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쓰기> 응, 듣고 있어

김소연, '그렇습니다' 첫 문장

by 남몰래

응, 듣고 있어 말했지만 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른 척하고 싶었지 돌림노래 같은 너의 이야기가 지겨워 너는 그 이야기를 글로도 쓰고 전화로도 하고 만나서도 말했잖아 응, 듣고 있어 네 입술에 걸려있다가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내려오는 말들을 지켜보고 있어 밧줄에서 내려와 착지하는 순간 자음 세 개가 굴러갔고 외발로 걷던 모음은 엎드려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내 귀까지 겨우겨우 걸어온 말들은 순서가 뒤섞였어 '누 ㅓ ㄹ 파 므 ㅏ' 응, 듣고 있어 나는 어떻게든 너의 마음을 듣고 싶은데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소리가 웅웅 거려 미안해 우리는 달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있었잖아 달빛만이 우리의 언어였을 때 우리는 오해를 몰랐잖아 나의 말은 어디서 걸려 못 나오고 있는 건지 행방을 알 수 없고 너의 말은 내 귀 아래에서 암벽 등반 중이고 말하고 들을수록 서로 아득해지기만 하는데 응, 듣고 있어 들으려 애쓸수록 자꾸 흐려져 펑펑 내리는 눈속으로 너의 얼굴이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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