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좋아야 특별한 날도 좋다>
옷이 이렇게 많은데 입을 게 없다는 건 진부하게도 흔한 말이다. 전 국민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늘 이런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은 옷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입을 게 없을까.
한 사람의 옷장에 안 입는 옷은 평균 57벌이라고 한다. 행거 위아래 옷이 가득 걸려 있어도 반 이상은 전혀 안 입는 옷들이다.
이렇게 되면 중요한 자리에는 입을 게 없게 되는 거다.
안 입는 옷 57벌 + 평소에 자주 입는 옷 20벌 정도라 가정했을 때 20벌이 남아있지만 왜 입을 게 없을까?
그건 평소에 너무 편리와 가격만 고려해 의류를 모았다는 것이다.
옷에 조금 금액을 투자 해야하는 이유는 원단때문인데 너무 가성비인 옷들은 한두번만 입고 세탁해도 후줄근해 보인다. 가성비의 굴레는 기존의 옷을 처박아두고 또 다시 새로운 옷을 소비하게 만든다. 몇번 입지 못한채 서랍에 보관된 옷이 수두룩해지는 출발이된다.
특별한 날만 특별하게 투자해서 꾸미려는 기준에서 이 문제는 시작된다.
물론 나도 중요한 날은 평소보다 더욱 신경 써서 꾸민다.
하지만 평소에도 특별한 날이라 생각하며 아웃핏을 관리하며 산다. 언제 어떤 일이 갑자기 생겨도 굴욕 없이 갈 수 있는 모습이다.
나를 잘 모르는 회사 동료들이 오랜만에 지나가며 “오늘 어디 좋은데 가요?”라고 묻곤 한다.
“아니요. 전 오늘 칼퇴 후 집에 갑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니며 나의 스타일 레벨은 늘 이 정도다. 늘 최상으로 연출하고 출근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까운 동료들은 특별한 일이 있냐 어쩌냐 묻지도 않는다. 그냥 나에겐 이 정도 모습이 평소 상태일 뿐이니까.
매일 빈틈없이 꾸미고 다니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육아나 가사에 들이는 시간이 없으므로 대부분 계획대로 내 시간을 쓸 자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잘 꾸며진 모습은 평소 게을러서는 절대 가질 수 없다.
예쁘게 꾸민 옷과 신발은 몸에 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아침에 옷을 입는 것에 많은 시간이 들고, 그에 맞는 메이크업에도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몸은 미리미리 운동으로 잘 관리되어 있어야 한다.
겉치레에 집착하는 걸로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지런함이 수반되어 있다. 이 노력들이 폄하된 채 욕만 먹는 건 꽤 억울하다.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서 스타일을 매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외부활동이나 약속 없는 사람은 쇼핑을 안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 쇼핑은 나를 위해서라 사회적 활동과 무관하다. 사실 집순이라 집과 회사 외에 달리 갈 곳이 없다.
좋은 옷으로 나를 최상으로 연출하는 건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매일 즐겁게 살기 위해서 선택했다.
관리는 행복한 하루를 위한 작은 노력이라 생각한다.
마치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듯 스타일을 만들며 즐거운 기분을 관리한다. 운동을 할 때는 상당히 귀찮지만 끝나고 신체적인 이득을 얻듯, 스타일을 꾸미는 것도 귀찮지만 이후 감정의 만족과 충만함을 알기 때문이다.
완성된 스타일은 즐겁지만 그걸 만드는 과정은 조금 귀찮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것은 늘 쉽고 거저 얻는 게 없다.
나를 완성하는 만족을 알기 때문 과정의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이다. 대충 차려입은 날은 하루 종일 마음도 우울하고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다. 작은 노력으로 하루가 기쁠 수 있는데 그걸 스킵한 뒤 종일 우울할 순 없지 않은가.
다시 돌아와 평소에 불편하고 귀찮은 옷에 익숙해져야 한다.
편한 티셔츠에 운동화만 신던 사람은 같은 스타일이 백개가 있어도 특별한 날에 입을 옷이 없다.
중요한 날 안 입던 옷을 입으면 또 그렇게 어색하기도 하다. 게다가 그렇게 특별한 날을 위해 투자한 옷은 딱 한 번만 입고 마니 오히려 손해다. 비싸게 산 그 옷을 매일 즐겨 입는 것이 이익이다.
늘 차림이 편한 가성비만 추구해서는 나만의 최적의 스타일을 찾아내기 힘들다.
최적의 스타일을 향한 노력은 의류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옷들을 소화하기 위해 신체 관리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형이 조금만 달라져도 자유자재로 스타일을 연출하기 어렵다.
늘 자기 몸을 검열하고 일상 속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편한 옷을 추구하는 것의 맹점은 몸까지 편하게 따라간다는 것이다.
날씬하게 건강한 몸과 바른 자세가 좋은 스타일을 완성한다.
평소에 불편하지만 나를 돋보일 수 있는 정갈한 스타일을 지향하면 결혼식이든 동창회든 자녀학교 참관 수업이든 옷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미리 최적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으면 특별한 날도 당황할 일이 없다.
소장품 중에 가장 어울리는걸 하나 선택해 착장 하면 그만일 뿐. 또 그게 늘 입던 스타일이니 최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내 몸에 맞춰 수선도 마친 옷이라 핏이 완벽하다.
급하게 아무 옷이나 구입하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한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을 옷이 되지 않는다.
하객패션으로 급하게 구입한 옷들은 두 번 다시 옷장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혼식용으로 샀으니 당연히 가격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구입하느라 100%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 스타일에 안 어울릴 수 있다. 급한 쇼핑은 늘 만족을 동반하기 어렵다.
돈과 시간이 아까운 선택이 되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겉치레를 최소화한 스티브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람은 심플하고 같은 스타일만 추구한다. 그러나 그건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외관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게 다니면 실력 없고 자기 관리가 안된 사람이 될 뿐이다.
그들처럼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16시간씩 일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귀찮아서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스티브잡스처럼 본질을 봐달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스타일 대신 자신이 가진 본질적 가치가 뭔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모르겠는데 게으름을 빙자하며 겉치레를 비난하고 있다.
워라밸을 꿈꾸는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관리도 능력에 포함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외관을 초월하려면 남과 다른 경쟁력과 실력 밖에 없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에서 16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과 동일시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잘 관리된 모습의 덕을 보는 건 나 자신이다. 이것도 노력과 투자라 아주 미미하지만 실력의 범주에 속한다.
외모의 덕을 부인하고 외면한다면 평생 일상의 사소한 혜택을 모른 채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매일 나를 꾸미는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의 출발점이다. 우울증이 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청결하게 하고 가꾸는 것에 의욕을 잃게 된다.
나를 잘 가꿀 열정과 에너지는 건강한 마음과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퇴근후 집에 돌아와 잠을 잘 때도 내가 선택한 귀여운 잠옷을 입고 꿈나라로 간다.
이불 속에서도 기분이 좋다.
대충 아무 옷이나 입어도 잠을 잘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순간을 느끼긴 어려울 수 있다.
좋은 스타일은 곧 내 정신적인 안녕을 위한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