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생각이 흘러갈 때가 있다.
처음엔 그 흐름이 낯설어서
“왜 여기에 왔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춰 생각해 보면
그곳이 지금의 마음이 가장 바라보던 장소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
나는 종종
하루를 기록하다 뜬금없이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순간,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문장 앞에서는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억은 나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작게 말하는 듯했다.
또 어떤 날은
글을 쓰려 했던 주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가 보였다.
처음에는
오늘의 불편함을 적고 있었는데
문장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감사’의 이야기로 옮겨져 있거나,
현실의 걱정을 쓰다가
끝에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결론을 스스로에게 건네고 있었다.
글은 종종
내가 의도한 곳이 아닌
내 마음이 필요한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때 알았다.
글은 내가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글이 나를 이끌어 주는 순간이 더 많다는 것을.
문장은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이끄는 힘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온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마음의 방향을
글이 먼저 읽고
그곳으로 살며시 데려가는 것이다.
어떤 글은
나를 위로의 자리로 데려갔다.
적다 보니
“그때 정말 힘들었구나”
하고 예전의 나에게 말을 건네게 되었고,
그 말 하나로
그날의 상처가
조금은 다른 온도로 느껴졌다.
또 어떤 글은
사소한 장면에서 시작되었지만
삶의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길을 걷다 본 나뭇잎 하나가
내 마음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 되었고,
작은 빗방울 소리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선택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글은 때때로
삶의 아주 깊은 지점까지
나를 조용히 데려다 놓았다.
글은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장소를 보여 줄 뿐 아니라
내가 잊고 있던 나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 지점에서 멈춰 있었구나.”
“사실은 이걸 바라보고 있었구나.”
문장 속에서 만나는 새로운 나는
때로 놀라웠고,
때로는 따뜻했고,
때로는 나를 다시 걷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글쓰기를 방향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이 가진 진짜 힘은
나를 예상 밖의 장소로 데려가는 능력에 있다.
내가 찾아가지 못한 곳,
내가 외면했던 곳,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곳으로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이끌어 준다.
글이 데려간 그곳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가 쌓이면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좋아지는 방향으로,
더 단단해지는 결로.
오늘도 문장을 적어 본다면
글은 어쩌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장소로
조용히 안내할지도 모른다.
그 예상 밖의 자리에서
당신 마음이 어떤 말을 건네올지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