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팀원이 떠나갔다' 라는 주제로 글을 썼었다. 단순히 팀원이 TFT 팀장이 되거나 팀 분리로만 끝나겠거니 하며 가볍게 쓴 글이었는데 주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큰 이슈가 발생했다. 팀 분리가 되지 못한 채 나는 팀원이 되고 팀원이 디자인팀 팀장이 된 것이다.
낌새는 느꼈다. 그는 기획자 포지션이어서 부산 지역 디자이너들과의 구심점이 있었다.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그는 해냈다. 대표님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신임했다. 그도 완강히 거부하진 않았고 기대에 잘 부응한다고 생각했다.
사이즈가 커지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조직 개편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계속 떠다니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남자였어도 팀장에서 밀려났을까?
내가 예스맨이었으면, 정치를 잘했으면, 안 밀려났을까?
단순히 자격지심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같은 디자인 포지션이었어도, 같은 여자였어도 그가 팀장이 되었을까? 능력이 부족해서, 포지션이 디자인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역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받은 서운함, 사람에게 위로받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총괄팀장님의 태도였다. 총괄팀장님은 불편한 인사발령을 전달할 때의 그 미안함과 불편함을 최대로 끌어올려 나에게 전달했다. 본인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도 불편하다며 너무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예상하고 있었노라고,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도리어 팀장님을 다독였다. 팀장님도 얼마나 속을 끓였을지 짐작이 되었다.
그나마 퇴사로 이어지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동료들 덕분이었다.
프론트엔드팀과 함께 팀 회식이 끝나고 팀장이 된 그 팀원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XX님, 많이 서운하시죠?”
그래도 그가 그렇게 먼저 말해줘서 참 고마웠다. 나는 쿨하지 못하고 이렇게 찌질한데 그가 가진 여유 덕분이어서 그런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팀 법카로 회식비를 긁을 때마다 오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법카를 넘길 때 좀 서운했다. 그나마 내가 감투를 쓰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아이템이었는데 상실감이 좀 컸다.
다른 동료들도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위로해 주었다. 마치 회식 자리가 내 송별회가 된 느낌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좋은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날, 타 부서 파트리더가 “그럼 앞으로 업무 요청은 새 팀장님한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물었다. 그 자리에 둘 다 있던 우리는 잠깐 당황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던 역할을 이젠 다른 사람이 하게 되었다. 내가 지시를 받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핀터레스트 스크롤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다음 주에 신입 사원이 입사하는데 온보딩에 대한 것도 그에게 지시를 받았다. 계획해 놓았던 게 있었는데 그 계획이 다 무너졌다.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 너무 조급해하지도 않고 너무 실망하지도 않으면서 조금씩 나의 갈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어쩌겠는가. 회사는 동아리가 아닌데. 이익창출을 위한 조직사회이거늘.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현실의 무서움을 마주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