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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ug 19. 2023

1.타협적인 소비를 지양하고 만든 외모 경쟁력

<우리는 브랜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 내 착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략 2천만원 가량된다. (여기까지 읽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 잠시 추스르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연예인들처럼 오늘 전체 착장 전체 얼마~라고 어그로 끌어보고 싶었다.)


 이 재킷, 머플러, 그 속에 입은 블라우스와 니트 그리고 스커트와 구두, 양말, 가방, 헤어핀과 벨트.

 여기까지만 보면 내 삶이 여유롭고 사치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샐러리맨이라 없는 돈 끌어모아 12개월 할부로 산 럭셔리 아이템들이다.

 명품이라고 옷마다 “명.품.” 이라고 붙여놓고 다니지 않기에 남들 보기에 그냥 아주 조금 더 멀끔하고 화려해 보일 뿐이지만 나만 느끼는 만족감이랄까?


 살아오며 경제적으로 쪼들리거나 큰 어려움에 봉착한 적은 없지만, 나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큰 사건이 한번 찾아왔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금전 가치관이 조금 바뀌었다. 지금 이 돈은 내가 쥐고 있는다고 모두 내 것이 아니며 이 돈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현금을 수중에 쥐고 있어도 꼭 어딘가 쓸데가 생겨버린다. 그냥 사고 싶은 걸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생각이지만, 돈을 꼭 쥐고 있으면 오히려 돈이 모이지 않는다. 돈에도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적절하게 쓰면서 살고 있다.

 사실 원래도 돈 관리를 유능하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진 돈을 몽땅 소비로 탕진하는 삶을 살지도 않았다. 적당히 쓰고 적당히 모으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타협 없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위해 과감하게 소비한다. 

 타협적인 소비는 여러 가지 대타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할 뿐이다. 대타로 구입한 제품은 결국은 색상이나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 비슷한 것을 계속 소비하도록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협 없이 딱 하나 구입하는 것으로 끝낸다.

 예전엔 타협적인 소비를 꽤 많이 해봤는데 결국은 성에 안 차 다시 마음에 드는 것을 다시 사느라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안사면 몰라도 사게 된다면 꼭 맘에 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다.(직업이 디자이너라 단 하나의 불만족스러운 포인트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을 이제서야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옷장에는 1년 내내 365일 상비군만 있다.

 옷이 아주 많아 보이지만 사실 안 입는 옷 없이, 좋아하는 옷들로만 나름 간소하게 정리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옷장에는 반 이상은 안 입는 옷들로 채워져 있고 이 중 아주 일부만 착용한다고 보았을 때, 내가 가진 옷들은 모두 잘 입는 옷이니 많아 보일 뿐이다.

 실제로 내 옷장을 보면 그 컴팩트함과 적은 수량에 놀랄지도 모른다.(보통 사람들 옷장에 안 입는 옷 평균은 57벌이라고 한다. 57벌의 공간 차지만 생각 해봐도 엄청나다.)

 주변 지인들 집에 가서 보면, 내가 가진 옷은 보통 여성들이 보유한 것의 1/3도 안 되는 양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옷을 굉장히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요즘은 스파브랜드 덕분에 20년 전 내가 대학생 때 사던 것보다 더 싸고 다양한 옷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 취향에 깊이 고민할 것 없이 쉽게 사고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옷들은 한 벌의 가격이 어마무시하니 쉽게 구입할 수는 없다. 옷 한 벌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처럼 심사숙고하여 내 옷장으로 들여온다.


 우리는 어쩌면 가성비의 오류 속에 빠져서 돈을 원하는 곳에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협하여 쇼핑하고, 타협의 결과 만족스러운 1개가 아닌 어정쩡한 여러 개를 구입해 수량으로써 만족도를 커버한다.

 이런 소비는 질보다 양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것이든 사기 쉽고 싼 물건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옷 한 벌 사서 5~6번을 입으면 많이 입은 것이라는 결과도 있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으니 평균치라 이해하자.)

 그러나 싸게 잘 건진 제품도 있겠지만, 그렇게 차선으로 선택된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옷들은 대체로 옷장 밖으로 다시 나오기 힘들다. 구입 후 단 한 번도 안 입은 옷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적당한 타협으로 구입한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버려지게 된다. 한 해동안 버려지는 옷들도 엄청나게 환경 문제가 된다고 한다.

 백만 원 주고 산 티셔츠를 백번 입기와 5만원 주고 산 티셔츠를 한 번도 안 입기 중에 어떤 것이 더 낭비일까?(물론 아직 백번은 안 입었지만 조만간 백번 찍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쇼핑을 자주 하지만 아끼거나 좋아하는 물건도 없고 중요한 자리에 입고 갈 옷이 없다며

“대체 난 어디다 돈을 쓴 걸까? 내가 지금까지 산 건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명품을 쉽게 막 살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구입에 앞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것을 많이 경험해 보고, 입고, 신중하게 고르며 나름 지금은 스스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안목이 생겼다. 그래서 쇼핑에 실수가 거의 없다. 구입에 앞서 고민하는 것은 카드할부금 한도가 남아 있냐는 점밖에. 카드값을 갚는 12개월이 조금 고달프긴 하지만 그 옷을 사지 않았다고 해도 그 돈이 나에게 남아 있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나에게는 럭셔리한 집과 차는 없지만 매일 쓰는 옷, 가방, 신발, 액세서리들 모두 너무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회사 생활이 괴로워 출근을 하기 싫은 날에도 내 일상을 빛내주는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으로 기꺼이 출근을 즐기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외모도 경쟁력이다. 있어 보이는 것인지 진짜 있는 사람인지는 겉으로 보이는 가치를 통해 평가받기도 한다.


