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Aug 20. 2023

2.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


 명품이 자존감 낮은 시람의 허세라는 비평이 많다. 그것을 살 능력(경제력 혹은 자격)이 없으면서 무리하는 것은 잘못된 소비라고 말할 수 있다지만, 그것을 살 능력이나 자격이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를 보면서 그 자격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명품을 구매해도 되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계층이란 도대체 누구일까를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영화 속 주인공 해리스 부인은 런던에서 여러 가정을 돌아다니며 청소 및 가사를 도와주는 가정부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주인집 옷장에서 크리스찬디올 드레스를 처음 보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은 그녀에게 디올 드레스는 살아갈 이유이자 꿈이 되었다. 

 그녀는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어렵게 어렵게 파리로 간다.

 그러나 몽테뉴 디올 메종에 도착한 그녀는 문전 박대를 당하고 만다. 당신 같은 서민이 살 수 있는 옷이 아니라며 매니저로부터 무시를 당하며 부티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는 해리스 부인에게 동화된다. 아니 돈이 있다는데, 그녀의 꿈이라는데 대체 왜 드레스를 보여줄 수도 팔 수도 없다는 것인지 매니저의 편견에 화가 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다면 그 누구도 그녀에게, '가정부 주제에 어디에 입고 간다고. 무슨 명품 드레스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응원하게 된다. 

 그녀가 제발 디올 드레스를 가질 수 있도록.


 자 우리는 어떨까? 

 귀족, 왕족, 신분제도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고 누구나 '크리스찬 디올'을 원한다면 구입할 수 있다.

 지금에 와서, 명품을 사서는 안된다고 잣대를 긋는 건 타인의 편견과 사회적인 시선 말고 또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다행히 럭셔리 매장에서는 고객을 미리 판단하여 구매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서열화하지 않는다. 물론 고객관리를 위한 vip 단계별 리스트가 있긴 하지만 소비자의 구매가능 여부를 매장에서 판단 내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명품을 구입하고 있다. 

 단순히 소비라는 표면적인 상황으로 명품 소유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소비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 타인에게 그 정당성 여부를 평가받는다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명품은 원래 질 좋은 제품을 믿을 수 있는 브랜드 부띠크&디자이너에게 구입하고자 하는 특권 계급층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으로 현대에 와서 비교적 소비의 대중화 물결에 따라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소비 자유의 시대에 와서 오히려 명품구입에 있어 주변 시선이 불편할 때가 꽤 많다. 마치 다시 신분의 계급화와 서열화를 나누듯이.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을 구분하는 것은 요즘 시대에 다시 만들어진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있건 없건, 소비가 내 수입의 1% 이건 100% 이건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원한다면 충분히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볼 수 있다. 

 전 재산 100%와 디올 드레스를 맞바꾼 해리스 부인처럼. 


 저건 영화 주인공이니까 그렇게 산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각자 주인공인 인생이다. 

 어떤 소비는 구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원동력으로 더 많은 것을 도전하고 시작할 수 있게도 한다. 삶을 이어지게 도와주기도 한다.


 11년 전 결혼을 앞두고 웨딩링을 고를 때였다.

 나는 1캐럿 다이아 반지가 아니라 티파니가 갖고 싶었다. 티파니가 주는 웨딩링의 상징성도 좋았고 티파니 패키지의 민트블루 색상도 사랑스러웠다. 종로 귀금속 상가에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 수 있는 돈이지만, 나는 그 돈으로 티파니에 가서 참깨 다이아 웨딩밴드를 구입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티파니 브랜드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돌출된 다이아몬드를 샀다면 매일 낄 수 없었겠지만, 나의 참깨 티파니는 11년째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뽕을 뽑고도 남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 취향에 맞는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물건의 필요(needs)인가 브랜드에 대한 원함(wants)인가?


 브랜드 디자이너로써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한다는 것이 좀 우습긴 하다.

