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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Dec 31. 2023

모든 창작물은 내놓아야 하는 시기가 있다.

굿 바이, 2023

교회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교회에 다녀와서는 하루종일 남편과 침대에 누워 드라마 요약본을 찾아봤다. 베갯잎이 젖을 정도로 눈물이 줄줄 흐를만한 명작들이었다. 남편이 시어머니와 도련님과 식사를 하러 외출하고나서도 침대를 떠날 수 없었다. 


제 아빠와 알콩달콩한 모습이 부러웠는지 질투삼아 몇 번 찾아와 괴롭히던 아들은 아빠가 나가자 저녁상을 요구해왔다. 간단하게 소세지로 솜씨를 부려 하울정식을 만들어주었다. 한국인은 밥심인지라 나는 빵 대신 밥을 선택했다. 소세지 야채볶음은 싫다더니 야무지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곤 아들이 숟가락을 들고 슬금슬금 의자를 붙여앉았다. 저렴하고 맛있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8시가 채 안되어 아들이 잠들었다. 간만의 정적이었다. 


전업주부였을 때는 흔하게 있었던 혼자만의 시간. 아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오후에 알바가기 전까진 이 적막을 즐겼다. 그때는 끊임없이 늘어져있는 살림살이를 치우느라 불평불만을 달고 살았었는데 취업하고 나니 그 시간마저 그립다. 


생각없이 나를 꼭 끌어안고 잠든 아들에게 뽀뽀세례를 하고 유투브를 하릴없이 보다가 타로영상에 진입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날. 슬슬 내년의 운세가 궁금해지는 타이밍이다. 분명 나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영상이 아닌데도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종종있기 때문에 외롭고 심심할 땐 한번씩 타로영상을 접하게 된다. 


12월 말 브런치북 공모전의 수상결과가 발표되고나서 잊고 있던 브런치스토리를 다시 들락날락 거렸다. 공모전에 떨어져도 어차피 출판사 투고를 시작할 셈이었다. 유명세도 없는 내가 쓴 개인적인 이야기. 어딘가에선 감명받아 함께 책을 제작해주지 않을까 찾아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로영상에서 뜻하지 않게 혹시 글을 쓰시나요? 출판사와의 계약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리딩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카드가 당장 움직이라고 나를 혼내고 있단다! 이런 카드의 조합이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채널 주인의 목소리에 아이가 베고 있던 팔을 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당장 해야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출판제의서는 예전에 써두었고 꿀팁도 여러차례 공부한 차였다. 봐두었던 출판사도 몇 곳 있었다. 제일 맘에 드는 글 3개를 추렸다. 연락처를 위해 이력서도 함께 넣었다. 그렇게 홀린 듯 출판사 3곳에 메일을 넣었다. 이로써 완벽하게 올 한해를 마무리 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 투고야 이제 시작이다. 그래서 날짜와 투고한 출판사 목록을 적어 새로운 메모장 파일을 만들었다. 앞으로 100번, 200번 될 때까지 해볼 요량이었다. 


나이 많은 신입 트레이너로써 일 하는 것은 여러모로 녹록치 않다. 공부할 것도 산더미에 아이와 남편을 케어하는 것에도 평소보다 배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물론 남편이 많이 도와주었다. 퇴근 후 손 하나 까딱 안했던 남편이 이제사 조금 회사에 적응이 되었는지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무리해주었다.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화요일 목요일에는 남편이 밥을 차려준다. 그리고 설겆이나 빨래를 수습 못 하는 날에도 서로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관계에 예민한 사람이라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신경쓰는 일은 평소보다 배로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할 수 있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미루고 집에 와서는 밥먹고 내일 출근 준비만 해도 하루가 홀라당 지나가버렸다. 출근 후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건 엄청난 체력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새삼 직장인이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도 힘들었던 한 해 덕에 겨우 취업을 했다. 트레이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데 신입이라 아직 정리된게 없을 것 같다. 우선 1년 간은 일에 적응하며 실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내년의 목표를 정리하기 전에 올 한 해를 회고 했다. 작년의 목표와 확언들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나름 잘 해온 것 같다. 열심히 하다보니 세웠던 목표들과는 조금 다른 길로 와버렸다. 일맥상통하긴 하지만 당황스러웠다. 덕분에 2024년엔 조금 더 목표가 명확해진 것도 같다. 


지금의 머리 속엔 회사 생활밖에 없어서 내년에도 이 회사에 붙어있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지만 삶이란게 어디 원하는 대로만 되던가. 어떤 바람이 불던 붙잡고 늘어지면서 갈 길을 가야지. 다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 


남편은 없고 아들은 잠든 적막한 23년 마지막 밤. 


내년의 나를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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