 “교수님 너무 스타일 너무 멋져요. 롤모델이예요. 어떻게 하면 교수님처럼 될 수 있어요?’


 학교 강의를 할 때도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게 외모가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럭셔리하게 꾸미지 않았다면 과연 학생들이 나를 그토록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물론 디자인과 수업이라 예외적일 수 있음)

 내 스타일이 학생들의 눈에는 성공을 가시화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내 수업에 집중하여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면 더 잘 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능력을 평가절하 없이 온전히 학생들 혹은 회사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외모적인 부분이 기인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멋진 스타일만 보고 친해지고 싶다고 접근했던 동료들도 많았다. 물론 나는 사람을 굉장히 가리는 스타일이라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가격표가 능력과 성공의 척도가 되며 경쟁력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실리적인 소비를 할지, 소비하는 것에 과감히 투자할지는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 실제 능력은 없이 명품을 사며 외모를 거짓과 허세로만 가꾸지 않았기에 나는 일말의 부끄러움이 없다. 

 오히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능력을 가시화하는 투자 방법이라 생각한다.

 바쁜 세상 속에서, 타인은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오랫동안 깊이 나를 알아갈 시간이 없다. 우리는 짧고 표면적인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 그러나 능력을 채 보여주기도 전에 편견을 가지고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혼자 고고하게 '내면을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인정받기란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기적이 아닐까?

 다들 깊이 있게 타인의 내면까지 알아갈 정성을 기울일 여유도 그럴 이유도 없다.

 대체로 대부분의 우리 능력은 외모 평가에서 시작되고 끝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면의 유능함을 가시화하여 보여줄 겨를이 없다.


 이것이 명품 쇼핑에 대한 합리화라기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브랜드 디자이너로써 보이지 않는 브랜드와 물건에 담긴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지불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저가, 가성비, 매스 아이템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야말로 상품의 다양화 혹은 양질의 물건이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는 무시당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다.


 명품을 착장 하는 게 이젠 내 개인의 만족감을 떠나서 나의 경쟁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원하는 가치를 위해 소비를 한다. 같은 월급을 받아서 저 친구는 저렇게 돈을 쓰는구나 있는 대로 보면 된다. 겉치레에 무슨 돈을 그렇게 쓰냐고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 돈 안 쓰고 내실을 채우는데 소비하는지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다.(나를 냉정히 평가하는 사람에 대해 나도 냉철하게 관찰하고는 한다. 대체로 타인에게 관심은 없지만.) 

  겉치레로 부족한 내면을 숨기는 게 아니라,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중 하나로 내면과 마찬가지로 겉모습도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가꾸고 있을 뿐이다.

 내면과 외면,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 이건 돈도 들고 상당히 귀찮고 수고로운 일들이다. 단순히 허세력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퇴근 후나 주말에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퇴근 후 매일 요가를 하고 주말마다 골프를 치며, 육식을 금하고, 열심히 야근을 불사하며 맡겨진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글을 쓰며 독서를 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해 나간다. 이 상태에서 작년에는 대학교 강의를 2개나 맡았다.

 이런 나를 보면, 내면 가꾸기를 방치하고 겉치레만 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겉치레하지 말라는 사람이 겉도 속도 텅 빈 무채색의 사람이었다는 게 현실. (겉치레든 내면의 완성이든 엄청난 정성과 돈이 든다.)


 난 시간만큼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만큼, 돈에 있어서는 오늘의 소비를 선택하며 살고 있다. 미래만을 위해 두 가지 모두 현재에 희생만 한다면 내 삶은 너무 무채색으로 재미가 없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시간이든 돈이든 미래를 담보로 지금의 기쁨을 유보하기는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둘 다 미루든 둘 다 안 미루든, 둘 중 하나만 미루든.


P.S.

 명품 소비를 브랜드의 노예라고 하겠지만, 눈으로 아는 명품과 실제 써보는 명품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꼭 명품은 아니지만 "우리는 브랜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속해 소비하는 사람들로서 브랜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집에 나이키 운동화 하나 없는 사람 없다. 

 브랜드 없는 시장표 운동화보다 나이키는 분명 기능적으로 훌륭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상표의 10배 이상의 지불 가치를 지닌 이유를 생각해 보면 '브랜드'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표 운동화와 마찬가지로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는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아 등에서 제조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소비를 전면 거부하고 있지 않다.

 약간의 기능성과 그 브랜드 가치에 10배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당히 합당한 거래라고 이미 인정하고 있다. 

 명품은 그것이 10배가 아니라 100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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