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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Feb 17. 2022

꽃을 쏘다


가끔 내 정신은 바닷 물결 위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허공에서 부유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대는 윤슬을 번뜩이는 대양이 아니기에 부유의 끝또한 사뭇 다르고 처참하다. 나는 시간을 맞추어 발걸음을 또각이는 이 세상 죄수 부대의 발길질에 채이고 찢기고 만다. 먼지가 된 나의 정신은 반항으로 한번 튀어올라보지도 못한 채 신발의 밑창에 끈적이며 달라붙은 껌을 더욱 꼴사납게 할 회색 얼룩이 된다.


얼마 전에 받은 분홍색 꽃 세 송이는 물 담긴 화병 속에서도 은색 빵끈으로 꽉 매여있다. 보통 꽃병에 꽃을 넣기 전 나는 그들을 구속하는 매듭에서부터 해방시켰다. 하지만 붙들리고 매여있을 때 그들이 뽐내던 맵시는 내가 그것을 풀어놓자마자 너무 쉽사리 헝클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으나 그 대가로 내가 목도한 것은 무질서와 해체, 그리고 쇠락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일찍 생기를 떨어뜨렸고 마치 자신들의 결속을 해체시킨 내가 그 원흉이라는 듯 종말을 축하해줄 수도 없을 만치 흉한 꼴로 바스라져 갔다.


그리고 이런 날, 그러니까 이렇게 내 정신이 회색 도시의 공중에서 이리저리 채이고 있다고 느껴지는 날에 나는 그 꽃들을 해방시킨 것을 몹시도 후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연이은 실패로 결국 보기 좋은 대열과 정형에 굴복해 아직도 어울리지도 않는 저 은빛 사슬에 매여든 저 꽃들이 내 자유를 비웃는 것만 같다. 네가 생각한 자유란 결국 그런 결말로 이끄는 무능함과 아집일 뿐이라고.


2L 페트병의 절반보다도 높은 저 투명한 화병, 그 주위를 금빛 테로 공간을 두고 장식하고 있는 저 꽃병은 원래 생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저 속은 실리콘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만큼 생생하게 눈을 속이는 조화가 꽂혀야 하는 자리다. 생화처럼 굽어지고 잎이 우글거리는 것마저 흉내내어 투명한 병에 물이 없는 것을 감지하고나서야 그것이 생화가 아니란 것을 알아챌 만큼, 이 화병의 원래 세입자는 간편성과 미관에 있어서는 가장 유리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 그 자리는 저 꽃 세 송이가 차지했다. 비록 은색 사슬에 둘러싸여 있는 줄기의 뭉치는 물속에서 한껏 확대되어 보이지만 나는 그들이 생각보다도 오래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건강스럽게 해주고 있다는데 감사한다. 분홍 꽃 사이에 퍼진 안개꽃은 별사탕처럼 솟아올라 아직 저들에게 이 곳을 점거할 에너지가 한참은 남았다는 것을 과시한다. 나는 그에 수긍해 고개를 끄덕이고 조화들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그래. 잠 못드는 밤에도 어떻게든 쭉쭉이 스트레칭을 하고 잠들며 아침에도 기지개를 펴보자. 내 비록 구속되어 있을지라도 이 구속의 사슬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때까지 안개꽃의 빳빳한 고개처럼 유성우를 쏘아 올리련다.


2.16에서 2.17로 넘어가는 밤, 어설프게 깨서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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