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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un 12. 2021

망개떡이 개떡인 줄만 알았지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식습관을 대대적으로 개선한 이후 한동안 떡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원래도 떡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초딩 입맛을 사로잡은 몇 가지 떡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바람떡이나 꿀떡 같이 가장 대중적이고 누구나 처음 먹어본 순간엔 맛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떡 말이다. 백설기라던지 쑥떡이라던지 하는 건강해보이는 떡은 왜 간식을 먹는 순간까지도 건강을 챙겨야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거들떠도 안 봤던지라, 떡에 있어 내게 확고한 취향이나 일가견 같은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망개떡은 왠지 좀 험한 곳에서 구르다가 별 성의도 없이 빚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 이름 때문에 이 일자무식에게 무시를 당했다. 엄마가 동네 이모에게서 얻어온 망개떡을 건넸는데 단지 이름 석 자 '망개떡'을 듣고 나는, 그거 맛 없는거 아냐? 라며 단박에 거절해버렸다.


엄마는 니가 이래서 아직도 그런 살찌는 음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라며 내 미각을 폄하하다가 한번 더 설득했다. 이번엔 다른 데서는 일부러 찾아와서 먹는다,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떡이다, 하는 말로 구슬리는데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그런 말 보다도 나보다 훨씬 웰빙 입맛을 가지고 있는 우리 동생이 주저없이 그 떡을 입에 넣더니 맛있다고 말한 후다. 망개떡은 떡 하나하나 마다 향이 나는 누르스름한 녹색 나뭇잎 두 장에 곱게 싸여 있는데, 그 잎을 벗기려고 하자 향기가 코에 홱 끼쳐왔다. 떡에서 이렇게 상쾌하고 강한 향기를 맡아본 것이 처음이라서 과연 엄마가 먹으라고 추천하는 건강 간식인가보다 하는데, 잎을 벗겨보니 피기 직전의 보얀 장미가 한껏 꽃봉오리를 움켜 닫고 있는 모양이다.

 

망개떡. 출처 : 위키백과


생각보다 이쁘고 향긋하네, 하면서 한 입에 쏙 넣는데 이럴수가. 역시 사람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선 함부로 말을 말아야 한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 몇 개를 더 집어 먹어 다음 끼니를 거르고 말았다. 왜 하필 이 예쁜 떡이 전혀 외양과 어울리지도 않는 망개떡이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홀로 성토하는데, 엄마는 그를 듣더니 이 망개떡이 망개나무로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고보니 왜 내가 망개떡이라는 이름을 별 근거도 없이 험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지 곰곰이 되짚어봤다. '망'자가 주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고, 게다가 '개떡'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엿같은 상황에서 많이 차용이 되어왔던가. 그 둘의 콜라보레이션이니 귀한 떡이라곤 생각을 못할 수 밖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과연 망개나무는 엄마 말대로 귀한 나무가 맞았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망개나무는 한반도 내에서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정도에서만 자라는 흔치 않은 나무다. 결실율도 낮고 유전 다양성도 높지 않아 각 국에서도 희귀종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천연 기념물'로 보호받는 나무다.


망개나무가 이렇게 귀한 나무였냐고 말하자, 아빠는 망개나무에 얽힌 유년시절의 추억을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우선 우리 할머니댁 여차마을은 경상북도가 전혀 아닌데, 여차마을엔 망개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 지금은 없냐고 물어보니 망개나무의 효능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망개나무를 통째로 뽑아가서(...)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빠는 사과가 먹고 싶은데 사과가 없을 때 동네 친구들과 눈을 감고 망개나무 열매를 먹었다. 열매가 미니 사과처럼 생기고 정말 사과꽃 향기가 난다는데, 검색해서 찾아보니 외양은 빨간 사과보다는 거대한 빨간 버찌 같다. 향기는 상상조차도 안된다. 유년시절부터 도시에서 자란 내 세대로서는 사과꽃 향기를 어디 맡아봤어야 말이지. 하지만 '사과꽃 향기'라는 말이 너무 새콤달큰하고 심지어 저 말을 어느 꽃집의 간판으로도 본 적이 있던 터라 망개나무에 대한 몽상에 젖고 말았다. 사과꽃 향기가 나는 망개나무 열매는 어떤 향기가 날까. 당장 망개잎 냄새만 봐도 자이리톨 저리가라 할 만큼 상쾌하니, 망개나무 전체에서 나는 냄새는 내 몸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것 같다.


망개나무 열매. 출처 : https://greenew.co.kr/berchemia-berchemiaefolia-benefits/


여기까지 들은 나는 아빠에게 그렇게 좋은 망개 열매를 왜 할머니댁에서 여태 우리에게 한번도 가져다 주지 않았냐고 역정을 냈다. 아빠는 약간 황당해하더니 쭈가 망개나무에 관심있는지 몰랐지, 라고 답하다가 사실 망개나무가 여차마을에선 너무 흔해서 가치로운 것이라고 생각조차도 못했다고 실토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떻게 알고 귀신같은 사람들만 약재로 쓴다며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 너머로 나무를 가져가버렸다. 그깟 나무 아무도 관심도 안 쓰는데 가져가든 말든 마을 사람들은 상관도 안 했다.


하마터면 망개떡을 그냥 개떡쯤으로 멋대로 착각하며 살아갈  했으니  앞이 아찔하다. 망개떡을 아마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는 희귀한 나무니까  존재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같다. 엄마가 얻어온 망개떡 덕분에 나는 사과꽃 향기를 상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점점 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너머의 것을 접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면서 성장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지라도 말이다. 누구는 이름만 듣고 개떡같이 궂게 생긴 떡이라고 대충 생각하고 넘어갈 법할 망개떡이 사실은 보드라운 백장미 꽃봉오리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망개나무에선 사과꽃 향기가 나고, 어떤 시절의 어린이들은 사과를 상상하며 눈을 감고 망개열매를 베어 물었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아빠는 다음번에 같이 여차마을에 가게 되면 망개나무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글을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검색을 해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망개떡을 싸는 망개잎은 사실은 청미래나무이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나무를 망개나무 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망개떡이 되었다. 망개떡을 만드는 청미래덩굴은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낙엽 덩굴 식물로서 망개나무와는 다른 식물이다. 열매와 어린 순은 식용 가능하며 약재로도 쓰인다. 흔히 망개떡이라고 하는 떡의 겉을 싸고 있는 잎이 이 식물의 잎이다. 이 잎에 떡을 싸서 찌면 특유의 향이 베어들 뿐만 아니라 더운 날에도 떡이 잘 쉬지 않는다.' - 출처 : 나무위키


내가 냄새를 맡으며 상상했던 망개떡을 싼 겉잎은 진짜 망개나무가 아니라 청미래나무의 잎인 것 같다. 참, 그럼 여차마을에 있는 망개나무는 진짜 망개나무일까 아니면 청미래나무일까? 왜 경상도 사람들은 진짜 망개나무를 두고 다른 나무를 망개나무라고 부른 건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빠가 망개나무라고 믿었던 나무가 진짜 망개나무가 아니라면 아빠는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그 너머의 것을 접하면서 성장하는데 이 미스테리한 떡은 아빠에게도 성장의 기회를 주려 한다. 진실을 확인해 볼 그 날을 기대하며 여름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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