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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경 Oct 13. 2021

#8.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댕경X인영구] 댕경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나는 다정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전학을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울면서 친구에게 그동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내 딴에는 ‘미안하다’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로 그 친구가 전학 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친구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어차피 전학을 간다는 마음에서였는지 나에게 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친구에게 잘못했던 게 없었으니 아마 그 친구는 내 사과를 듣고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어릴 때에는, 집 앞에 죽어있는 작은 참새를 발견했는데 동시에 죽은 참새의 시체 쪽으로 개미들이 마구 몰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시체를 보고 달려드는 개미떼에게 느낀 무서운 감정과, 그런 개미들에 저항하지 못하는 죽은 참새에 대한 불쌍한 마음에, 집 뒷마당의 나무 밑에 묻어주고 십자가 모양과 제일 비슷하게 생긴 나뭇가지를 주워서 무덤에 꽂아주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도 있다.






아마 아빠의 성격을 많이 닮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가끔씩 집에 친구를 데려오면 가서 과자라도 사주라며 꼭 손에 오백 원, 천 원씩이라도 쥐어주셨고, 다른 가족들과 가족모임을 위해 단체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면 늘 당신이 계산하시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셨다. 실제로 계산도 엄청 많이 하셨다. 어쩌다 보니 아빠에 대한 옛 기억들 중 뚜렷이 생각나는 것들이 다 물질적인 것을 베푸려고 하셨던 것들이긴 하지만,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베푸려고 하시고 주변 지인들을 정말 잘 챙기려고 하셨던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주변 사람들을 다정하고 살뜰히 대해야 하는 건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이 사람들을 대할 때, 특히 학생들을 대할 때 큰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학생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학생들이 나를 편하게 생각할 것이고, 학생들이 나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혹시나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다양한 고민들을 나에게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고민들이 어쩌면 성적에 관련되지 않은 고민들일지라도 그것들을 들어주고 해결하려 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학생의 꿈이나 목표를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학생들의 꿈이나 목표를 기반으로 성적 향상까지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교육과에 다시 입학한 후, 학원 수학강사로 일하고 현장 참관실습을 겪으며 깨달은 건 내 생각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너무 어렵다는 것뿐이었다. 






다정한 선생님과 열정 있는 학생의 관계를 생각하며 수학강사 일을 시작했지만, 그건 나의 환상이었다. 고3인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학원에 와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앉아있는 학생들을 내가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을 많이 혼냈다. 학원에 억지로 오는 학생들이 정말 실제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심지어 고3이 그럴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어서) 그런 아이들에게 그럴 거면 학원 때려치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학원에서 학생들을 자주 혼내면서 수업하는 나날들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원장 선생님께 임용고시를 일찍 준비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학원 일을 그만두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몇 달 후, 우리 대학교와 연계되어 있는 고등학교에 참관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참관수업은 각 대학과 연계된 중, 고등학교(보통은 부속중, 고등학교)의 다양한 학년들의 수업을 교실 뒤에 서서 직접 참관하고 참관 후 보고서를 써내는, 실제로 수업을 하게 되는 교생실습과는 다른 실습이다. 하루는 고등학교 2학년 이과 여학생들의 미적분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다정한 선생님'에 대한 마지막 남은 환상이 송두리째 깨지고 말았다. 칠판 앞에서는 선생님께서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고, 우리는 뒤에 서서 열심히 선생님의 수업스타일을 보며 보고서에 쓸 내용들을 적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반의 여학생들 수업태도였는데, 맨 앞줄 여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손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친다던가 옆 학생들끼리 서로 지우개를 던지고 포스트잇으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문과반이었으면 수포자가 많을 테니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걸 억지로라도 이해해보려고 했을 텐데, 이과반이, 심지어 미적분을 듣는데 이런 수업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런 학생들을 보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으시고 묵묵히 수업을 마치셨고, 끝나고 나서 우리에게 ‘평소보다 수업태도가 좋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우울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굳이 다정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처음 학생을 가르칠 때 마음먹었던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수업에 들어가고 있지만, 학생들을 거의 10년 가까이 가르치고 있다 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내 애정이나 관심과는 반대로, 공부나 성적에 관심이 전혀 없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이 직업은 나랑 안 맞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학생들에게 성적이나 공부 가지고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는 내가 밉다. 숙제를 너무 안 해와서 목이 다 쉴 정도로 잔소리를 하는 나를 보며 대체 누가 나를 다정한 사람이라고 느낄까. 이것도 다 그 학생에 대한 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체념하고 돈이나 벌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자꾸 생긴다는 게 슬프다. 이게 다 내가 학생들에게 잘 대해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질 때가 많다. 


지금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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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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