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을 한 듯한 순간
현대적인 프랑크푸르트의 모습이 독일의 전부라고 착각할 우리를 위해, 실버 부부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해 주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들을 둘러보는 1박 2일 여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오래 머무르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유럽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배려였다. 이른 아침, 우리는 실버 부부의 차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그 유명한 아우토반을 달리게 된 것이다. 속도 제한이 없는 고속도로. 네 명이 꽉 찬 차는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유려하게 뻗은 도로를 질주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 동안,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콜마르의 숙소와 리크위르에서의 오후였다. 흐린 날씨 속에서 방문했던 프라이부르크는 멋진 전망대에서 훌륭한 풍경을 선사했지만, 다른 유럽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콜마르에서의 숙소는 특별했다. 실버 부부는 우리를 위해 독특한 곳을 예약해 두었는데, 바로 콜마르의 오래된 주택 옥탑방이었다.
두 개의 방이 마련된 옥탑방은 우리 네 명이 지내기에 충분히 넓고 편리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까지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오래된 건물의 역사가 발밑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다행히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기에 간단한 짐만 챙겨서 큰 어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었지만, 만약 무거운 캐리어라도 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리가 무거워질 때쯤 옥탑방 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프랑스 전통 주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옥탑방 창문을 열자, 콜마르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들 사이로 뻗어 있는 좁은 골목길, 창가에 놓인 화분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운하까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낡은 나무 창틀에 팔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내가 이 작은 마을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작은 주방도 딸려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치 현지인처럼, 우리는 콜마르의 작은 마트에서 장을 봐 왔다. 독일에서 맛보았던 소시지와 빵, 그리고 루프트한자 일등석에서 선물 받았던 귀한 샴페인, 그리고 오븐에 구운 피자와 스테이크까지, 푸짐한 저녁 식탁이 차려졌다. 작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치고 샴페인을 마시며 웃음꽃을 피웠다. 창밖으로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작은 마을의 풍경은, 우리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만약 우리 둘만 여행했다면, 이렇게 현지인이 아니면 예약하기 어려울 법한 독특한 숙소를 구할 수 있었을까? 또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와인을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실버 부부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혀 들어본 적 없던 프랑스의 작은 도시, 콜마르의 옥탑방에서 보낸 하룻밤은,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게 개었다. 콜마르의 명소, ‘쁘띠 베니스’는 이름 그대로 작은 베네치아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운하를 따라 알록달록한 유럽식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은,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았다. 모든 골목길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진 풍경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버 부부는 우리에게 또 다른 특별한 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리크위르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풍경은,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길, 화려한 색상의 목조 가옥, 거리 곳곳에 걸린 꽃 장식들이 어우러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5월 말,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금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돌바닥을 환하게 비추었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볼을 간 지렸다. 차가운 돌바닥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묵직한 돌 건물의 그림자 사이로 흩날리는 가벼운 꽃잎의 대비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투박한 의자, 햇빛에 바랜 나무 질감은 마치 중세 시대의 식당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테이블 위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담긴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고, 그 뒤로 보이는 중세 시대 건물들의 모습은 몇백 년 전으로 돌아온 듯했다.
우리 네 사람은 다시 와인잔을 기울이며 점심 식사를 즐겼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리슬링 와인은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와인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는 음식의 맛을 더욱 돋우었다. 주변에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거닐고, 가족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과 우리의 미소가 어우러져,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순간이었다. 이런 영화 같은 순간을 이 여행을 하며 얼마나 마주하게 될 것인가? 앞으로의 여행이 더욱 기대되는 식사였다.
알자스 와인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인 리크위르에서, 우리는 맛있는 리슬링 와인을 몇 병 사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여러 유럽 대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중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작은 마을, 리크위르는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서의 오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차가운 돌과 따스한 햇살, 묵직한 건물과 가벼운 꽃잎, 고요함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리크위르의 오후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