼. 그만큼 많이 맘 편히 많이 먹어야 피가 되고 살이 되지. 부모님은 오직 네가 잘 자라는 걸 보고 싶으셔서 과일을 따 오셨던 거야. 그러니 벌써부터 너무 어른이 되지 않아도 돼. 있는 그대로 먹기만 해도, 이렇게 키가 자라서 저절로 쉬워지는 걸.”



나나는 그동안 마냥 철없는 아이처럼만 느껴졌던 디디가 오늘은 훨씬 더 어른처럼 느껴졌어요. 어렵게 받아먹어 어렵게 주던 나나인데, 쉽게 받고 쉽게 나눠주는 디디를 보자 왠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나나는 디디를 붙잡고 펑펑 울었어요. 디디는 그런 나나를 끌어안고 그런 나나의 머리를 오래오래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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