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댕경으로부터
저번 메일에서 인영이가 나에게 미션을 주었으니까, 그에 대해 답을 해볼게!
먼저 장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1. 매사에 생각이 많고 신중하다.
나는 어떤 일이나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어떤 변수가 있을지, 어떤 결과를 바라고 시작하려는 것인지,
작업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등,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임하려고 해. 무언가를 구매할 때에도 이런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 나에게 과연 이 물건이 필요한지, 단순히 갖고 싶다는 충동적인 이유 때문에 구매하려는 것인지, 만약 구매한다면 어디다 보관할 것이며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등 오랜 시간을 두고 구매를 고민하는 편이야.
물론 이런 생각들이 너무 과해질 때가 많고,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도 엄청나게 많아. 예를 들면, 혼자서 여행을 가는 것도 되게 해보고 싶었거든. 근데 계속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대학교 3학년이 되는 겨울방학 때 혼자서 제주도에 처음으로 가봤어. 또 최근에는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를 냈단 말이야? 사업자를 등록하고 나서 뭔가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고 했는데 계획만 하다가 아직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했어.
이게 내 장점이라고 좋게 포장하려고 노력해봤는데, 사실 내 단점인 것 같아. 좋게 말하면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아. 그래서 요즘엔 이런 단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말만 하는 노력이 아니고, 생각을 했으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에 일단 실천해보고 있어. 방 청소나 책상 정리 같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이게 점점 익숙해지면 신중하게 생각한 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실천력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아(그러길 바라고 있어...).
2. 맡은 일에 대해 성실히 임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얼마 전에도 여느 때처럼 수학 수업을 하러 갔는데, 학생의 학부모님께서 나에게
‘선생님은 다양한 재능도 갖추고 계시지만, 무엇보다 성실하시고 책임감이 강하신 게 정말 큰 강점이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 생각해보니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어떤 일을 시키거나 맡기면 그 일은 무조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했던 것 같아. 기간 내에 끝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그 기간보다 일찍 끝내려고 노력했고(편지는 그렇게 못하고 있어서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인영아 너무 미안).
대학생 땐 누구나 한 번쯤 조별과제를 하잖아? 나는 조별과제를 하게 되면 무조건 내가 발표하고, 자료 조사도 내가 하고 그랬던 것 같아. '조별'과제니까 조원들끼리 역할을 나눠서 하면 편하다는 걸 알지만 내 성격이 그렇게 안되더라고. 나는 보통 조별과제를 끝내고 나면 조원들끼리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곤 했거든?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들 그렇게 얘기하잖아. 근데 나랑 같은 조를 했던 사람들은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나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인사를 꼭 하고 가더라고. 솔직히 내가 그 사람들 입장에선 조별과제를 캐리 해주는 캐리 머신 같은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ㅋㅋ)
하지만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일을 만들려고 하면 그걸 끝까지 잘 해내지 못하는 편이야. 이게 1번이랑 연결되는 단점인 것 같아. 나는 실천하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3. 남에겐 다정하고 나에겐 냉정하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은 되게 보잘것없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왜냐하면 나는 내가 학창 시절에 남들보다 아주 조금 잘했던 '공부' 이외에는 다 대한민국 평균이거나 그 이하라고 생각하거든. 요즘엔 가족들이 나에게 글씨 쓰는 거나, 다른 자잘한 재능들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해줘서 인정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그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이 부분은 잘했지만 이 부분은 아쉬웠고, 다음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 피드백할 수 있다는 말이야. 공부를 할 때에도 그랬는데, 나는 내가 어떤 걸 알고 어떤 걸 모르는지 잘 알고 있었어. 내가 여태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서 자기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 판단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나는 메타인지가 높은 편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내 깜냥을 알고 그에 맞춰서 공부하려고 노력했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항상 나 스스로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에 반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들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들을 잘 집어낸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인영이 네가 가진 많고 많은 재능들 중에 내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재능은 인영이가 글과 글씨를 잘 쓴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아주 작은 행동들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편이야. 캘리그라피 모임에 한창 나갔을 때의 얘긴데, 우리 모임이 1주일에 한 번씩 있었던 모임이었거든. 우리 모임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매주 꽤 많았단 말이야? 그럼 보통은 어색한 채로 말도 몇 번 못 나눠보고 헤어지곤 하는데, 나는 새로 오신 분들의 장점을 찾아서 그 장점을 칭찬해주면서 대화를 먼저 걸어.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지만, 자기를 보고 칭찬을 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인지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나보고 되게 외향적이고 사교성이 좋아 보인다고 얘기해주더라고. 사실 나는 되게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한 편인데,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늘 보던 사람들에게 하던 것처럼 다정한 말을 건네려고 노력했을 뿐이거든. 처음 봤지만 그 사람이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재능 있어 보이고 잘하는 것처럼 보여서 칭찬했을 뿐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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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딱 세 가지만 꼽아보면
1.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 같아.
