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7.놀면서도 모든 것을 끝마치게 하는 마감효과

<놀고 싶을 때는 셀프 숙제를 줘라>

by 전인미D

놀면서도 할거 다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규칙이 필요하다.

놀이 같은 유흥은 즉각 시작하지 않는다. 유흥은 무조건 미션 수행의 보상으로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흥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이다.

미션들은 일단 미루고 싶은 것들이다.

둘 사이의 순서를 조정하는 것으로 일단 성공의 조짐을 감지할 수 있다.


논다고 생각하면 고민 없이 당장 할 수 있다. 넷플릭스 보기, 술 마시기, 밥/간식 먹기 등은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인다. 오히려 그만해야겠다고 자신을 절제해야 할 만큼 시작 장벽이 낮고 중독성 강한 일들이다.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려우므로 중요한 일들은 이 유흥 직전으로 세팅해야 한다.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 그냥 노트북을 열고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절대 안 된다.

넷플릭스를 즐기기 위해 나는 미션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삶을 즐기기 위해 일터에서 열심히 돈을 벌듯, 공짜로 놀 수는 없다. 즐기는 시간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한 뒤에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보고 싶을 때 셀프 숙제를 내준다. 평소에 하기 싫었거나 미루던 것일수록 효과가 좋다.

지금 공부하는 명리학을 정리해서 블로그 포스팅을 올려야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고 미션을 내린다.

눈으로 공부하긴 쉽지만 수업을 딕테이션 해서 핵심을 정리하고 부족한 자료는 찾아서 보완하여 한 편의 포스팅을 쓰기는 시간도 걸리고 번거롭다. 자꾸 미루게 된다. 그러나 이 포스팅 한편을 업로드를 해야 드디어 달콤한 넷플릭스 타임을 즐길 수 있으므로 미룰 수가 없다.

넷플릭스 한편을 위한 코인을 모으듯 내게 내린 미션을 완수해야 1코인을 획득하여 놀 수가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 연재작의 최신 편이 오늘 업데이트 됐다면 정말 당장이라도 넷플릭스를 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미션을 수행하기 전까지 접속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아주 빠르고 강도 높게 집중하여 내게 내린 미션을 수행한다. 하기 싫어서 느릿느릿하던 때와 다르다. 엄청난 속도로 셀프 숙제를 마무리한 뒤 드디어 즐거운 넷플릭스 시청을 즐길 수 있다.


이 포상을 포함한 마감 효과는 귀찮은 일상의 숙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놀고 싶을 때는 꼭 숙제를 내리고 완수해야 상을 받는 유흥타임으로 연결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대책 없이 놀다가는 하루이틀, 인생 모조리 그냥 놀다가 끝난다.


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초집중해서 미션들을 빠르게 끝내니 놀이와 숙제 모두를 마칠 수 있다.

이것이 놀면서 많은 것들을 끝마치게 하는 뻔~한 구조다.

이 시스템을 아주 잘게 쪼개 정말 사소한 일상에서도 모두 적용하고 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

지금 읽던 책의 한 챕터를 다 읽고 가겠다고 결심한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점점 속도가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집중해서 읽은 뒤에야 화장실을 가는 식이다.


인터넷 쇼핑을 하고 싶다?

지금 보고 있던 인강을 다 봐야 가능하다고 마음속에 숙제를 내린다. 쇼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의를 열심히 2배속으로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주말 아침,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

고양이 화장실을 먼저 치워야 달콤한 커피 브레이크를 즐길 수 있다. 커피 한잔도 쉽게 마실 수 없다. 한잔의 커피를 위해 내게 주어진 미션을 컴플릿해야 하는 일상...좀 피곤한 삶이긴 해도, 돌아보면 생활의 만족도는 높다.


배달음식이 도착했다?

지금 하던 숙제가 끝나야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속도가 얼마나 빠를까? 초인적인 집중력이 생길 때다.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하기 싫은 미션을 삽입하면 안 할 수가 없다. 이걸 마쳐야 나는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배달시켜 놓고 요가하기. 수련이 끝나야 식사가 가능하다.

