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예전부터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열에 둘은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친구들이 신기했다. 내가 보기에 선생님은 너무 극한 직업인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지? 내가 보기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감정 노동의 끝판왕'이었다. 특히나 예민한 고등학생들의 입시가 겹치면 선생님들은 한없이 지쳐 보였다. 나는 이걸 1년만 겪어도 이렇게 힘든데, 선생님들은 그걸 평생에 걸쳐서 몇 번씩 반복해야 한다니, 말도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선생님들이 있다. 중학교 때에 3년 내내 방송부와 담임 선생님으로 함께 했던 선생님이 계셨다. 과학 선생님이었는데, 무척이나 엄하다고 유명했고 항상 매를 들고 다니셨다. 3학년 첫날, 첫 등교를 하자마자 선생님은 슬리퍼가 없는 친구, 지각한 친구, 교복이 단정하지 않은 친구들을 모조리 불러서 체벌을 하셨다. 안 그래도 무섭다는 선생님 반에 배치가 된 친구들은 달달달 떨었던 기억이 난다. 교복 리본을 밥 먹듯이 빼먹은 나 역시도 그 무리에 섰고, 거하게 맞았던 기억이 난다. 3년 내내 참 많이도 맞았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이과를 간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인영아 너는 문과를 가야 해. 너는 그게 체질이야.라고 단번에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왜냐고 물었더니 3년 동안 지켜본 나는 글 쓰는 일을 잘하고, 잘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닌가. 단번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빌었다. 저 문과로 옮겨주세요. 선생님이 지켜본 내가 그렇다면,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많이 맞으면서도 그 선생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는 잊을 수 없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나를 강제로 기숙사에 집어넣으신 부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덕분에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자습을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도망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자습시간에는 나를 몰래 불러내서 만화책을 쥐어주셨다. 인영아, 이거라도 읽으면서 좀 쉬어. 나는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도 했다. 나중에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우리가 미웠죠? 다 알아요.
이제 알았니? 너네 때문에 진짜 죽도록 힘들었어. 학교에 나오기 싫을 정도였어. 선생님은 그중에서도 내가 가끔 미울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근데 나는 왜인지 알 것 같았다. 공부도 안 해, 대학도 안 가, 애들도 미워, 선생님도 미워, 가족도 싫어! 사춘기가 늦게 온 애처럼 굴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하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천방지축이었을지.
체벌하면 떠올랐던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도, 내가 미웠다고 말해줬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참 힘들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줬고, 나는 그들을 참 다정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도 사람이니 힘들고, 밉고, 지칠 수 있다. 선생님도 학교에 가기 싫을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나를 갉아내는 일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퍼서 줘야 하는 일이니까. 그것이 지식이든 혹은 다정이든.
돌이켜보니, 싫은 소리를 잔뜩 하는 사람들이 다정한 사람이더라는 생각이 든다. 다정한 사람이 뭐냐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끊임없이 이끌어주었던 그 선생님들도, 당신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다정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다정한 사람일 것이다. 그들의 그런 성향은 당신의 말대로 타고났고, 자라면서 배워왔고, 몸에 밴 것이니까. 그리고 그 마음들은 참 신기하게도 다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 어렸던 날들, 엉망진창으로 굴었던 나마저도 느꼈듯이.
당신이 더 다정해지기를 바란다.
더 많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기를.
그리고 나는 당신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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