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공감에 대해선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는 이성적 공감(상황의 전후 맥락을 빠르게 파악함)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정서적 경험을 헤아리는 감성적 공감(사람들의 감정적 변화를 잘 캐치함)으로 구분된다.
사람들은 찬바람이 부니까 붕어빵을 원하는구나. 왜일까? : 이성적 공감
맞아, 배 아프면 학교 가기 싫지 : 감성적 공감
예전엔 이성적 공감이나 감성적 공감 중 하나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두 가지 특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공감이란 게 워낙 정서적인 측면이 강하다 보니 논리적인 측면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도 논리적인 메커니즘으로 발현된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인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UI/UX 디자이너에게는 특히 이 공감 능력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용자의 경험,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왜 이런 공감 능력을 요구하게 되는 걸까. 주관적인 견해로 풀어보고자 한다.
UX디자이너는 문제 정의와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늘 가설을 세운다.
끊임없이 "why?"라는 질문과 함께 목표 설정을 하고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설을 세울 때 꼭 필요한 것이 공감 능력이다.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선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얼마 전에 버스 안에서 어떤 중년의 어머님이 따님한테 걸러오는 전화를 받으셨다. 물론 중요한 용건이면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스피커폰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스피커 소리가 제일 큰 상태로 통화를 하셨다. 나이는 대강 7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셨다. 버스 안에 따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서 '오늘 점심은 두 분이 밖에서 삼겹살을 드시기로 하셨구나. '라는 정보를 강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과연 따님은 이 사실을 알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더불어 왜 어머님은 일반 통화가 아닌 스피커 상태로 전화를 받으시는 걸까 궁금했다.
가설 1. 어머님은 청력에 문제가 있다.
가설 2. 어머님은 귀(신체)가 불편하시다.
가설 3. 어머님은 딸의 존재를 자랑하고 싶다.
이런저런 가설을 세운 후 사용자 리서치를 통해 검증을 해야 하지만 여기까지만 했다. 검증을 하려면 그 어머님께 ‘어머님, 왜 귀에다가 대지 않고 스피커폰으로 통화하셨어요?’라고 여쭤봐야 하는 실례를 저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민폐는 끼칠 수 없으니 대충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무튼 가설을 세운 후 검증을 제대로 해야 올바른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검증은 꼭 필요하다.
가설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검증도 제대로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가설을 위해 내가 사용자에게 빙의하다시피 해서 가설을 세워야 한다. 그 사용자 빙의에 필요한 리소스가 바로 공감이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어르신들이 스피커폰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귀에 대면 잘 안 들린다는 불편함 때문이라고 한다. 구멍이 작다 보니 귓구멍에 잘 맞추는 게 어려우시고 잘 안 맞춰지니 잘 안 들려서 스피커폰을 즐겨 사용하신다고 한다.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고 검증까지 되었다면 기업에서는 이런 점을 토대로 제품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공감에는 경험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게 이런 맥락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통찰력이 필요하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 남이 아픈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공감해야 한다.
고객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혹은 생각한다 라는 표현을 많이 봤을 것이다. 디자인씽킹이라고 한다.
사용자들은 기본적으로 그 제품을 만들어 본 생산자가 아닌 이상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 대 사람도 어려운데 디지털 환경에선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100% 만족하는 제품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계속 개선해 나가기 위해선 사용자를 이해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공감을 통해 그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래서 정말 어렵겠구나 하는 공감이 있어야 개선시키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공감 자체가 되지 않으면서 사용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되게 거창한데 소통을 잘해야 일잘러가 된다는 뜻이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와 개발자와 함께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혹은 외주업체 같은 이해 관계자들과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중간 다리 역할도 해야 하고 기획자나 개발자가 놓치는 부분을 잘 캐치하여 수정 보완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소통을 해야 하는데 공감 능력이 부족하면 이 소통하는 부분에서 어려워질 수도 있다. 상대방이 왜 이 부분을 이렇게 구성하게 되었는지, 왜 이 부분은 놓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높으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럴 수 있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는 이해.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 내가 어렵게 얘기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좀 더 다양한 방법이나 쉬운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감은 곧 이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다. 이해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다. 상대가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느끼는 바를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업무이해도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무 환경이 긍정적일수록 업무 효율은 높아진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
친절한 사장님이 계신 가게가 있다. 친절함에는 별거 없다. 사소한 걸 기억해 놨다가 다음에 확인하는 것. 관심과 배려, 그 두 개만 있으면 된다. 친절한 사장님이 물으신다. 저번에 멜론빵 사가시던데 그거 신상품이거든요. 맛은 괜찮으셨어요? 그렇게 사소한 관심에서 비롯한 대화가 단골손님을 만든다.
온라인 서비스 혹은 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제품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의 텍스트를 통해 제품의 서비스를 파악하고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게 된다. 보이스 앤 톤을 통해 고객들과 신뢰를 쌓고 친밀감을 형성한다. 사용자의 감정을 반영하지 못한 UX/UI writing은 사용자에게 혼란, 혐오, 반발심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안겨주게 된다.
고객에게 좀 더 친절하고 사소한 거 기억(개인화)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저번에 이거 장바구니에 담아놨던데 그거 안 필요하세요? 살 때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봐주는 것. 품절되었을 때 고객의 취향과 비슷한 걸 추천해 주는 것이 바로 고객 맞춤이다. 이런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고객과 어떻게 정서적으로 연결될 것인가, 친밀도를 높일 것인가 고민할 때 바로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계속 고민하며 넓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제품을 통해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브랜딩 경험까지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기업 MBLM(엠블럼)의 2022년도 브랜드 친밀도 조사(Brand Intimacy Study) 결과 1위로 디즈니를 발표했다. 고객을 진정으로 파악하고 요구사항을 예상한 브랜드로는 아마존이 최초였겠지만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여 놀랍고도 즐거운 경험을 잘 만들어 내는 곳은 디즈니였다.
디즈니는 디즈니랜드에서 스마트폰 앱과 MagicBand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수집해 방문객을 관리한다. 디즈니랜드의 직원들은 ‘모른다’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이와 방문객들이 최대한 꿈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기하며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가깝고 친절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디즈니에 녹아들고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기획자든 디자이너든 서비스 설계에서 공감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공감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품과 서비스는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공감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UX 디자이너가 되었을거다. 고객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감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디자이너의 공감 능력과 공감 시도가 디자인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