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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Oct 06. 2021

#7 '인영구' 분석 보고서

[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안녕 오빠! 내가 지난주에 요청한 것들을 잘 적어줬더라고! 
장점 세 가지, 좋아하는 일 세 가지, 내가 나에게 해준 좋은 일! 


댕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엔 내 얘기를 한 번 써볼게! 







장점부터 이야기할게! 


1.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다.

왜 장점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빠랑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 같아. 신중하다기보단 충동적인 성격에 가깝지. 사실 이 메일 보냈을 때는 MBTI가 유행은 아니었는데 지금 보니까 ENFP가 그렇게 충동적이고 기분파래. 완전 내 얘기인 것 같더라고.

어쨌든 나는 겁도 많고 걱정도 아주 많은 편인데, 충동적인 성향 때문에 일을 '자주' 저지르는 편이야. 그게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고, 글을 쓰다가, 전시를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됐지. 결국은 이렇게 오빠와 메일을 주고받는 프로젝트도 하게 됐잖아! 생각 없이 일단 해보자, 하면서 저지르는 일들이 결국에는 나한테 좋은 결과물을 안겨주더라고. 그래서 이걸 장점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2. 은근히 긍정적이다.

사실 나는 내가 그렇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근데 얼마 전에 취향껏 때문에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나보고 "와, 무척 긍정적이시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다 잘될 것 같아요!" 하시는 거야.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나?

그래서 좀 돌이켜보니까, 나는 우울한 때가 있긴 했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좀 예민하고 연약해서 자주 주저앉아있긴 했지만 언제나 일어날 방법을 고민했고, 지금은 슬프지만 언젠가는 좋은 쪽으로 걸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 내 글도 대체로 슬프고 외로웠지만 개중에 가끔은 희망을 노래하는 글들이 있었고. 무의식 중에는 그래도 나 정도면, 나를 잘 챙기면서 잘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앞으로는 더 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 


3. 이야기를 잘 들어줘. 더 자세히 말하면 듣는 걸 좋아해.

가끔은 내가 너무 듣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서운해하기도 하더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내 삶에 적용하는 루틴이 좀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도 잘하는 것 같아. 그래서 리액션이 좋다는 말을 좀 많이 듣고. 반응이 재밌다고들 하더라. 사람들과도 좀 잘 어울리는 편인 것 같고. 막 엄청 인싸다! 이런 거라기보단 모나지 않은 편인 것 같아.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알아가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가까워지는 건 좀 불편하고. 앗. 애매하다. 어쨌든 결론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런 면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해. 



——



좋아하는 것 세 가지. 그중 첫 번째는 단번에 떠올랐다고.


1. 나는 글 쓰는 걸 가장 좋아해.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고, 내 나름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이야. 

사실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던 이유도,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적어놓고 싶어서였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적다가, 점점 내 글을 쓰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지금은 글을 쓰는 삶이 익숙하고 약간 당연해진 것 같아. 진짜 언젠가는 이렇게 우리가 주고받은 이 메일들도 책으로 나오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글이 책이 되고, 그 책들이 여러 권이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살면서 내 책을 많이 가지게 되면 정말 정말 좋을 것 같아! 글을 쓰고 읽는 모든 순간들을 사랑해. 그 속 안에 담긴 희로애락이 얼마나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야. 


2. 고양이를 좋아해. 그런데 고양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좀 아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아빠랑 단 둘이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굉장히 외로웠던 것 같다. 대가족이 살던 집에서 달랑 둘이 남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텅 비었겠어.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게 됐는데, 정말 번 돈을 고양이 병원비, 간식비, 식비에 쓰느라 바빴어.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고 겹쳐서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게 된 거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도, 그런 환경도 못되면서 고양이를 키우려고 했던 나 자신도 너무 밉더라고.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계신 강원도로 보냈는데 그때가 여전히 잊히지가 않아.

나는 그때, 내가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물론 이혼 과정도 사유도 충분히 이해했고, 나는 어리지 않았고, 상식적으로 해결된 일들이었어. 그런데도 그렇게 느꼈어.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그들을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진짜 그랬을까?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매일매일 울었던 것 같아. 아빠가 자다가 일어났는데 내가 불도 안 키고 울고 있어서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나는 그냥 웃었어. 사실 아빠가 걱정할까 봐 주차장에서 맨날 울다가 들어가곤 했거든. 그게 참 생각이 나. 여전히 그들을 생각하고, 마음에 남겨진 짐을 돌아봐. 고양이를 정말 정말 사랑하지만, 나는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을 생각이야. 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3. 사람을 좋아해. 사람들이랑 있는 시간들이 행복해.


오래 함께였던 중학교 친구들이 있어. 그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너무 행복해져.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내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다 너무 좋아. 마리라이터 하면서 만난 오빠나 대근님도 가끔 생각하고, 지별이나 혜민이도 가끔 보고 싶고 그래. 

사람이 제일 밉고 싫다가도 사람들이랑 있는 시간이 위로가 되니까 내가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싶더라고. 사람이 제일 어렵고, 밉고, 싫고, 좋고, 사랑스러운 것 같아. 그렇지 않아? 



——


드디어 마지막이다! 나에게 해준 좋은 것!


엄마랑 여행을 다녀왔어.

공모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휴가가 생겼거든. 그동안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엄마가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엄마한테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너무너무너무 좋아하시더라. 생각해보니까 내가 먼저 가자고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더라고. 엄마랑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고, 예쁜 기억으로 남아있어.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 생겨서 너무 기뻐. 살면서 앞으로 가족들과 얼마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얼마큼을 나눠 써야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네.





2021.05.16

인영으로부터







이 메일 원래 제목도 "적다 보니 무척 기분 좋아짐!"이었잖아.
오빠를 따라 보고서로 바꿨지만. 다시 적어도 무척 기분이 좋다.


참, 사는 게 되게 힘들 때도 많지만

잘 생각해보면 좋은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우리 앞으로는 나한테 좋아하는 거 더 많이 해주고

잘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해주면서 살자.

그럼 조금 더 행복한 삶이 되겠지?


그럼 다음 메일에 또 만나. 




*

[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INS.

댕경 @luvshine90                                    

인영구 @lovely___09                                  

지름길 @jireumgil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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