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미뤘습니다

프롤로그 — 나를 기다리는 연습

by 김현아

세상은 늘 말한다.

빨리 결정하고, 더 멀리 가고, 쉬지 말라고.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누가 정해준 속도에 맞춰 살다가

정작 내 마음의 시간표는 늘 뒤처져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조금 느리게 걷기로 했다.

조금 늦게 대답하고, 조금 더 미루기로.

누군가는 그걸 게으름이라 부를지 몰라도

나에겐 살아남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는 자꾸만 멈추고 싶어졌다.

멈추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멈추지 않으면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미뤘다.

해야 할 일을, 감당해야 할 감정을,

조금만 뒤로 밀어두었다.

그 사이 아주 작게 들려오는 내 마음의 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묻는다.

“그렇게 미루면, 결국 아무 일도 못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미루는 건 멈춤이 아니라 회복이에요.

잠시 쉬어야 비로소 다시 걸을 수 있으니까.

내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속도를 이해해주지 않으니까.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조금 느린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늘 주변을 먼저 챙기고, 나를 나중으로 미루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에 ‘나’라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전에

먼저 나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그제야 내 안의 마음이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조금 늦게 와도 돼.
그래도 넌 잘 가고 있어.”




이 책은 그 느린 걸음의 기록이다.

불안과 후회,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

누군가에겐 너무 느려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내 삶의 가장 알맞은 속도’였다.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미뤘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조금 더 단단한 나로 서기 위해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잠시 멈출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세상보다 느려도 괜찮다.
당신의 마음이 따라올 때까지,
우리는 잠시 나를 미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