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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 Jul 24. 2021

'몸 팔 여자 아님'을 먼저 보는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몸을 팔아 대출비를 갚지는 않을 사업가'임을 말해줘야 하는 이상한 심사

사무실 보증금 때문에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대출 신청을 했다.

서류 합격 전화가 왔다. 현장심사를 나갈터이니 관련된 서류를 준비해 두라고 하였다.

일주일 정도 후에 현장심사를 나왔다. 


누군지 통성명도 안 된 상태로 나에 관한 모든 서류와 카드내역서(?- 그들은 나의 카드내역까지 본다고 말했다)까지 들고 나온 남자 두 명과 사무 공간을 둘러보고 카페에 가서 심사를 받았다.

본격적인 심사가 진행되기 전에 대출을 받고 나서 갚을 능력이 되는지를 심사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떤 여자 사업가는 나중에 대출비를 갚을 능력이 안되어서 몸을 팔고 있다고 했다. 

순간 무슨 말인지 귀를 의심했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겼는데 내 앞에 앉은 중년의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현장 심사자는 어떻게 그 여성 사업가가 몸을 팔고 있는지 알았으며, 왜 이 사실을 알고도 적정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질문이 생겼다. 

대화에 뜬금없이 등장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여성 사업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 심사자에게 '몸을 팔고 있다'라는 것을 들킨 걸까?!

 

나는 내가 '몸을 팔지 않고도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간힘을 써 가며 설득을 했다. 

묘하게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데 가면 갈수록 내가 몸을 팔지 않을 거라고 해명해야 되는 기분이 들어서 참 치욕스러웠다. 


그렇게 심사가 진행되더니, 갑자기 내가 진행하는 사업이 정부지원 사업이 대부분인데 고정 수입이 없어서 어떻게 대출을 해줘야 할지가 의문이라고 했다. 요즘 유튜버가 대세이니, 유튜브를 하면 돈을 꽤 번다고 했다. 

거기서 또 질문이 생겼다. 유튜브는 그냥 되나? 그것도 초기 자금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난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뒤에도 여러 가지 사업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오고 갔다. 

대출을 해주어야 하니 날카로운 질문은 당연하고 그 덕분에 사업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좋은 점도 분명 있었다. 


앞의 심사에 적절한(?) 질문에 대한 변명들이 중간중간 쏟아져 나왔다. 주민등록상 뭐가 안 나와서, 가족이 없는 것 같아서, 예술계 종사자라서... 등등 

결국 나는, 나는 비록 약자 입장이지만. 

친정이 있고, 시댁이 있으며, 서류로는 절대 증명 불가능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아주 쟁쟁한(가령 옥스포드, 아이비리그를 졸업 해 30대에 벌써 대기업 임원) 가족들이 있는 사람임을 어쩔 수 없이 구구절절 나열했다. 내 값어치는 어느 덧 친정과 시댁식구들,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으로 가파르게 수직상승하고 있었다. 

심사자들의 말투와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류에 그런 부분들을 안 써줘서 몰랐다"가 그들의 최종 변이었다. 대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게 '몸 팔지 않을 여자'로 판명 되는 시간을 갖고 심사는 끝났다. 


그런데 참. 심사를 받고 나오는데 눈물이 계속 줄줄 흘러서 결국 대출 신청을 철회했다. 

"담당자님, 저는 이 대출신청을 철회하고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대출을 받지 않겠습니다"

현장 심사 과정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갔는지 내막을 모르는 담당자는 조심스레 왜 그러냐고 물었다. 

"기 단체에서 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많은 사업을 진행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철회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눈물과 콧물이 연거푸 넘어갔다. 


나는 어떻게든 필요 자금을 혼자 마련하고 사업자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승부를 보려다가 결국 배우자, 친정, 시댁 등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고, 온 가족이 깊은 분노와 화남에 빠져들며 당장에 필요한 몇 천은 바로바로 이체를 해주어서 급한 대로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가 무슨 잘못이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어떻게든 상황이 안 좋은 자영업자들을 도와주려는 것인데. 


해서 나는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대출 사업부에 바란다.


1. 모든 서울형 마이크로크래딧 현장심사는 녹음되기를 바란다.    

만남 과정부터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하는 과정까지 정확하고 철저하게.  급한 마음에 대출을 신청하는 사업자들은 '몸을 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며 치욕스럽게 형언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심사자가 내뱉는 아무 말 대잔치 상황을 웃어넘기고 참아야 할 때도 있는 '그 상황속의 약자'라는 사실을 인지해주기 바란다. 


2. 대출비를 어떻게 갚고 있는지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솔직히 나는 '몸을 팔지 않을 능력이 있음'을 말하느라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돈 없음'의 설움을 눌러 버리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몸을 팔아 대출금을 갚던, 손톱을 뜯어 대출금을 갚던, 눈알을 뽑아 대출금을 갚던 그건 심사자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심사자는 대출 신청자의 경제적 능력을 간파하러 나오는 것이지 윤리 도덕성을 간파하러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심사자들은 무슨 권리로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건가?

나는 생전 첨 보는 남자 두 명 앞에서 두 손을 벌벌 떨며 애써 침착하며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상황을 한 시간 가까이 겪어냈지만, 결국은 그들이 뭐하는 사람들(직위, 직종, 직책 등)인지,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심사과정이 끝이 났다. 나는 내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해 대출심사를 받는 사람일지언정 그들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4. (주제넘게 바래본다) 심사자들이 더운데 너무 힘들게 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하루 종일 무더위에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어 온 사람들의 심신이 그렇게 긍정적이고 좋을 리가 없잖은가. 보다 이성적이고 정확해야 하는 대출심사과정이니만큼 심사자들이 심사를 진행할 수 있는 컨디션으로 현장에 나와주기를 바란다. 


정부의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도 사람을 위해 하는 사업일 것이라 믿는다.


절차와 과정 가운데 무엇보다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심사는 냉정하되 사람은 다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미 해당 사업으로 혜택을 본 사업자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혜택을 받은 이들이 기업의 가치를 실현하고 이익을 추구하여 언젠가는 다른 이의 아픈 손도 잡아 줄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그 '몸을 팔아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여성 사업가'분이, 만약 심사자의 껌 씹어 뱉는듯한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그렇다면 더욱더 하루빨리 '몸을 팔지 않고, 사업 수익으로 대출을 갚아 나가는 여성 사업가'로 거듭나시기를 오늘 밤 간절히 기도해본다. 


당장 사업자금이 필요해 열심히 노력 중이신 많은 사업가분들과 그들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지원 단체들, 분명 어디선가 사업 가능성을 보고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실 심사자 분들께도.


나는 모두의 하루가, 물론 통장은 헛헛하더라도 마음만큼은 헛헛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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