 물건의 용도나 속성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브랜드의 wants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연히 수많은 기업은 필요한 물건이 아닌 갖고 싶은 브랜드와 소장하고 싶은 잇템 (it-item)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생필품이나 일상용품들도 예전에는 필요와 기능이 중요했다. 생필품에 브랜드가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동네 슈퍼에서 아무 비누통과 화장실 변기 솔을 사서 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집 화장실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자주JAJU의 스텐 변기솔이나 무인양품의 심플한 비누통을 구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비 심리가 훨씬 더 복잡하고 세분화되면서 단순히 필요에 따른 기능을 넘어, 갖고 싶은 형태의 상품으로 진화해 오고 있다. 이것이 지나쳐 아름다운 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갖고 싶게는 만들었지만 기능적으로 불편하거나 쓸모없이 만들어지는 상품들도 있다.

 그러나 미적으로 충분하다면 아름다움에서 굳이 기능을 찾아내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많다. 사용성이나 용도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가 기능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기능이 아니라 심미성으로 충분하다는 사례는 반지,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만 생각해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무엇이든 브랜딩이 안되어 있는 것이 없고, 우리는 상품 그 자체 보다 브랜드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 이 소비하고 있다.


 매일 쓰는 생활 용품에 브랜딩이 추가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슈퍼노멀이라는 책에서도 나오듯, 과거 우리 일상에는 브랜드 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생활용품들이 산재되어 있었다. 누가 그 상품을 설계하거나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익명의 제작자 손에서 기능을 중심으로 한 물성 그 자체로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물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편리성과 기능성 위주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그 어떤 제품도 브랜드가 없는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워진 시대다. 현재 명품이 아닌 수많은 매스상품에도 브랜드가 적용되고 있다.

*럭셔리(하이엔드 명품) / 매스티지(준 명품) / 매스(대량생산 일반제품) 

 

 브랜드라는 명칭은 목장 소의 소유자 구분을 표기하기 위한 인두 낙인 (brandr=burn)이 시초이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많은 상품들이 대량생산 되며 저품질의 상품과 구분하기 위해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명품에 있어서도 창업주의 창립 철학과 가치를 담고 독자적인 상품성을 개런티 하는 성격을 담아낸 창업자 이름으로 된 브랜드들이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단순히 제품을 넘어서 창업주 한 사람의 사상과 열정을 브랜드로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유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대량생산이나 원자재의 원가 절감 등으로 타협하지 않는 명품브랜드들이 많다.(가끔 타협하는 명품도 있긴하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못 사는 백이 있다. 당연히 알겠지만 에르메스이다.

 가방 값을 마련하고 가방에 웨이팅을 걸어 몇 년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해도 에르메스 백은 갖기 어렵다.(많은 사람들은 돈과 시간만 있다고 가질 수 있는 줄 알지만 그렇게 가질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가방 값 이상으로 +α를 의류, 잡화, 액세서리 비용으로 더 소비하여 그 브랜드의 애정과 관심을 인증해야 한다. 

 이 고고한 브랜드 철학에 동의하기 힘들다면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에도 이 브랜드 철학에 동의하고 그 상품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구입하기 위해서 노력해보기도 한다.


P.S.

 우리는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그 명품을 가질 자격이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명품을 가질 자격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그런 건 없다.

 소비의 자유시대가 왔다. 

 내가 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면 된다.

 브랜드를 중시하고, 더 좋은 가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지금 시대의 흐름이 그렇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주의로부터 해탈하고 산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브랜드의 시대에 살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자신이 선택한 기준으로 최선의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다.


 나에게 명품 옷은 방패 같은 느낌이다. 

 자신감 없는 상황을 명품으로 포장한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용기내어 하나씩 어려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것에 수없이 도전 할 수 있게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어도 99%는 하지 않는다. 

 그저 비난하기 바쁘다. 

 내 방법이 어떠한 형태였든 이것이 나를 더 나아지게 나아가도록 도와주었다. 다들 자기만의 방패를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그런데 이 조차도 귀찮다고 안하면 할말이 없다.)

 그리고 사실 명품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퇴사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정신력으로만 버텨내기엔 사회 생활이 너무 버겁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타협적인 소비를 지양하고 만든 외모 경쟁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