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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ug 21. 2023

3.명품 소비세대가 어려지고 있다

<애들이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변하고 있다>


 명품 소비가 늘어난 이유는 허세력과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세대들은 명품을 어디서든 접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도 구하기 쉽다.


 내가 대학생일 때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대생에 대한 비난이 엄청나서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20대 여성을 향해 된장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그 시절 소비 기준으로 봤을 때 자판기 커피는 200원, 편의점 캔커피는 500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데 그 10배에 가까운, 심지어 점심 식사보다 비싼 커피를 사 먹는 여대생들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꼭 여대생만이 스타벅스를 즐긴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 스타일로 해석된 캐주얼한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를 받아들이며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하며 즐기고 싶은 많은 트렌드 세터들이 이곳을 찾았다.


 여대 앞에 1호점이 생겼기 때문에 젊은 여성 소비자가 더욱 많았던 것은 사실이긴 하다. 생각보다 소비에서 원인과 결과의 형태는 단순하게 연결되고 있다.

 매장 수가 많아 접하기 쉽거나 내 동선에 있어 가깝다 같은 단순한 원리가 소비에서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요새 MZ 세대들이 즐겨 사용되는 탬버린즈나 논픽션 같은 뷰티 브랜드가 왜 인기가 좋아졌는지 들여다보면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브랜드들이 스타벅스 론칭 때만큼 비난을 받지 않는 이유는 시대에 반하는 가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허용범위를 넘었다.


 이 두 브랜드가 20대에게 급 부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저 그들이 즐기는 놀이터인 카카오톡 선물샵에 입점되어 있어 접근이 쉬웠다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이들의 브랜드 전략이나 여러 가지 마케팅 요소들도 매출에 분명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젊은 세대의 감성을 충족할만한 향기와 브랜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40대가 쓰기에는 기능적으로 솔직히 많이 부족하다.(손등에는 피지선이 없기 때문에 중년에게는 조금 더 유분과 수분이 충분한 제품이 필요하다.)

 이 두 제품은 20대에게는 그럭저럭 손색이 없는 기능을 가졌다. 그들을 타깃으로 기능보다 향과 감성을 포커싱 하어 만들어진 제품이다. 비대면 시대에 친구에게 간편하게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기 꽤 괜찮은 브랜드 중 하나이다.


 때로는 소비 시장에 있어서 엄청난 전략보다는 채널의 확보(그 채널을 이용하는 소비자와의 매칭)가 중요할 수 있다. 해당 브랜드의 전략과는 별개로 플랫폼에 입점되어 20대의 소비루트와 동선이 겹친다는 것으로도 브랜드 이용수가 확연하게 증가할 수 있다.


 다시 스타벅스로 돌아와 그 시절 여대생들이 허영이 있어서라기보다, 새로운 문화나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것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청춘들이 우연히 학교 앞에 오픈한 미국 커피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동선과 소비의 연결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그 소비가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조금 섣부른 판단인 경우가 많다. 미국 커피 브랜드가 학교 앞에 있었을 뿐, 명품 지갑이 카카오 선물 샵에 그저 입점되어 있었을 뿐. 

 단순한 원리로 소비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접근성이 소비의 원인의 대부분인 경우도 많다. 모든 소비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이행하기에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저 구하기 쉽고 근처에 매장이 있다는 접근성이 좋았다는 점이 그 제품과 브랜드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부지런히 오픈런해서 어렵게 구할 수밖에 없는 상품들도 있긴 하다.(반면 럭셔리일수록 접근성과 편리성, 그 반대를 브랜딩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브랜딩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카카오선물하기에는 명품도 입점되어 있다. 과거에는 명품의 가격 공개가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당연히 공홈에 가격이 노출되어 있지 않고 매장에 가서 일일이 직접 물어서 확인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물론 전체 물건을 하나하나 다 물어보기도 어려우니 내가 염두에 두는 제품 몇 가지의 가격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각 나라별 명품가격을 비교할 수도 있고 카카오 선물샵에서 쉽게 가격을 확인하여 구입하거나 지인에게 선물을 할 수도 있다.


