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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Jan 29. 2020

실패는 기회 - 해외취업 도전

미국 잔류에 실패한 지 7년이 지났다. 그건 실패였을까.

미국 인턴십 비자가 종료되고 미국에 잔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크게 좌절했다. 아마 스무해 남짓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매일 방 한 구석에 쳐박혀 내 인생은 실패한거야 하고 수개월을 보냈다.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피드에 올라오는 사진, 영상, 글, 어울렸던 현지 친구들. 한동안 친구들이 올리는 사진을 보기만해도 가슴이 찢어졌다. 매일 미국에서 살던 곳의 동네 버스를 타고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로 걷는 꿈을 꾸었다. 


왜 저들은 성공했는데 나는 실패했는가.
그 때 나는 미국에 돌아가지 못한 것을
'실패'했다고 느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미국이 안되면 다른 곳에라도 가자. 라는 생각으로 해외취업에 도전했다. 비자 조건이 비교적 용이한 말레이시아에서 최종 오퍼를 받아 바로 이주했다.


악착같이 일했다. 광고 세일즈를 하면서 '돈에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광고주로부터 얻는 한 푼 한 푼에 매달렸다. 그렇게 1년 반동안 3번의 분기에 50명이 넘는 직원 중 APAC 전체 1위를 했다. 매 분기마다 타겟이 3배씩 높아져도 모든 분기를 100% 이상으로 채웠다. 


당시에는 벤더사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무리 일해도 '하청업체' 소속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본청에 비행기를 타고 6~7시간을 날아 출장을 가도, 본청 직원은 벤더사에 파견되어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본사직원이 올 때까지 인사하러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고객사 미팅을 위한 회의실조차 잡아주지 않아 식당 한켠에서 고객사 미팅을 했다. 억울하고 분했다. 이곳에서 아무리 성과를 잘 내더라도 소속에 따라 차별당하겠구나. 그 본청에 채용이 되더라도 소속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그들과 일하고싶지 않았다.


그다음 목표는 쌓아올린 성과를 바탕으로 이직하는 것.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KL 생활


이직을 하고, 영업이 아닌 솔루션, 컨설팅사로 옮기게 되었다. 매일 세일즈, 파이프라인, 돈과 숫자에 연연하던 영업팀에서 솔루션팀으로의 이동은 아주 큰 변화였다. 실수를 줄이고 완벽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 업무량은 현저히 줄었고, 치열하고 빠르게가 아닌, 꼼꼼하고 세심하게 일해야했다. 


어떻게 하면 솔루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솔루션을 전달하고 고객 평가에서 Customer Appreciation을 받을 수 있을까. 업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현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내야했다. 모수를 넓혀 솔루션을 위한 솔루션을 찾아내려면 APAC 전체의 데이터를 보고 Insight를 찾아내야했다. 그렇게 Data Analysis를 혼자서 배우기 시작했다.


엑셀은 SUM 함수밖에 몰랐지만, 하나둘 함수를 익히고 피봇테이블을 적용하고, APAC 전체 성과 리포팅을 자동화하기 시작했다. 업무량이 줄어 남는 시간에 혼자 리포팅을 배웠다. 매크로까지는 배우지 못했지만, 어떤 숫자를 보고 어떤 Insight를 찾아야하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컨설팅사에서 일한지 1년이 지나갈때 즈음, 또다른 챌린지가 필요했다.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올랐던 트윈픽스. 지금은 FiDi의 스카이라인이 많이 바뀌었을거다.


말레이시아 두 회사에서 일하면서 마케팅과 컨설팅 두 분야를 접목해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정비했다. 처음 해외취업에 도전할때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에서 면접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해보고, 면접 과정에서 고사를 해보기도 하고, 지원과 면접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다.


다섯차례 1:1 면접을 봤던 회사에 3개월간의 면접과정을 거쳐 최종 오퍼를 받았다. 하청업체에서 컨설팅사의 계약직원을 거쳐 뉴욕에 본사를 둔 직원 규모 1600명의 회사에 채용이 되었다. 근무조건이나 급여 복지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로의 이동을 위한 리로케이션 지원까지, 그야말로 출세했다 싶었다.


그렇게 이직한 지금의 회사에서도 반년 마크를 찍었다. 그러는 동안 나이 앞자리는 2에서 3으로, 커리어 개발에서 생각해야하는 목표와 지향점도 바뀌었다.


지금의 내가 미국 잔류에 대해 돌아보면, 실패가 아닌 기회였다. 악착같이 버텨냈던 시간이 오히려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에 남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기회와 성취에도 감사하다. 


앞으로의 커리어에서도, 인생에서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다만 실패를 '실패'로 부르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를 기회로 삼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언제나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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