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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쓰고 싶은 날보다 쓰지 못하는 날이 많다

by 김현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에

조용히 스며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 하면

손끝이 멈춰 버리는 날이 더 많다.


예전의 나는

그런 나를 자주 오해했다.

“나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인가?”

“의지가 부족한 걸까?”

쓰지 못한 하루가 이어지면

내 능력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스스로 다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쓰고 싶은 날보다

쓰지 못하는 날이 많은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의 자리가 흔들리면

문장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글은 마음 위에 쓰이는 것이지

압박 위에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 빈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쓰지 못한 날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마음이 조금 더 쉬어야 하는 날이었음을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그 인정이 생기자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문장은

책상이 정리되어 있을 때보다

마음이 정리되어 있을 때

더 선명하게 나온다.

마음을 돌보지 않은 채

억지로 쓰려 하면

문장은 힘을 잃고,

내 안의 말들도

마구 엉켜버린다.

그러니 쓰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면

그건 그날의 나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휴식이 필요했다는 신호다.


어떤 날은

감정이 너무 복잡해

무엇부터 써야 할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마음 한가운데 걸려 있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의 나는

단 한 줄만 적어 본다.

“오늘은 그냥 마음이 무거웠다.”

그 한 줄만으로도

문장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쓰고 싶은 날보다

쓰지 못하는 날이 많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모든 날을 완벽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한 날에도

나를 탓하지 않는 마음이다.


글쓰기는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시간을 차근차근 쌓아 갈 때

쓰지 못했던 날들마저

나를 이해하는 조용한 흔적이 된다.


오늘도 글을 쓰지 못했다면

그저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괜찮아. 내일은 조금 더 가벼울 거야.”

그 다정한 한마디만으로도

문장은 다시

나에게 조금씩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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