 MZ세대에게 명품 구입이 늘어난 이유는 눈이 높아지고 소비력이 확대되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시하고 허영이 가득 찼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는 너무 억울하다. 물론 눈이 높아지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시하고 물건과 정보가 넘쳐나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전보다 접근성이 쉬워지고 다양한 채널에서 명품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영향도 있다. 단순히 경제력의 상중하의 차이를 떠나 어디서든 명품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치 여대 앞에 스타벅스가 오픈하여 우연히 쉽게 방문할 수 있었던 것처럼, 플랫폼이 먼저 마련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에는 명품을 사기 위해서는 백화점 명품관, 면세점, 명품부티크(청담 명품거리)에 직접 가야 했다. 백화점 명품매장에 가기 위해 허접하게 입고 가면 무시당할까 봐 쉽게 매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돈이 있어도 쉽게 매장의 문턱을 넘는 것이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집에서 츄리닝을 입고 노트북을 열어서 클릭 한 번으로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20대 때 처음 명품을 보러 갔을 때, 매장 직원이 나를 얼마나 하찮게 생각할지 긴장하며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명품 매장을 들어간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아마 내가 처음 명품을 사러 온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메고 간 가방과 내 옷차림을 훑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를 매장 직원에게 노출하면서 어렵게 돈 모아 명품백 하나 사러 온 가여운 아이는 명품관 직원들이 참으로 어렵고 명품 매장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0대가 되어 D명품 매장에 갔다. 그 매장은 처음 간 터라 그저 둘러보고 싶었는데, 내 스타일을 한눈에 파악한 뒤 직원 3명의 수발을 받으며 고가의 옷과 가방을 착용해 봤다. 살마음은 없었고 그냥 들린 매장인데 극진한 대접을 받으니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RTW(의류_Ready to Wear)는 줄을 안 서도 되어 웨이팅도 없이 바로 입장했다.


 20대 때 내가 없었던 건 명품 스타일의 착장이 아니라, 명품 매장에 들어가는 용기와 명품을 대하는 에티튜드가 없었던 게 아닐까? 매장에 들어갈 때 나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내 취향도 몰랐고, 물건을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가격을 어떻게 확인해 봐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구입하면서도 당당하지 못했다. 반면 지금은 사지 않더라도 매장에 가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태도와 여유가 생겼다.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해당 브랜드를 애정하는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은 제품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이런 당당함이 20대에 생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명품 매장의 문턱이 높게만 느껴지고 자주 가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의 20대만큼 쉽게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적인 뒷받침이 안 됐던 상황이었다. 신입사원으로 대기업에 입사했으니 돈이 없진 않았는데 선뜻 명품매장으로 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내가 20대일 때도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인터넷 채널들이 있었다면 과연 안 살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가 없다.


 지금의 20대가 허영이 아니라, 그저 예전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명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굳이 명품매장에 직접 가서 직원에게 나를 노출하기 않고도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우선이고, 구입은 그 뒤에 따라오는 소비의 흐름은 생각보다 많다. 소비자는 자기도 모르게 자주 접하고 접근이 쉬우면 지갑이 열린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합리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시대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선택과 실천을 하고 있을 뿐이다. 

 도덕적이고 가치 있는 소비를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생활을 할 때도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 아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의 선택이라도 도덕적이고 지속가능한 윤리적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활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솔직히 불가능한다. 또한 이전 세대들이 어떤 것에도 윤리적인 소비에 대해 관심 없는 것과도 상당히 상반된 선택이다.

 요즘 친구들은 윤리적인 소비를 찾아 세상과 공존을 중시하기도 하고, 명품을 소비하며 자기만족과 욕망에 집중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인간의 삶은 모순이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변화된 세상과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 좋겠다.



 P.S.

 대학 강의를 하며 학생들이 명품을 소유한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 용품에서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것도 느꼈다.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브랜드, 북극곰을 돕는 브랜드처럼 착한 기업, 착한 브랜드의 사용은 이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문화였다. 학생들을 통해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세상을 돕는 수많은 브랜드를 접했다.

 의식적으로 공존을 생각하고 동시에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문화는 그 단면을 보고 비난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수많은 부분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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