배달시켜 놓고 샤워하기. 미루다 보면 잠 자기 직전에야 억지로 하게 된다. 하지만 배달주문과 동시에 샤워를 결심하면 할까 말까 미루는 감정적 소모는 없다. 일단 마쳐야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욕망 앞에 미루던 숙제를 세트로 만들면 '뭐뭐 해야 하는데...' 라는 미루는 마음의 짐이 없어진다.

재미와 숙제가 세트로 이어지면 생각보다 빠르게 집중해서 미션을 마칠 수 있고, 할 일들에 몰입하면서도 끝나고 얻을 보상 때문에 감정 소모 없이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떤 미션을 수행할 때보다, 내내 미루면서 해야 하는데...라는 중압감으로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허비한다. 숙제를 미루고 유흥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일상의 리듬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 큰 어른이니 이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

1개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는 딱 1개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고...

사회 시스템에서는 일한 만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즐기는 선순환을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라서 해야 할 미션들을 쌓아놓고 미루기만 한다.


그 작은 일상의 미션들은 지금 당장은 몰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 삶의 수준을 상당히 높이거나 내리는데 기여하는 일들이다.

삶을 모아보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고 가치 있는 방향성을 형성하는 것이, 일상의 작은 숙제의 이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사소한 자기와의 미션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삶의 수준과 만족도는 점점 떨어진다.


원래 만족이라는 건 여한 없이 놀기만 해서는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할 일을 수행해 나가며 삶의 밀도를 높이고 당장의 즐거움이 아닌 앞으로를 위해 조금 참고 투자할 때 생기는 보람과 결과가 만족이다.

하루 종일 놀았는데 만족스러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인간에게 목적 없는 유희는 허무감만 가중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즉각 즐거운 일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일일지 모른다.

내일을 위해 무조건 오늘은 희생하는 시간으로 두라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숙제와 유흥이 조화로울 때 완성도 있게 흘러간다.

즐거운 건 언제든 시작하기 쉽다. 그리고 미션은 가벼운 마음으로는 도저히 시작이 엄두가 안 날 수도 있다. 막상 시작하면 별거 아닌 일도 숙제라는 이름의 부담감은 자꾸 미루게 만든다. 그래서 하루 종일 놀았는데, 마음이 느긋하고 즐거운 게 아니라 미뤄둔 미션 때문에 불편하기만 하다.


어쨌든 가뿐하게 유흥타임을 보내기 위해서 우리는 숙제를 이미 끝마친 상태여야 한다.

1시간 뒤 놀기 위해서는 이걸 마무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집중력으로 오히려 그 보다 더 빨리 숙제가 끝나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 당근을 세팅해 놓으면 많은 것들을 의지박약으로 포기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유희적 동물이라 놀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밸런스가 중요하다. 일에만 미쳐서 살다 보면 번아웃에 빠지기 마련이다. 꼭 중요하고 힘든 미션 뒤에 스스로에게 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유흥에 대한 욕망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미션을 마친 보상으로 즐기자고 결정하면서 중도포기 없이 더 확실하고 퀼리티 좋게 해올 수 있었다.

이걸 안 끝내면 그걸 못해라는 절박한 마음은 안일해지는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

숙제 없이는 놀이도 없다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고 보상을 주는 과정을 반복하며 놀기 전에는 항상 고민한다. 자 어떤 귀찮고 어려운 걸 해야 저걸 하고 놀 수 있을까?

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할수록 그전에 어려운 미션을 잘 수행하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놀려면 이제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다. 피하면? 노는 보상도 없던 일이 되니까....


주말아침 늦잠을 자고 싶다. 하루 종일 뒹굴대고 싶다. 혹은 오후에 쇼핑을 가야 한다.

그렇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골프연습장에 간다. 이 골프 연습을 마쳐야 뒹굴거림도 허락되고 쇼핑도 할 수 있다. 매주 주말 골프 연습장에 가는 걸 정말 즐거워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재밌었던 적은 거의 없다.

의무감과 성실함으로 연습하러 나가니 남들 눈에는 재밌어서 하는 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밌어서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재미로 하는 일은 언젠가 질리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여러 가지를 지속하는 이유는 재미와 무관하므로 오히려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게 최고다. 이걸 해야 나머지 하나는 내 맘대로 놀 수 있다고 생각하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6. 더 이상 슬픈 하객패션은 없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