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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May 09. 2021

유교걸과 유고걸


처음엔 엄마가 조인성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엄마는 자신의 확고한 취향인 '롱다리에 늘씬한 남자'를 좋아했고, 그에 정확히 부합한 당시의 인기스타 조인성을 좋아한 것이었다. 엄마가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가 초딩이던 시절 전국민적인 히트를 친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당연히 남자 주인공인 삼식이를 응원했는데, 엄마는 다니엘 헤니를 응원했던 것이다. 엄마는 왜 남자 주인공을 안 좋아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엄마는 동문서답같은 서술형 답을 내놨다. 사람 다리가 어쩜 저렇게 늘씬하노? 그 이후로 다니엘 헤니는 별다른 히트작이 없었지만 간간이 CF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순이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수프를 떠먹는 TV 속 다니엘 헤니를 보며 엄마는 갑자기 물었다.



- 쟈는 결혼했나?



무슨 동네 친구의 결혼 여부를 묻듯이 내게 스타의 근황을 물어보는 것이 황당했지만 나도 그의 근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다니엘 헤니는 '나혼자 산다'에도 얼마 전 출연해서 싱글 라이프를 뽐낸 적이 있었다.



- 안 했을 걸요.


- 저 잘생긴 놈이 왜 결혼을 안 하노?



엄마의 언성은 마치 억울한 사람이 성토를 하듯 높아졌다. 또 시작이네. 잘생긴 놈들 결혼 걱정해주는 거.



- 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죠.


- 쟈가 자식을 낳으면 얼마나 예쁘겠노?


- 다니엘 헤니가 안 한다는 데 엄마가 무슨 상관이죠?



엄마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당장 우리 엄마만 봐도 새로운 시대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 대한민국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결혼의 연령대가 많이 늦춰지고 혹은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 비혼주의가 현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는 징조는 굳이 열거해봐야 입 아프다. 이미 이런 물결을 지속적으로 맞아온 유럽과 북미에서는 결혼이 망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내가 만난 그 쪽 출신의 친구들은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 친구마저도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것이 현실이니 결혼하기가 두렵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어도 자식을 두지 않았다.


곰곰이 우리 가족의 3대가 어떤 여건에서 자라왔는지를 돌이켜보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창씨개명을 당하고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 아빠는 군부독재 시절에 유소년기를 보냈으며 나라가 한창 경제발전의 가도기에 있을 때 청년기를 보냈다. 나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다 못해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하는 시대이자 극심한 환경 파괴로 지구가 망하네 마네 하는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시대의 변화라는 것이 점진적인 구석은 하나도 없고 양자 도약처럼 기약도 없이 무작정 점프해서 사람들보고 알아서 살아 남으라는 식이다. 각 세대가 살아야 하는 여건이 저마다 차이가 너무 심해서 얼핏 생각해도 3세대의 가치관이 잘 융화되어서 화합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환경에 맞춰져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그 시대상에 맞추어 싸워야 할 것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고, 엄마 아빠 세대는 독재자와 가난에 맞서 싸웠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무엇과 싸우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언뜻 보기엔 그래 보이는 것도 인정한다. 최고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무형'의 것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경제 발전의 시기를 넘어서서 성장폭이 둔화되면서 나타나는 선진국병이 사회 전체에 뿌리 내리고 그와 맞물려서 돌아가는 전 세계 경제의 침체, 개인의 노력으로 도무지 극복이 불가능한 수준이 된 빈부격차와 계층의 고착화가 그것이다.


그러니 지금 세대는 노력해도  삶의 수준을 웬만해선 바꿀  없다는 '무기력감' '꿈의 좌절'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외세나, 군부독재처럼 구체적으로 보이는 대상도 없는 데다가 정말 물리적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기에  싸움과 관련이 덜한 이전 세대로부터  힘겨움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문제의 심각성도 폄하당한다.


따지고 보면 결혼이란 것도, 정말 결혼을 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그냥 진행하기엔 비용이 너무나도 커졌고, 무조건 결혼할 이유도 전혀 없다는 것을 느낀 현 세대가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과 싸우는 문제인 것이다. 정말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싸움이지 않은가? 이전 시대 가치관과의 싸움이라니.