어릴 때 피아노를 약 7년 정도 쳤었는데, 그 당시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였어.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나 어릴 때 손, 발, 입 쪽에 물집이 잡히는 병인 수족구라는 병을 앓은 적이 있나 봐. 그때 손에 물집이 엄청 많이 나서 피아노를 치기 힘든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엄마한테 '나는 손가락 부러져도 피아노 칠 거야!!'라고 고집부린 적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모차르트나 베토벤 소나타를 칠 때면 내가 그 사람들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 집안 사정상 피아노를 더 이상 못 치게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피아노를 거의 못 치게 되었지만, 기회가 되면 꼭 피아노를 다시 하고 싶어. 그래서 작년엔 조금씩 모은 돈으로 디지털피아노를 샀다? 근데 또 막상 사니까 안치게 되더라. 참 사람이라는 게 웃겨. 그래도 샀는데 놀릴 순 없으니까 다시 슬슬 연습해보려고. 악보 보는 연습부터 해야 될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 그래서 대학에 다시 들어갔을 땐 꼭 음악과 관련된 동아리를 하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밴드부에 들어갔어. 기타나 베이스, 키보드 세션에 들어가 볼까 싶기도 했는데 군대에 가기 전에 잠깐 드럼을 배웠던 적도 있고 해서 드럼을 치게 되었어. 이게 치다 보면 다른 세션들에 비해 몸을 격하게 움직여서 공연을 할 때에는 땀도 엄청 많이 나고 힘든데, 하이햇, 심벌 이런 걸 때리듯이 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는 느낌? 그리고 다른 세션들이 내가 치는 드럼 리듬이 없으면 합을 맞추기 쉽지가 않다고 얘기해 줄 때마다 너무 행복해서 더 열심히 쳤던 것 같아. 그리고 드럼은 연습할 때 악기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이 드럼스틱만 들고 다녀도 되어서 너무 좋았지. 나는 연습할 때 악보 없이 노래만 듣고 치는 편이어서 악보도 들고 다니지도 않아서 더 좋았어. 공연할 때에는 기타나 베이스 치는 친구들은 악기에, 이펙터에 뭐 바리바리 싸들고 낑낑대면서 준비할 때에 나는 스틱만 들고 가면 되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
남은 인생 동안 어떤 식으로든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 요즘엔 작곡도 관심이 생겨서 공부도 해볼까 싶기도 하고, 비트메이킹도 한 번 배워보고 싶어.
2. 요즘 다시 글씨 쓰는 게 좋아지고 있어.
벌써 내가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지 8년째다? 되게 신기하더라고. 캘리그라피의 ㅋ자도 모를 때, SNS에 '오늘 모임 있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무작정 캘리그라피 모임에 찾아간 게 시작이었는데 그걸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고 나서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졌어. 예술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면서 살아왔는데 정말 내 주변에 예술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그 예술하는 사람들이 나보고 예술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을 때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분이 좋더라. 내가 동경하던 분야의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어.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마음 맞는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을 거야. 인영이 너랑도 못 만났겠지? 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고 나서 내 생각과 가치관이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 캘리그라피를 예술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예술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된 게 캘리그라피라서 더 소중해. 그러다 너무 글씨를 오래, 많이 써서인지 한동안 질렸었는데 요즘에 다시 쓰려고 하니까 재미있더라. 나는 하나에 쉽게 꽂혔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타입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캘리그라피를 좋아하게 되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해. 앞으로도 캘리그라피 열심히 해서 꼭 이걸로 성공하고 싶어. 이만큼 했는데 취미로만 남기는 건 너무 아까운 것 같아.
3. 난 게임하는 걸 사랑해. 컴퓨터로 하는 게임도, 콘솔기기로 하는 게임도, 보드게임도 좋아해.
게임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좀 어렵긴 한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하며 살아서 그런 것 같아. 우리 엄마가 퍼즐게임류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엄마랑 퍼즐게임도 같이했고, 게임기기도 종종 사주시곤 해서 게임이 어릴 때부터 익숙했어. 우리 엄마는 아직도 일 끝나고 집에 가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퍼즐 게임한다? 종종 엄마 보러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가 맨날 나보고 깨보래. 아마 이런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해.
나 고등학교를 기숙사 학교를 다녀서, 기숙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보내줬거든? 집에 가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주 주말마다 피시방에 다니기도 했지. 심지어 고3 때도... 그래서 내 동생은 아직도 나한테 '형이 고3 때 피시방만 안 다녔어도 서울대 갔을 거다'라고 얘기해. 아니 그래도 나는 피시방 때문에 야자를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컴퓨터로 하는 게임들도 좋지만, 콘솔기기로 하는 게임들도 역시 좋아. 콘솔기기로 하는 게임들은 콘솔기기도 사야 하고, 게임 가격도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콘솔게임들은 대부분 서사적인 스토리를 지닌 게임들인데, 제작자들이 게임의 스토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떤 생각으로 주인공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를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야. 가끔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게임들도 많아서 정말 스토리에 푹 빠진 채로 게임을 즐길 때 기분이 너무 좋아. 여운도 그만큼 길고.
보드게임은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게임이라서 너무 좋아. 사람마다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서 그 방식들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도 엿볼 수 있고.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 상황을 극복해서 이길 때 짜릿함도 너무 좋고, 그냥 다 좋아. 보드게임도 만드는 작가가 있는데, 보드게임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게임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는 게 의외로 재미있어. 정리가 귀찮은 것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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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나에게 해준 이야기.
나 최근에 바다 보고 왔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어디 가지도 못하고, 마음이 답답했는데 바다를 보고 왔더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어. 대학생 때만 해도 서울을 떠나서 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점점 생각이 달라지고 있어. 코로나 시국이 좀 안정되고 내 돈벌이가 안정되면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부터 해볼까 싶기도 하고. 나 제주도에서 오픈카 타고 해안도로에서 하는 드라이빙에 로망이 있거든. 예전에 마리레터 연말 모임에서 '내년에 꼭 이루고 싶은 일 3가지'를 적는 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 거기에 '제주도에서 오픈카 타고 해안도로 드라이브 하기'라고 적었어. 그게 벌써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직도 못해봤어. 내 차가 오픈카가 아니니까, 제주도에서 그런 차 타려면 렌트해야 되는데 엄청 비싸겠지? 돈 많이 벌어야겠네... 올해가 가기 전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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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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