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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작 인생 Nov 16. 2019

BX의 꽃, 명함만들기

*실제 명함 ai파일 첨부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주의사항을 읽어보신 후 요긴하게 쓰세요


명함을 만들라는 대표님의 오더가 떨어졌다. 명함이라니...나는 UI/UX 디자이너인데...

 사실 디자인의 카테고리는 굉장히 많다. 편집디자인, 건축디자인,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웹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등등... 그중 인쇄물과 관련된 것은 편집디자인이다. 책 표지나 브로슈어, 팜플렛 등이 편집디자인에 속한다. 사실 한 뎁스 더 들어가면 더 많은 디자인 카테고리가 펼쳐지지만 일단 심플하게 가본다면 그렇다. 명함도 편집디자인 계통이다.


 하지만 나는 UI/UX 디자이너이다. 모바일이나 웹에서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있도록 전반적인 설계와 제작을 하는 것이 나의 직무이다. 모바일이라 하면 터치가  번에 되게 한다거나, 직관적인 아이콘을 제작한다거나, 확인 버튼이 사용성에 따라 위에 배치를 하든지 아래에 배치하는 것들을 고민하고 제작한다. 웹이라 하면 페이지 로딩 속도를 빠르게 개선한다거나, 페이지에서 재미난 요소를 넣어서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나에게 명함 디자인을 하라는 건 마치 중식 요리사에게 한식 요리를 주문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요리'라는 하나의 개념이지만 일식, 중식, 프랑스 요리, 한식과 같은 무수히 많은 계통과 가지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만들 수는 있지만 내 전문 분야처럼 '잘' 만들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사실 명함은 전 회사에서 딱 한번 만들어봤었다. 부사수가 퇴사하는 바람에 그다음 타자인 내가 맡게 된 것이었다. 명함의 '명'자로 몰랐지만 다행히 부사수가 제작해 놓은 일러스트 파일이 있었다. 그런데 뜯어보니 부사수의 결과물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분도 그냥 누군가 해놓은 파일들을 자자손손 대대로 물려받은 것 같아 보였다. 어쨌든 글자 몇 개와 로고 몇 개 바꾸는 게 나의 임무였는데 그게 녹록지 않았다. 결과만 말하자면 거짓말 안 하고 한 25번은 고친 것 같다. 전 선임과 전 팀장님과, 전 사장님과, 전 이사님(사장님 부인)의 개입한 결과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영문주소에

 1. korea를 넣을지 2.republic of korea라고 넣을지 3. 아니면 안 넣을지

회사 주소는 1. 옛날 주소를 넣을지 2. 도로명 주소로 넣을지...

잘 가다가 갑자기 hangout 을 넣을지 말지. 전 직원이 넣을지 해외영업팀만 넣을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세스들 때문에 정말 토 나올뻔했다. 왜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없었을까. 왜 나는 모든 결과가 나오면 그때 수정하겠다고 당당하게 얘길 못했을까. 그 후로 나는 명함 작업만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명함 작업 안해애애애애애애



그랬는데 나는 또 명함 작업을 해야만 했다. UI/UX 디자이너인데 뭐...사장님이 하라면 하는거지. 나는 충실한 스타트업 일개미니깐.



스타트업에선 '잘하는 것' 보단 '할 줄 아는 것' 이 더 우선순위일 때가 있다.



 물론 최고의 솔루션은 좋은 업체에 외주를 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돈을 많이 줄수록 퀄리티가 비례한다. 하지만 급할 땐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 오후에 대표님이 투자받을 업체와의 미팅이 있는데 명함이 없다고 치다. 그렇다면 언제 외주 업체를 알아봐서 컨택하고, 정보는 어떤 걸 넣을지 언제 구상하고 레이아웃 짜고, (맡기기 전에 대표님께 컨펌도 받아야 하고) 언제 결과물을 받아온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 &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야 한다. 처음엔 '못해요. 안 해요' 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가능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소름이 돋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성실한 일개미니까 사장님의 오더대로 명함을 제작했다. 다행히 회사에 로고 파일은 있었고 전 직장에서 작업했던 명함 가이드라인 파일도 있어서 오타에만 온 뇌세포들을 집중했다. 대표님은 쿨하신 분이어서 한 번의 수정만 거친 후 명함 작업은 끝낼 수 있었다. 자꾸만 트라우마로 남았던 그 명함 작업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사장님의 빠른 컨펌과 더 단단해진 멘탈로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유니크하고 졸라 멋있고 디자이너 부심 뿜뿜하는 명함을 만들고 싶었으나  내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건 나중에 창업하면 만들기로 하고 정말 보편적인 명함을 만들었다.



대충 이런거 만들었습니다



혹시 몰라 명함 만들 때 참고했던 은혜로운 사이트 링크를 걸어둔다.

정말 구글과 이런 대인배분들이 없었다면 나 같은 비루한 인간은 진작에 울면서 뛰쳐나가던가 권고사직을 당하지 않았을까 한다.





또 실제 명함 일러스트 파일이 궁금한 신입 디자이너분들을 위해 일러스트 파일도 올려본다.


*주의사항

로고 같은 경우엔 저작권이 있으니 사용불가라는 거 유의하시고 사이즈나 레이아웃, 실제 파일을 경험해본다는 것에 포인트를 둔다면 파일을 열어본 후 실망감은 크지 않을 것 같다. 혹시 밑에 파일로 작업한다면 마지막에 텍스트들은 Create Outlines로 깨트려야 한다는 것도 참고하시라.




*한 줄 요약 : 명함 작업은 오타와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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