예전엔 그냥 어른들 하는 말씀이라면 다 듣고 수긍하는 척이라도 했지만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20대 후반인 내 친구들은 실제로 결혼 왜 안 하냐, 언제 하냐 등의 이야기를 가족들로부터 듣는데 처음엔 그냥 적당히 웃어 넘기거나 얼버무렸지만 요즘엔 당차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렇게 듣는 척 해서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젠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결혼을 해야만 하는 시대에 태어난 유교걸 할머니는 손녀의 결혼을 재촉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제 손녀들은 달라진 세상에 유교걸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유고걸로 거듭나는 중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묻기에 내 친구는 (한 두번도 아니기에) 태연스럽게 이렇게 반응했다.



- 니는 나이가 찼는데 왜 결혼 안하노?


- 돈이 없어서요.



얼마나 필요하냐는 할머니의 뒤따른 물음에 내 친구는 아주 선심 쓰듯이 말했다.  



- 3억만 주시면 당장 내일이라도 할게요.



이 이야기를 전한 친구는 실제 서울 집값을 고려하면 3억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지 않냐며 웃었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도 안되는 마당에 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 가지고도 어떤 집에 살 수 있는지 가늠도 잘 안되는 것이. 친구의 할머니는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고, 그 날밤 친구의 어머니께 아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몰래 말했다고 한다. 어떡하노? 아가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데. 내가 3억은 없고 돈이 이거 밖에 없다. 유고걸과 유고걸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웃고 말았다.


다음은 여차마을 빨간 벽돌집의 우리 조순이 여사. 조순이 여사는 사람은 좋지만 경제력은 없었던 김명실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먹여 살린 가모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돈도 할머니가 벌었지만 집안 살림은 여자이기에 당연히 또 우리 할머니가 했다. 할머니는 평생 그 바닷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었지만 사상만큼은 여기 저기를 누빈 신여성만큼이나 진보적이다. 일례로, 나는 그 많은 사촌 오빠나 남동생들 사이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부당한 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정도면 평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나 나중에서야 그것이 지극히 운 좋은 사례라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손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안 시키면서 손녀들에게만 명절일을 시킨다거나, 여자는 집안 살림을 잘해야 한다며 할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내내 듣거나, 여자는 시집이나 잘 가면 그만이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은 친구가 나 포함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조순이 여사마저도 최근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니는 왜 결혼을 왜 안하노?


- 할 사람 없어요.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더니, 할머니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 그래도 해야지! 가씨내가 결혼을 안 해가 될 것가!



나는 유고걸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한편으로는 유교걸의 손녀로서, 여태까지 할머니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서는 언성을 한번쯤 높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세상은 달라졌으니까.



- 그렇다고 아무나랑 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말해놓고선 순간 할머니가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좀 걱정이 됐는데 할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갑작스레 풀이 죽더니 고개마저도 끄덕거렸다.  



- 그건 그렇다….



그러더니 갑자기 할머니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마, 서방 잘 못 만나면 평—생을 고생하는 기라! 마마, 하지 마라!



결혼을 권유하던 할머니는 힘든 결혼 생활을 한 본인 포함 다른 여자들을 떠올리다가 격분해버렸는지 갑자기 내게 비혼주의를 추천하고 말았다. 여기서도 좀 씁쓸해지는 것이 요즘 시대의 기준으로 가정을 이루기엔 부적합한 사람들이 그 당시는 사회의 규범에 따라 결혼을 했고, 사회 진출 기회가 없었던 여자들의 경우 선택권 자체가 없는 거나 다름 없었으므로 폭력적이거나 삶의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결혼 생활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 세대의 숙명이 '이전 시대 가치관과의 싸움'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 논쟁의 핵심은 결혼 유무보다도 선택의 자유에 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모습에 맞춰서 살아가면서 안정감을 얻을 것인지, 아니면 그와는 좀 다른 선택을 해서 사회의 눈초리를 받을 지언정 자기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갈 것인지. 유교걸의 시대에 태어났으나 졸지에 비혼주의를 지지해버린 할머니를 보면서 나와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고, 할머니도 웃는 우리를 보고 우하하하, 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 유교걸이든 유고걸이든 어떠하랴. 어제의 유교걸이 오늘의 유고걸이 될만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 선택은 내가 하고, 그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다.



* 사진은 마이아트뮤지엄의 맥스 달튼 전시회에서. 우리는 인생의 매 지점에서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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